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아가는 이유

길을 찾아가는 이유

[ 제19회 기독신춘문예 ] 소설 부문 당선작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1년 01월 15일(금) 10:00
삽화/고영빈 작가
나는 인종 프로파일링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아하바가 이 사실을 전해 들었다면 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내 모습은 그리 위협적인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내 피부색에 근거해 최악의 모습을 상상했다. 대학시절, 아하바와 나는 소위 '커피토크'라 불리는 행사에 몇 번 참석했다. 인종 문제에 대해 논의할 의향이 있는 대학생 모두에게 열린 자리였다.

"어떻게 양 진영의 차이를 넘어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세상과 아무렇지 않게 섞이지 않고 우리의 구별됨을 유지할까? 방어적으로 움츠러들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섬길 방법은 무엇일까?"

아하바는 양 진영의 차이를 넘어 어떻게 손을 내밀 수 있을지 늘 고민이었다.

부서진 나무 널빤지에 앉아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의지력을 발휘하면 좀 더 빨리 거세진 물살을 가르고 안전한 곳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와이 외딴 섬에 살고 있던 우리 가족은 어느 여름날 모험을 하러 나갔다가 갑작스럽게 덮친 쓰나미로 인해 이곳 도시로 흘러들어 정착하게 되었다. 나는 중학교에 입학했고 새로운 모험과 마주했다. 전교에 소수민족 학생은 나 한 명뿐이어서, 나는 내가 그 길을 걷는 최초의 인류라고 생각되었다. 나에게는 학교가 또 다른 외딴 섬이었고, 그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더 이상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이 나의 외모를 어떻게 생각할지 무서웠다. 반 친구들은 다리를 꼬고 삐딱한 자세로 나를 바라봤고, 선생님도 교실 맨 뒷자리에 따로 앉게 했다.

학교에 간 첫 날, 넌, 뭐야? 어디 출신이야? 난 피하고 싶은 질문에 맞닥뜨려야만 했다. 주먹을 날려볼까? 괴상한 소리를 지를까? 하지만 주눅이 든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 하와이 사아람이야아 라고 대답했다. 어떤 녀석이 내 등 뒤로 와서는 내가 입고 있던 티셔츠를 화들짝 들췄는데 나는 친구들의 공격이나 위협을 막을 어떤 제스처도 하지 못했다. 여기에서의 학교생활이 나를 어디로 이끌게 될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지할 수 있는 어떤 것뿐이었다. 변화는 더디고 내 안엔 큰 의심만 가득했다. 그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말과 숫자를 가지고 노는 것만 같았다. 난 미동도 없이 눈만 멀뚱멀뚱 뜬 채 그들이 공부하는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있을 때다. 한 녀석이, 너 거시기도 까맣지? 하며 갑자기 내 팬티를 끌어내렸다. 다른 아이들은 킬킬 거렸다. 난 그 녀석을 번쩍 들어서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 녀석의 앞니가 빠졌는데, 그 앞니는 이전부터 흔들리고 있었지만 선생님들과 다른 아이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우리 모두 그냥 잘 지낼 수는 없는 거니?"

언제 왔는지 새하얀 피부에 파란 눈을 가진 소녀가 화장실 입구에 서서 나직하게 말했다. 녀석들은 웬일인지 그 여자애의 말 한 마디에 슬슬 교실로 들어갔다. 예쁜 소녀 앞에서 팬티가 벗겨졌다는 게 부끄러워 숨고 싶어 내달려서 학교 운동장에 있는 큰 나무 위로 재빨리 올라갔다. 선생님과 반 아이들은 나를 찾느라 한 동안 소동이 일어났다.

나는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 구석진 곳에서 흙을 만지고 놀곤 했다. 어느 날, 파란 눈의 그 소녀가 다가왔다. 멀리서도 그 소녀를 알아볼 만큼 그 소녀는 나에게 특별했다. 우리 반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면 파란 눈을 반짝이며 웃어주는 아이는 그 여자애뿐이다. 그 여자애는 모래 위에 영어 단어를 적어보였다.

"아하바. 내 이름이야. 히브리말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뜻이지. 우리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래. 네 이름은 뭐니?"

여자애가 말할 때, 기쁨이 한지에 물감 번지듯 내 가슴에 번졌다.

"어, 내 이름?"

