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예배 ] 2024년 8월 3일 드리는 가정예배
정종원 목사
2024년 08월 03일(토)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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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아모스 7장 1~9절
▶찬송 : 200장
선지자 아모스의 이름에는 '무거운 짐을 진 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에게는 특이한 이력이 있는데, 먼저는 그가 선지학교를 통해 훈련받고 배출된 일반적인 선지자가 아니라는(14절) 것이고, 둘째는 그가 남 유다 출신임에도 북 이스라엘을 향해 예언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주변의 선지자들로부터 선지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북이스라엘은 남쪽 사람, 아모스의 예언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라 예상되지만 그렇다고 과연 이러한 이유들이 그에게 무거운 짐이 될 수 있었을까?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이스라엘을 비롯한 심판하실 주변 나라들의 몇몇의 죄를 말씀하시며 심판하실 것을 예고하셨다. 그리고 아모스는 이를 그들에게 전해야 했고, 다시 그들의 변호사처럼 중보 해야 했다. 이러한 일이 아무리 사명이라 하지만 어디 쉽고 가벼웠을까? 7장부터 9장까지 여호와께서는 아모스에게 다섯 가지의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이는 한결같이 이스라엘이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처럼 친히 자기의 백성 삼으셨던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2장 4절에서 그 몇 가지의 이유를 말씀하신다. 첫째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무시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율례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며, 셋째는 말씀이 아닌 거짓을 쫓아갔다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있어 율법이 얼마나 중요한 기준이었는지 이를 실감하게 하는 부분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언약의 관계라 말하는데, 이는 우리가 순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지만 그렇게 얻은 우리의 새로운 삶에 하나님은 언약의 법을 세워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시고(요1:14),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며(시119:105),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빌4:7) 우리로 믿음의 삶을 영위하게 한다. 그런데 우리가 어찌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외면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로 하여금 심판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살 수 있도록 무엇을 예비해 두셨을까? 그것은 '중보자'다. '중보자'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두시어 행하게 하신 사람을 뜻한다. 출애굽 시대에는 모세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중보자로 세우셨다. 하나님 편에서는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게 하셨고, 그들이 범죄 했을 때 그들의 편에서 긍휼히 여겨주실 것을 간청하는 중보자가 되게 하셨다(출32:32).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중보자로 오셔서 복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 했을 때에는 그들의 무지를 들어 용서해 주실 것을 간청하시기도 했다(눅23:34). 아모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지만, 그가 중보기도를 하자 여호와는 말씀하셨던 심판을 멈추시는 일을 반복하신다. 이처럼 중보기도를 하게 한 이유는 바로 우리의 연약함, 즉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2절, 5절). 우리는 연약하여 항상 중보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당신을 위한 중보 기도자가 있는가? 당신은 당신의 가족들, 당신의 사람들을 위해 중보자로 서 있는가?
세 번째 환상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모스가 중보 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다시는 용서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신다. 이는 중보기도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멈추게 하신 것이다. 허락하신 기회의 시간이 다 지나갔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세우는데 그 목적을 두고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러니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도 그치시고, 중보기도도 멈추게 하신 날을 우리는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중보기도가 멈추지 않는 동안 하나님의 법이 우리 안에 견고히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우리 안에 하나님의 법이 견고하게 세워지기까지 혼자 두지 않으시고 중보자를 보내시어 함께 하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를 소중히 여기게 하시고, 우리 또한 우리에게 맡겨주신 귀한 사람들을 위해 중보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종원 목사/장성제일교회
▶찬송 : 200장
선지자 아모스의 이름에는 '무거운 짐을 진 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에게는 특이한 이력이 있는데, 먼저는 그가 선지학교를 통해 훈련받고 배출된 일반적인 선지자가 아니라는(14절) 것이고, 둘째는 그가 남 유다 출신임에도 북 이스라엘을 향해 예언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주변의 선지자들로부터 선지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북이스라엘은 남쪽 사람, 아모스의 예언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라 예상되지만 그렇다고 과연 이러한 이유들이 그에게 무거운 짐이 될 수 있었을까?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이스라엘을 비롯한 심판하실 주변 나라들의 몇몇의 죄를 말씀하시며 심판하실 것을 예고하셨다. 그리고 아모스는 이를 그들에게 전해야 했고, 다시 그들의 변호사처럼 중보 해야 했다. 이러한 일이 아무리 사명이라 하지만 어디 쉽고 가벼웠을까? 7장부터 9장까지 여호와께서는 아모스에게 다섯 가지의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이는 한결같이 이스라엘이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처럼 친히 자기의 백성 삼으셨던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2장 4절에서 그 몇 가지의 이유를 말씀하신다. 첫째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무시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율례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며, 셋째는 말씀이 아닌 거짓을 쫓아갔다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있어 율법이 얼마나 중요한 기준이었는지 이를 실감하게 하는 부분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언약의 관계라 말하는데, 이는 우리가 순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지만 그렇게 얻은 우리의 새로운 삶에 하나님은 언약의 법을 세워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시고(요1:14),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며(시119:105),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빌4:7) 우리로 믿음의 삶을 영위하게 한다. 그런데 우리가 어찌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외면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로 하여금 심판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살 수 있도록 무엇을 예비해 두셨을까? 그것은 '중보자'다. '중보자'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두시어 행하게 하신 사람을 뜻한다. 출애굽 시대에는 모세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중보자로 세우셨다. 하나님 편에서는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게 하셨고, 그들이 범죄 했을 때 그들의 편에서 긍휼히 여겨주실 것을 간청하는 중보자가 되게 하셨다(출32:32).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중보자로 오셔서 복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 했을 때에는 그들의 무지를 들어 용서해 주실 것을 간청하시기도 했다(눅23:34). 아모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지만, 그가 중보기도를 하자 여호와는 말씀하셨던 심판을 멈추시는 일을 반복하신다. 이처럼 중보기도를 하게 한 이유는 바로 우리의 연약함, 즉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2절, 5절). 우리는 연약하여 항상 중보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당신을 위한 중보 기도자가 있는가? 당신은 당신의 가족들, 당신의 사람들을 위해 중보자로 서 있는가?
세 번째 환상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모스가 중보 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다시는 용서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신다. 이는 중보기도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멈추게 하신 것이다. 허락하신 기회의 시간이 다 지나갔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세우는데 그 목적을 두고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러니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도 그치시고, 중보기도도 멈추게 하신 날을 우리는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중보기도가 멈추지 않는 동안 하나님의 법이 우리 안에 견고히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우리 안에 하나님의 법이 견고하게 세워지기까지 혼자 두지 않으시고 중보자를 보내시어 함께 하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를 소중히 여기게 하시고, 우리 또한 우리에게 맡겨주신 귀한 사람들을 위해 중보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종원 목사/장성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