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양칼럼 ]
김동찬 목사
2024년 08월 14일(수)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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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길었던 장마가 끝나고 삼복더위의 한복판을 지나온 요즘, 계절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 속에 하루하루를 맞이한다. 우리나라는 뚜렷한 사계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전통 한의학에서는 일 년을 사계절이 아닌 오계절로 보았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있는 장하(長夏)라는 계절이 그것이다. 봄에 싹튼 생명이 하기(夏期) 내내 자라나다가 장하의 기간에 그 열매가 속으로, 질적으로 농익게 된다. 이러한 자연의 모습은 신앙의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이스라엘의 사상 중에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본떠 창조되었으므로 그 하나님을 좀 더 닮아가야 한다"라는 신학적인 명제가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의미의 라틴어 '이마고 데이'(Imago Dei)와 인간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닮아가야 한다는 뜻의 라틴어 '이미타치오 데이'(Imitatio Dei)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각각 구약과 신약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을 닮아가야 한다"라는 명령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일 일을 도무지 알 수 없고, 아무리 걱정해도 돋아나는 흰머리 하나 막을 수 없는 인간이 전능자의 지혜와 능력을 흉내 낼 수 없음은 자명하다. 또한 짧은 인생을 살다 떠나가는 유한한 존재가 영원하신 지존자의 초월적인 시간을 이해할 리가 만무하다. 그리고 온 우주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창조주의 경륜 앞에 자기 집안 하나도 잘 건사하지 못하는 인생의 모습은 참 초라하기만 하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감히 추론하기로는 인간이 하나님의 지혜, 능력, 초월, 경륜을 닮을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닮아갈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주신 명령으로 이해한다. 성경 속에 계시되었고, 자연 속에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크고 넓으신 마음을 헤아리고 배우고, 또 그 마음을 닮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엿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똑같이 햇빛을 비춰 주시고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마 5:45b, 우리말성경)." 참 시적인 표현이다. 매일 떠오르는 해와 곳곳의 대지를 적시는 비를 보면서, 선하고 의로운 자뿐만 아니라 악하고 불의한 자에게까지 공평하게 베풀어지는 크고 넓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다는 것은 놀라운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닮아가려고 노력할 때, 한 철학자의 얘기가 떠오른다.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자의 삶을 가리켜 "사다리의 맨 밑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삶"으로 비유했다. 성경에도 마치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처럼 점진적으로 성장해 가는 신앙의 여정을 강조하면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개역개정)는 높은 수준에 도달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그 고귀한 성숙의 지점을 향해 우리도 사다리의 어딘 가에서부터 신앙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전쟁과 재난과 전염병의 상황 속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통감하고 나 자신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면, 거기서부터 신앙의 사다리를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내 머리로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크고 넓으신 마음이 온 세상 사람들을 다 품으시는 것을 볼 수 있다면, 그만큼 사다리의 계단을 더 올라간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자비로움을 닮아 어느 새 내 마음도 조금 더 커지고 넓어지고, 조금 더 너그러워지는 것을 느낀다면, 사다리의 계단을 많이 올라간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에서 최고의 선이라고 일컫는 '이미타치오 데이', 즉 하나님을 닮아가는 길이다.
김동찬 목사 / 광석교회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이스라엘의 사상 중에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본떠 창조되었으므로 그 하나님을 좀 더 닮아가야 한다"라는 신학적인 명제가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의미의 라틴어 '이마고 데이'(Imago Dei)와 인간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닮아가야 한다는 뜻의 라틴어 '이미타치오 데이'(Imitatio Dei)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각각 구약과 신약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을 닮아가야 한다"라는 명령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일 일을 도무지 알 수 없고, 아무리 걱정해도 돋아나는 흰머리 하나 막을 수 없는 인간이 전능자의 지혜와 능력을 흉내 낼 수 없음은 자명하다. 또한 짧은 인생을 살다 떠나가는 유한한 존재가 영원하신 지존자의 초월적인 시간을 이해할 리가 만무하다. 그리고 온 우주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창조주의 경륜 앞에 자기 집안 하나도 잘 건사하지 못하는 인생의 모습은 참 초라하기만 하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감히 추론하기로는 인간이 하나님의 지혜, 능력, 초월, 경륜을 닮을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닮아갈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주신 명령으로 이해한다. 성경 속에 계시되었고, 자연 속에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크고 넓으신 마음을 헤아리고 배우고, 또 그 마음을 닮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엿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똑같이 햇빛을 비춰 주시고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마 5:45b, 우리말성경)." 참 시적인 표현이다. 매일 떠오르는 해와 곳곳의 대지를 적시는 비를 보면서, 선하고 의로운 자뿐만 아니라 악하고 불의한 자에게까지 공평하게 베풀어지는 크고 넓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다는 것은 놀라운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닮아가려고 노력할 때, 한 철학자의 얘기가 떠오른다.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자의 삶을 가리켜 "사다리의 맨 밑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삶"으로 비유했다. 성경에도 마치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처럼 점진적으로 성장해 가는 신앙의 여정을 강조하면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개역개정)는 높은 수준에 도달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그 고귀한 성숙의 지점을 향해 우리도 사다리의 어딘 가에서부터 신앙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전쟁과 재난과 전염병의 상황 속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통감하고 나 자신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면, 거기서부터 신앙의 사다리를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내 머리로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크고 넓으신 마음이 온 세상 사람들을 다 품으시는 것을 볼 수 있다면, 그만큼 사다리의 계단을 더 올라간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자비로움을 닮아 어느 새 내 마음도 조금 더 커지고 넓어지고, 조금 더 너그러워지는 것을 느낀다면, 사다리의 계단을 많이 올라간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에서 최고의 선이라고 일컫는 '이미타치오 데이', 즉 하나님을 닮아가는 길이다.
김동찬 목사 / 광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