이 도시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는 친구는 없었다. 선생님마저도 어이, 봄베이! 라고 불렀다.

봄베이는 온 몸을 뒤덮은, 광택이 나는 에나멜가죽과 같은 짙은 검은색 털과 긴 다리와 날렵하고 근육질인 몸매,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인도의 검은 표범 같은 고양이 이름이다.

"마카나오캐쿠아. 하와이 말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란 의미가 있어. 봄베이라고 불러도 돼. 부르기 어려우니까."

봄베이 고양이는 사람들을 좋아해서 사람들과 잘 지낸다. 또 주인을 너무 좋아해서 주인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고 잘 때도 옆에서 자는 것을 좋아한다. 장난치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고 영리하고 눈치도 매우 빠르다. 우아한 매력을 지녔고 점프력도 뛰어나고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한다.

아하바는 모래 위에 내 이름을 쓰다가 지우기를 되풀이 했다. 나도 아하바의 이름을 모래 위에 써 보았다. 그 여자애는 내 손목을 잡고 모래 위에 '아하바'를 써 보였다. 내가 틀리게 썼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이야 교실에 들어가자, 여자애는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교실 가까이 와서 나는 손을 살며시 놓으려는데 여자애는 내 손가락을 꽉 낀 채 교실로 들어섰다. 애들의 눈빛이 우리에게 쏟아졌다. 난 여자애가 걱정되었지만 내 눈이 교실바닥을 보고 있어서 볼 수가 없었다.

"벨크로 캣! 흑백이 잘 어울리는데!"

내가 화장실 바닥에 내리꽂았던 녀석의 목소리였다.

"흑백 사진이 더 분위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아하바는 내 손가락에 깍지 낀 자신의 손을 치켜 올리며 명랑하게 대꾸했다. 나도 모르게 내 큰 머리통으로 조막만 한 여자애의 머리에 박치기를 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 여자애 등 뒤에 찰싹 붙어 다녔다. 우리 종족들은 가족 간의 유대감이 좋다. 난 독립적이지 못하다. 오랜 시간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한다. 그 여자애와 말도 나눈 적이 없고 이름을 몰랐을 때조차도 여자애 등 뒤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 아이 머리카락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를 킁킁 맡았고 내 뱃속에서 골골 소리가 나는 것을 감추었다. 학교와 집을 오갈 때도 그 여자애가 집에서 나오고 들어가는 시간을 알아채고 길거리에서 서성거리며 발걸음의 속도를 조절했다. 내 시선은 그 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그 아이의 파란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토론 수업은 나에게 무거운 짐이었다. 내가 말해야 할 순서가 와도 연신 고개만 숙이고 있었고 멍한 표정으로 빨리 수업이 끝나기만 바랐다. 토론이 끝나면 나는 친구들로부터 으레 핀잔을 받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인터넷을 검색해 꼼꼼하게 자료를 챙겨 왔고 최선을 다해 토론했는데 아깝게 졌어. 다 저 녀석 때문이라구."

"저 녀석은 아무 것도 준비해 오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이긴 우리 팀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점수를 받아가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해."

난 내가 속한 팀이 토론에 이겨도 져도 친구들로부터 한 마디씩 들었다. 이긴 팀의 찌질이인 내가 진 팀의 리더보다 높은 점수를 받게 되었으니 부당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숫자에 뛰어난 친구들은 나도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었는데도 내가 끼어들라치면 시간낭비야, 저리가 조용히 앉아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말하며 밀쳐냈다. 난 함께 하는 건 잘 할 수 있는데 그 아이들은 몰랐다. 느낌으로 말하는 내가 틀린 것이라고 말했다. 난 한 곳을 응시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들은 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느냐고 싸우려 들었다.

학교생활 동안 툭하면 경범죄로 경찰차에 태워져 집으로 호송되곤 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나는 외롭지 않았다. 선생님도 늘 나만 혼냈지만 보이지 않는 든든한 내 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하바와 난 정반대의 지점에 있었다. 나는 흑인 중에 흑인이고 여자애는 백인 중에 백인이다. 여자애는 상당히 부자였는데, 우리 집은 가난했다. 여자애는 공부도 잘했으나, 나는 아는 게 없었다. 그렇지만 그 여자애는 내가 알아먹을 수 있는 언어로 말했다. 여자애는 학원에 가야 하는 시간, 나와 함께 농구를 해주었다. 우리는 숲속에서 나무 위에도 올라가고 울긋불긋한 낙엽을 밟으며 맘껏 뛰놀았다. 여자애와 함께 있는 동안, 나는 너는 충분하지 않아, 모두가 너를 버리고 거부할 거야 라는 내 기억 속의 메시지를 잊어버렸다.

