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시대를위한미래담론 ] (8) 인공지능 로봇의 종교적·신앙적 행위 가능성
정대경 교수
2024년 09월 04일(수) 07:00
|
특정한 분야 업무를 처리하던 기존 특화 인공지능(Artificial Narrow Intelligence)으로부터 다양한 분야 업무를 포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범용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으로의 연구 및 개발 방향 강화는 공상과학소설이나 영화에서 보던 모습들을 실현하는 계기가 될까? 앞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직면하게 되는 미래 기술사회는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과 관련하여 어떤 도전을 가하게 될까? 필자는 이번 글을 통해 인공지능 로봇의 종교적, 신앙적 행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인류 역사 안에서 인간을 닮은 인공물에 대한 상상은 종종 등장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청동거인 탈루스부터 중세 유대교의 진흙 인간,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까지 다양하다. 기독교 역사 안에도 존재한다. 16세기 스페인의 필립 2세(Philip II) 왕의 명령에 따라 제작된 '수도사 자동인형(Automaton of a Friar)'이 그것이다. 이 인형은 태엽장치를 바탕으로 움직이면서 회개하는 행위(mea culpa)를 재현하듯 한 손으로는 자신의 가슴을 치며, 다른 한 손으로는 십자가가 달린 묵주를 입에 가져다 댄다. 이것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덩달아 경건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날에도 수도사 자동인형의 맥을 잇는 인공지능 로봇이 있다. 이탈리아 출신 가브리엘레 트로바토(Gabriele Trovato)는 산토(SanTO, Sanctified Theomorphic Operator)라는 작은 로봇을 만들었다. 이 로봇은 음성을 바탕으로 사람과 상호작용 하면서 성경을 읽거나 인용할 수 있고, 가톨릭 성인들의 삶을 이야기하거나 기도문을 제공할 수 있다. 트로바토는 이 로봇이 신앙인들의 영성 생활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산토의 후속 모델은 대략 1미터 정도 크기로 제작되었고 사용되고 있다. 기독교가 아닌 불교에도 인공신체를 가지고 움직이는 로봇 승려가 존재한다. 일본 교토 한 사찰의 '마인다(Mindar)'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불교 경전과 가르침을 바탕으로 사찰에 찾아오는 이들과 종교적인 상호작용을 한다.
로봇들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바탕의 인공지능은 이미 신앙생활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인 '텍스트 위드 지저스(Text with Jesus)'는 예수님을 포함한 성경의 다양한 인물들을 AI로 구현해 그들과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한다. 국내에는 초원AI와 같은 어플리케이션이 신앙인들이나 구도자들이 제시하는 질문에 신앙적인 답을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인공지능과 로봇은 기독교 신앙생활을 포함한 인간의 종교적 활동에 이미 깊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다트머스 대학의 도덕철학 교수인 제임스 H. 무어는 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인공지능 로봇을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 이 분류법을 토대로 종교적인 행동을 하는 인공지능 로봇을 다음과 같이 구분해볼 수 있다. △종교적인 영향을 주는 행위자(religious impact agent) △암묵적인 종교행위자(implicit religious agent) △명시적인 종교행위자(explicit religious agent) △완전한 종교행위자(full religious agent). 먼저 '종교적인 영향을 주는 행위자'는 인공지능이나 로봇 그 자체가 종교적인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종교적인 영향을 끼치게 것을 의미한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언제든지 종교적인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가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범주인 '암묵적인 종교행위자'는 그것의 발명과 생산목적 자체가 종교적이었던 인공물을 가리킨다. 일반적인 예로, 신앙인들이 한 두 개쯤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의 성경이나 찬송, 기도 관련 어플리케이션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세 번째 종류인 '명시적인 종교행위자'는 앞선 암묵적인 종교행위자와 달리 설계된 프로그램에 따라 단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와 실시간 상호작용을 하면서 사용자의 질문과 요청에 따라 반응할 수 있는 인공물을 가리킨다. 앞서 소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산토나 초원AI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완전한 종교행위자'는 의식과 지향성,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종교적 행위를 하는 인공물을 의미한다. 이러한 수준의 인공지능 로봇은 '아직까지는'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한 종교행위자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까지는'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인간 수준의 의식현상을 보여주는 인공물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대과학이 밝혀주듯 인간 의식현상이 신경생리적인 과정으로부터 수반되고 있다면, 그리고 공신력 있는 현대신학과 철학이 이야기하듯 인간정신이 이원론적인 것으로서 신체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면, 정신과 신체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인간현상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더불어, 우리는 피조세계 역사 안에서 인간의 정신이 후발주자로서 물질로부터 창발된 것임을 안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과 같은 수준의 정신이 창발되는데 필요한 물리적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인공물로부터 인간과 유사한 정신이 출현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지면의 한계로 이 부분을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하지만, 체화된 인지, 취약한 신체와 항상성, 감정과 느낌을 구현하고자 하는 소프트 로보틱스 등의 분야와 개념은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한다.
범용 인공지능을 연구, 개발하고 있는 오픈AI 최고전략책임자(CSO) 제이슨 권이 이야기하듯 우리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향후 인간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비해야 한다. 이 가능성에는 현재 수준의 인공지능 로봇이 신앙적, 종교적 차원에 끼치는 영향뿐만 아니라, '완전한 종교행위자'와 같은 인공물의 등장으로 인한 파장과 영향도 포함된다. 컴퓨터 과학자이자 신학자인 노린 헤르츠펠트(Noreen Herzfeld)는 인공지능 로봇을 연구, 개발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이면에는 자기와 닮은 존재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과 관계맺기를 갈망하는 욕망이 뒤섞여 있다고 지적한다. 헤르츠펠트는 이러한 욕망을 바탕으로 우리가 감당할 수도 없는 인공존재를 만들어서는 안 되며, 인공지능 로봇은 도구적 존재로 인간의 삶과 문명을 이롭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보조적 존재로만 남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우리는 이를 잘 기억하고, 인공지능 로봇의 연구와 개발 방향을 예의 주시하며 인류의 미래 사회가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공적인 담론과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정대경 교수/연세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