시대가 변하면 의식도 변하는 것일까?

[ 주간논단 ]

김영미 변호사
2020년 09월 16일(수) 10:00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받던 사람들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법의 칼날에 상처를 입고, '라떼' '나 때는 말야'라면서 기성세대가 자신이 살아온 경험담을 말하며 요즘 세대에 적용하려는 사람을 비난하기 위해 만들어 낸 신조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후배들에게 꼰대로 불리면서 눈총을 맞는다. 시대 변화에 저항하는 무의식의 유전자가 내 몸속 깊숙이 꿈틀거리고 있지 않은지 고심하게 되는 대목이다.

필자는 이전에 '성인지 감수성'과 '아동학대'를 주제로 짧은 소회를 밝힌 적이 있다. 사람들이 기존의 습관적 의식에 사로잡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다가 낭패를 보는 실례(實例)를 추려본 것인데, 시대에 뒤처졌다는 이유로 단순히 구닥다리라는 핀잔을 넘어서 이제는 범죄자로 처벌받을 수 있는 주제들이다. 연인 사이에서는 마음대로 스킨십을 해도 된다거나 자녀의 인성교육에 어느 정도의 체벌은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제대로 뜯어고치지 않으면 이제는 연인이나 부모로서 볼 장 다 보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제대로 받아들이고 의식의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식의 탈바꿈에는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 바로 고정관념의 탈피다. 기성 세대들은 다수가 '싫어도 싫다고 말하는 것은 예의가 없다. 좋아도 좋다고 말하는 것은 가벼워 보인다. 말대꾸하는 것은 버릇이 없다. 가만히 있으면 중 이상은 간다.' 등과 같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게 만드는 고정관념들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의식 패턴으로 인해 본인의 의사에 거슬리는 상황을 접해도 늘상 참고 넘기다가 나중에 자신도, 상대방도 서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황을 겪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제때 솔직하게 표현하고, 상대방의 표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행동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수일과 순애는 모임의 멤버이다. 수일은 유쾌한 유머의 소유자로 모임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멤버들과 잘 지낸다. 그런데 순애는 수일이 "순애씨는 내 스타일이야!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랑 사귈래요? ㅎㅎ"라며 농담처럼 던지는 말도 그렇고, 그에게 말을 건넬 때마다 자신의 팔과 어깨를 터치하는 그의 리액션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다른 멤버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데 자신만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모임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싶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나고 결국 순애는 수일의 행동을 견디다 못해 법에 호소하기에 이른다. 수일은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순애가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고서 이제 와서 안면을 싹 바꾸고 자기를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하소연하는데 수일은 정말 억울한 것일까?

기성세대는 가정과 학교에서 감정표현을 자제하고 기분 나쁜 상황에서도 인내하라는 교육을 받아왔다. 특히 여성은 남녀관계에서 다소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여성스러운 것이라고 배웠고, 그래서 불쾌한 상황이 생겨도 감정을 감추고 마냥 인내를 해왔다. 물론 자신의 의사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불쾌한 상황을 접하면 그 상황을 모면부터 하려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기성세대 중 상당수는 아직도 성인지 감수성이 뭔지 알려 하지도 않고 고치려 하지도 않는다. 수일 같은 사람은 자신의 행동 중에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는데, '너 잘못했어'라고 따지고 들어간들 순순히 수긍할 수 있을까. 잘못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지금껏 기성세대의 의식이 그런 맥락으로 흘러왔던 것이라면 이제부터는 작은 변화들이 필요하다. 상대방에게 다짜고짜 문제를 제기하기에 앞서 먼저 주의를 환기시켜주면 좋을 것 같다. 처음부터 상대방에게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솔직하되 정중하게 전달해 보는 연습을 해 보는 것이다. 이후에도 상대방의 행동에 변화가 없다면 그때 가서 정식으로 이의제기를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내 뜻대로 해석하고 행동하지는 않는가? 상대방에게 불쾌한 감정을 처음부터 솔직하되 정중하게 표현하고 있는가?" 새로운 의식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 두 가지 질문을 기본으로 하면 어떨까. 시대의 물줄기를 따라 내 의식의 저변도 함께 잘 흘러가고 있는지 우리 자신에게 자꾸 되물어볼 일이다.



김영미 변호사/법무법인 숭인·수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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