아하바가 자기 집에 나를 초대한 어느 날이다. 우리는 갖가지 색깔로 되어있는 나무블록을 가지고 도미노 게임을 하고 놀았다. 그 여자애 옆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자애의 엄마는 웃으면서, 넌 친절하구나. 친구로 지내는 건 얼마든지 좋아, 하셨다. 나는 얼굴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 엄마는 하얀 마카롱 과자 한 접시와 진한 초코 마카롱 한 접시를 들고 와서는 초코 마카롱만 든 접시를 내 앞에 던지듯 밀었다. 한 십년 지나면 틀리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게 알게 될 거다! 그 엄마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른들은 대화할 때도 체스를 두는 것 같다. 나도 먹물을 내뿜는 오징어처럼 생각을 감추었다. 그 엄마가 하등 동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나를 보았기 때문에 목덜미가 따가웠다. 어른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과장해서 사물을 보기도 한다. 일어나 빨리 나와야 할 것 같아서 서둘러 신발을 신었다. 여자애도 현관에 서서 신발 뒤축을 구기고 있었는데 엄마가 잡아끌어 앉혔다. 나는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하며 현관문을 닫았지만 현관문에 기댔다. 다리에 힘이 빠졌기 때문이다. 너 때문에 수치스러워 마트에도 못 가는 거 아니? 그 놈과는 말도 섞지 마! 그렇다고 바꿔지니? 여자애의 엄마는 우리의 차이를 거듭 강조했다. 딸에게 흑인 녀석과 잘 지낼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

그 후 두 달쯤 지나, 아하바 생일이어서 그 애 집에 갔다. 거실에서 다른 친구들과 웃으며 즐거워하고 있는 아하바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하바는 누구하고도 잘 지낸다. 정원에 있던 그 애의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후다닥 달려 나와서 손에 들고 있었던 케익을 나를 향해 던졌다. 하얀 생크림이 내 머리와 눈에 더버기가 되었다. 친구로 지내는 건 얼마든지 좋아라고 말했기 때문에 괜찮을 줄 알았다. 그 후 그 엄마는 잔인함으로 나를 대했다. 나를 괴롭혔고 지옥에나 가라고 악담을 했다. 이것은 십대였던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었다.

나는 여자애의 방 창가 밑에 앉았다. 여자애가 선물로 주었던 손수건을 꺼내 얼굴에 묻은 크림을 닦아내고 있었다.

"애들아. 조금 있으면 마카나오캐쿠아도 올 거야. 그 애 오면 잘해 주어야 해!"

아하바의 말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골탕 먹여줄까? 벨크로 캣은 우리와 틀리다구."

내가 화장실 바닥에 넘어뜨려 이가 빠진 녀석의 목소리였다.

"나무는 주위의 유해가스를 받아들이고 생명을 주는 산소를 세상에 내놓는 능력을 가졌잖아. 자신만을 위해 산소를 내놓지 않아. 모두를 위해 공기 질을 좋게 만들어. 나무는 아름다움, 그늘, 열매, 야생동물의 거처도 제공해. 나무가 없다면 세상은 황폐해질 거야. 우리 모두 나무같이 살아가길 원해."

아하바는 다른 친구들과 나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노력했다.

"우리 레벨까지 낮아지고 싶지 않아, 아하바 너도 그 봄베이 녀석과 말을 섞지 않았으면 좋겠어."

"서로 구별되면서도 섬길 수 있는 방법은 많을 거야, 차이가 없는 친구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아, 다툴 일이 없는 친구를 사랑하기는 쉬워, 그 애는 우리와 피부색깔이 다를 뿐이라구."

담 너머 여자애 목소리를 들으니 코끝이 찡했다. 하마터면 사내 녀석이 소리 내어 울 뻔했다. 어떤 면에서 모든 사람들은 결혼을 해도 동시에 죽는 것 외에는 어떤 식으로든 헤어진다. 누굴 사랑해도 언젠가는 헤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

"넌 우리를 택하든지 그 원숭이 녀석을 택하든지 해야 할 걸?"

