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떼는말이야 ]
구재서 목사
2024년 09월 04일(수)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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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모태신앙이 아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임관한 이후 예수님을 영접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역사하셨다. 졸업 시즌에 한 교수님은 훌륭한 군인이 되기 위해 늘 책을 가까이할 것을 당부하셨다. 평생을 가까이할 책 중에 인류의 최대 베스트셀러라는 성경이 포함되어 있었다.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본질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성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때 믿음의 3대 가정에서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오직 기도로 살아온 자매를 만나게 되었다. 첫 만남을 잊을 수 없다. 광화문 인근의 한 갤러리에서 알바를 하고 있던 한 여대생을 우연히 만났다. 보는 순간 가슴이 멎는 듯했다. 설레는 가슴을 진정하며 군인정신으로 다가갔다. 첫 만남에서 "내가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그 여인을 오늘 바로 만났다"고 고백했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아니 그렇게 고백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진실이 통했던 것일까.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가야 하는 법! 그녀가 다니는 교회를 가기로 결단했다. 다행히 그녀의 부모님께서도 필자를 보시고 맘에 드셨는지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셨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내 인생의 반려자가 되었고 난 그녀를 통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게 되었다.
예수님을 모시고 군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군인으로서 그 어떤 얽매임 없이 국가와 국민에 충성하는 멋진 군인이 되길 원했고, 더불어 사회적·환경적으로 안정된 가정환경을 제공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살고자 했다.
필자는 군인이었기에, 군인답게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왕이면 훌륭한 군인답게, 아니 훌륭한 군인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훌륭한 군인으로 사는 것일까? 바울이 유언처럼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 말씀을 붙잡았다. "너는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3-4)."
군인은 첫째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둘째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며, 셋째는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는 것이다.
군인의 삶은 고난하다. 내가 원하는 보직, 근무 장소, 부대, 상관 등 그 어떤 것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오직 명령에 따라가라는 곳으로 가는 삶이다. 지휘관으로서 자신의 행위뿐만 아니라 부하들의 잘잘못도 모두 책임져야 하는 고난의 자리이기도 하다. 육군 준장 시절 지휘관으로 취임 후 업무파악도 하기 전인 취임 3주 만에 한 부하의 일탈 행위로 지휘책임을 지고 보직 해임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슴 아팠지만, 육군의 핵심 가치인 '책임'을 진다는 차원에서 가치와 의미를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당시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주님을 생각했다. 털끝만큼도 잘못이 없으신 주님은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전적인 책임을 지시고 생명까지 바치셨다. 그에 비하면 내가 진 책임은 '조족지혈(鳥足之血)'도 안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군인은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산다. 34년 군생활 동안 20차례 이상 이사 다니며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았다. 교육기관에서 근무하던 때를 제외하고 명절을 고향에서 부모님과 함께 보낸 적이 없었다. 자녀들과도 대부분 떨어져 살았다. 한번은 아들에게 사관학교를 권한 적이 있었다. 돌아온 대답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자기는 가족들과 오손도손 함께 사는 것이 꿈인데, 아버지처럼 떨어져 살기 싫다는 대답이었다. 나의 얽매이지 않음이 사랑하는 가족 구성원에게는 상처일 수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가슴이 멍했다. 내가 내 자녀에게는 가족의 따뜻함을 온전히 제공하지 못했지만 나의 얽매이지 않음이 다른 국민들에게는 가족의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34년을 기꺼이 버틸 수 있었다.
전역 후 지금은 자녀들과 지척에 살며 가족애를 나누며 살고 있다. 제복 입고 오늘도 전후방에서 고생하는 후배들에게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스스로 고난을 자초하며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살았던 삶이 나를 부르신 분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다. 군에서는 눈에 보이는 제복을 입고 살았다면 앞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전신갑주를 입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진정한 영적 군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구재서 목사 / 초대교회·육군훈련소 전 소장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역사하셨다. 졸업 시즌에 한 교수님은 훌륭한 군인이 되기 위해 늘 책을 가까이할 것을 당부하셨다. 평생을 가까이할 책 중에 인류의 최대 베스트셀러라는 성경이 포함되어 있었다.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본질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성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때 믿음의 3대 가정에서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오직 기도로 살아온 자매를 만나게 되었다. 첫 만남을 잊을 수 없다. 광화문 인근의 한 갤러리에서 알바를 하고 있던 한 여대생을 우연히 만났다. 보는 순간 가슴이 멎는 듯했다. 설레는 가슴을 진정하며 군인정신으로 다가갔다. 첫 만남에서 "내가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그 여인을 오늘 바로 만났다"고 고백했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아니 그렇게 고백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진실이 통했던 것일까.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가야 하는 법! 그녀가 다니는 교회를 가기로 결단했다. 다행히 그녀의 부모님께서도 필자를 보시고 맘에 드셨는지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셨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내 인생의 반려자가 되었고 난 그녀를 통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게 되었다.
예수님을 모시고 군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군인으로서 그 어떤 얽매임 없이 국가와 국민에 충성하는 멋진 군인이 되길 원했고, 더불어 사회적·환경적으로 안정된 가정환경을 제공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살고자 했다.
필자는 군인이었기에, 군인답게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왕이면 훌륭한 군인답게, 아니 훌륭한 군인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훌륭한 군인으로 사는 것일까? 바울이 유언처럼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 말씀을 붙잡았다. "너는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3-4)."
군인은 첫째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둘째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며, 셋째는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는 것이다.
군인의 삶은 고난하다. 내가 원하는 보직, 근무 장소, 부대, 상관 등 그 어떤 것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오직 명령에 따라가라는 곳으로 가는 삶이다. 지휘관으로서 자신의 행위뿐만 아니라 부하들의 잘잘못도 모두 책임져야 하는 고난의 자리이기도 하다. 육군 준장 시절 지휘관으로 취임 후 업무파악도 하기 전인 취임 3주 만에 한 부하의 일탈 행위로 지휘책임을 지고 보직 해임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슴 아팠지만, 육군의 핵심 가치인 '책임'을 진다는 차원에서 가치와 의미를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당시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주님을 생각했다. 털끝만큼도 잘못이 없으신 주님은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전적인 책임을 지시고 생명까지 바치셨다. 그에 비하면 내가 진 책임은 '조족지혈(鳥足之血)'도 안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군인은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산다. 34년 군생활 동안 20차례 이상 이사 다니며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았다. 교육기관에서 근무하던 때를 제외하고 명절을 고향에서 부모님과 함께 보낸 적이 없었다. 자녀들과도 대부분 떨어져 살았다. 한번은 아들에게 사관학교를 권한 적이 있었다. 돌아온 대답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자기는 가족들과 오손도손 함께 사는 것이 꿈인데, 아버지처럼 떨어져 살기 싫다는 대답이었다. 나의 얽매이지 않음이 사랑하는 가족 구성원에게는 상처일 수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가슴이 멍했다. 내가 내 자녀에게는 가족의 따뜻함을 온전히 제공하지 못했지만 나의 얽매이지 않음이 다른 국민들에게는 가족의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34년을 기꺼이 버틸 수 있었다.
전역 후 지금은 자녀들과 지척에 살며 가족애를 나누며 살고 있다. 제복 입고 오늘도 전후방에서 고생하는 후배들에게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스스로 고난을 자초하며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살았던 삶이 나를 부르신 분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다. 군에서는 눈에 보이는 제복을 입고 살았다면 앞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전신갑주를 입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진정한 영적 군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구재서 목사 / 초대교회·육군훈련소 전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