나보다 콧대가 유별나게 높은 녀석이 아하바에게 불평하며 위협적으로 굴었다. 약간 눌린 듯한 코를 가지고 있는 난 그 녀석이 늘 나의 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름까지 알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차이는 싸워야 되는 게 아니라 가꾸어야 할 정원이라구, 너희가 먼저 손을 내미는 건 어때? 컵을 뒤집어놓으면 컵 안에 물을 한 방울도 넣을 수 없어."

아하바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푸훗, 너, 그 검둥이 녀석 사랑하기라도 하는 거니?"

내가 화장실에서 이를 빼뜨린 녀석이 비웃었다.

난 당장 달려 들어가 남은 이들도 부러뜨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사랑은 나도 너희도 맘대로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원래 신의 것일 거야. 그 신의 사랑을 만나면 우리는 사랑할 사람들을 우리 마음대로 선택할 권리마저도 빼앗기고 말아. 내 마음대로 내 맘에 맞는 누구는 사랑하고 마음에 맞지 않는 누구는 미워할 수 없다는 거야. 그분만이 사랑을 풀어주실 수 있기 때문이야."

아하바는 다리를 놓는 일에 동의하지 않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분노도 고스란히 안아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었다. 나는 학교를 그만 두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부모님의 얼굴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실망이 어렸다. 부모님은 큰 충격을 받으셨다. 며칠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언쟁을 벌이고 울었다. 나의 결심이 확고함을 아신 부모님은 결국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내밀며 간청하셨다. 얘야, 우리 인생이 네 손에 달렸다, 제발 우리의 소망을 망가뜨리지 말아 줘, 엄마의 마지막 말씀은 이것이었다. 네가 이렇게 나오면 난 죽을 거다. 엄마는 앓아누우셨다. 말 상대라고는 부모님밖에 없는데 두 분 모두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두려움을 버리고 다시 모험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보고 싶음은 어떠한 두려움도 더 이상 두려움이 되지 못한다.

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 날 오후였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연을 날리고 있었다. 나는 아하바의 연을 높이 들고 힘껏 달려서는 놓아주었다. 연이 하늘 높이 훠얼훨 잘 날아오르자 나도 덩달아 높이 날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난 구경만 하기도 멋쩍어서 운동장에 놀이기구가 있는 구석으로 가서 모래장난을 하고 놀았다. 갑자기 내가 화장실 바닥에 내리꽂았던 녀석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달려갔다. 그 녀석은 연과 실이 나뭇가지에 걸려서 그것을 내리려고 나무에 올라갔는데 나뭇가지에 얽힌 연실을 풀어내려다 새끼손가락이 연실에 휘감겨버렸고, 그 아이는 내려오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다. 애들이 그의 엄마와 구급차를 불렀는데 그들은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애들은 발만 동동거리고 있었다. 난 그 애의 엄마가 오면 날 원숭이 보듯 할 테지만 그런 것 따위는 개의치 않고 나무에 잽싸게 올라갔다. 얽힌 실타래는 당겨지지도 않았고 푸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아직 멀었니?"

"조금만 기다리면 돼. 날 믿어."

그가 날 신뢰하면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난 이빨로 얽힌 실타래를 끊어냈다. 드디어 실타래를 다 끊고 연을 운동장 바닥으로 떨어뜨린 후, 코알라 엄마처럼 그 녀석을 등에 태우고 나무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그 녀석이 내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더운 기운이 확 느껴졌다. 그 동안 꾹꾹 눌러두었던 말을 하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면 더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서둘러 연실을 다시 이어주고 연을 높이 들어주었다. 그 녀석은 힘차게 달렸고 연은 푸른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갔다. 구급차의 삐뽀삐뽀 소리가 가까워졌다. 나는 집으로 재빨리 달려왔다. 뒤에서 봄베이 봄베이, 날 찾는 소리가 연처럼 하늘에서 훨훨 날았다.

다음 날 그 녀석은 나에게 다가와 손에 초콜릿을 슬며시 쥐어주면서 나직하게 말했다. 너에겐 특별한 목소리가 있어. 넌 참된 것에 가장 가깝게 말해. 네가 우리 반에 있어서 좋아! 그 녀석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지만 내겐 큰 힘이 되었다. 밤에 자다가도 그 단어들이 내 안에서 밝게 타올라 가슴이 뜨거워지곤 한다. 그 말은 나에게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내 말과 글이 흔들리고 넘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내 삶의 모양을 빚어갔다. 녀석은 내가 영어 캠프에 참가하도록 도와주었고 영어로 말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었다. 나의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 내가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진솔하게 얘기해 주었다.

"난 무엇을 더 배우면 되는 거야?"

나는 친구들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공통점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정원을 가꾸는 것과 같아."

콧대가 유별나게 큰 녀석이 어린왕자처럼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가꾼다는 의미는 뭐야?"

내가 물었다. 진짜 부끄러운 것은 모르는 것을 아는 체 하는 것이다.

"그건 여러 가지 꽃이나 나무 등을 심고 아름답게 어울리도록 가꾸는 걸 의미해."

"잔디도 깎아주고, 나쁜 가지는 잘라주는 것도 필요하겠다. 그치?"

"잡초도 뽑아주고, 벌레도 잡아주는 것도 필요해."

"철로가 있어야 기차가 달리듯이 관계라는 다리가 있어야 사랑이 흐를 수 있음을 네가 보여주었어."

친구들의 말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없을 때, 내가 나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말은 지금도 여전히 나를 사로잡는다. 나에게 용서하고 인내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했고 위풍당당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도와주었다.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다는 소망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불확실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학교 풍경 한 가운데서 모험은 나에게 두려움 대신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4학년 정치학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로스쿨의 할당제와 차별철폐정책 때문에 흑인들이 나를 제치고 로스쿨에 들어가게 될 거야. 한 젊은 백인 남학생이 우려를 말하며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 녀석도 콧대가 높았다. 난 로스쿨에 합격했고 우등생이었고 로스쿨 입학시험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지……. 로스쿨에 입학한 모든 흑인이 차별철폐정책의 혜택을 보았을 거라는 생각은 현실과 다르다.

두 문화를 다 안다는 것은 어느 쪽에도 완전히 편안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세계 중 한 곳에만 속한 많은 이들은 다른 쪽 세계의 사람들에 대해 잘 모른다. 그리고 두 세계 모두에서, 다른 면에서는 사려 깊은 사람들조차도 때로는 개인적 지식과 관계 대신 다른 세계에 대한 고정관념과 억측으로 만족하고 만다. 한쪽에서는 결혼과 가정이 무너지고 자기 성취와 개인적 행복에 대한 집착이 커져가고 있었고, 다른 쪽에는 독선과 편견, 권력남용이 창궐했다.

"한쪽은 동성애자들과 절대 어울리지 않으려 해. 우리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우리들도 동성애자들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기를 원한다는 게 문제야. 다른 쪽은 우리가 동성애에 대한 주류문화의 믿음을 받아들이기를 원해."

아하바는 깊은 간격을 잇는 다리를 놓으려 시도하면서 비웃음을 당해야 했다.

"난 견해 차이로 인해 적대하는 두 세계 중, 한 발은 이쪽 편에, 다른 발은 저쪽 편에 딛고 있어." 내가 말했다.

"그보다 전혀 다른 두 상황에 동시에 몰입해 보는 건 어떨까? 내 경우에는 이쪽 편에도 두 발, 저쪽 편에도 두 발을 다 딛고 있어, 내부자인 동시에 외부자이기를 자처해."

아하바는 내부자인 동시에 외부자로 활동하면서 양쪽 모두에게 비판과 오해를 받는 아픔을 토로했다.

예수, 그는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가셨지. 그가 삭개오의 집으로 가셨을 때 사람들은 불평하며 위협적으로 굴었지만 예수는 그 걸음을 멈추지 않으셨어. 그들과 식탁에 둘러앉으셨지. 어렸을 적 교회 주일학교에서 뽕나무에 올라 간 어른 삭개오를 그려가며 예수를 재미있게 얘기해주던 선생님이 생각났다.

아하바와 나는 난민캠프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사흘 간 머물렀다. 로힝야족 난민들과 함께 마실 물을 길러왔다. 그들과 화장실 보수작업을 했고 공동화장실을 사용했다. 방수천과 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임시 거처에서 그들과 함께 잠자고 함께 식탁에 둘러앉았다.



양정구/몽골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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