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왜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까?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9>속죄론 논쟁

박경수 교수
2019년 12월 24일(화) 17:10
타락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고 하나님과 화해하게 된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받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성격에 대한 신학적 해명과 논쟁이 중세 시대에 벌어지게 된다. 그 논쟁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중세 스콜라신학의 선구자라 불리는 안셀무스와 아벨라르이다.



배상설(賠償說, ransom theory)



초대교회로부터 11세기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해석하는 고전적 견해는 배상 이론이었다. 배상설에 따르면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꾐에 빠져 죄를 짓고 타락하면서 인류는 사탄의 수중에 떨어졌다. 그리하여 인류를 구출하고자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노예나 포로를 되돌려 받기 위해 몸값을 지불하듯이, 사탄에게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그런데 사탄은 그리스도가 아무런 죄가 없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를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 주었다. 십자가는 사탄을 속이기 위한 덫이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미끼였던 것이다. 사탄은 죄인을 마음대로 다룰 권리는 갖고 있지만,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죄가 없는 분을 죽인 것은 한 마디로 사탄의 권한 남용이었다. 따라서 사탄은 죄 없는 예수를 죽인 대가로 인류를 하나님께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구속을 위한 배상금, 즉 사탄에게 지불한 속전(贖錢)이었던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죄를 지은 인간은 죽임을 당해도 마땅하지만, 아무런 죄가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정의도 충족되고 우리도 죽음의 올무에서 놓여날 수 있게 되었다.

배상설은 교회역사에서 거의 천 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해석하는 관점이었다. 그러나 이 속죄론에는 몇 가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있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빚진 분이라는 말인가? 하나님이 속이고 기만하는 분일 수 있는가? 하나님이 사탄과 거래를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마귀에게 배상금을 지불한다면 마귀를 하나님과 동등한 신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이 난처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인물이 바로 안셀무스이다.



만족설(滿足說, satisfaction theory)



중세 스콜라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안셀무스(1033~1109)는 이탈리아 북쪽 알프스의 아오스타에서 태어나 프랑스 노르망디 베크의 베네딕트수도원 원장을 거쳐 잉글랜드 캔터베리 대주교를 역임한 수도사이자 학자이다. 그의 중요한 학문적 업적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과 하나님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쓴 '독백'과 '강론', 그리고 속죄론을 다룬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는가?'를 저술한 것이다.

안셀무스는 왜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 하셨는가를 질문하였다. 그리고 성육신 하신 하나님 즉 완전한 인성과 신성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겪고 죽은 것은,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풀고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을 지키기 위함이었다고 대답하였다. 안셀무스에 따르면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슬러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써 죽을 운명에 빠졌고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따라서 신인(神人)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위해 대신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고, 궁극적 순종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돌렸다. 이를 만족설이라고 일컫는다.

안셀무스에 의하면 죄를 지은 인간은 사탄에게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죄인인 인간은 도무지 하나님께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없으므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죽음으로써 죄의 대가를 하나님께 지불하였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대속(代贖)의 희생제물이 된 것이다. 안셀무스는 십자가의 사건을 법적인 상환의 개념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만족설은 '법적 보상설'로 불리기도 한다.



도덕감화설(道德感化說, moral influence theory)



안셀무스의 만족설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속죄론을 제시한 인물이 피에르 아벨라르(1079~1142)이다. 아벨라르는 프랑스 낭트 인근의 르 팔레에서 태어나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의 도시들에서 활동하다가 부르고뉴 지역의 생 마르셀 수도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가 가정교사로서 가르쳤던 엘로이즈(Heloise)와의 연애 사건은 아마도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며 비장한 사랑 이야기에 속할 것이다.

아벨라르는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고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선택이요 결과라고 생각했다. 아벨라르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이 사탄에게 지불한 배상금도 아니고,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공의와 영광을 만족시키기 위한 희생제물도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순종이었다. 우리가 구속된 것은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수난을 통해 보여준 그 큰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벨라르가 볼 때 안셀무스는 하나님을 심판자와 재판관으로만 보았지, 탕자를 기껍게 안아주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즉 사랑의 하나님은 보지 못했다. 아벨라르에게 십자가의 죽음은 곧 사랑이었으며, 그 큰 사랑이 성육신의 동기요 구속의 원인이었다.

아벨라르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보여준 그 큰 사랑이 죄인들의 가슴에 사랑을 불러일으켜, 그들이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 하나님에게로 돌이키도록 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사랑이 하나님에게서 떠난 인간을 다시 하나님께로 이끌어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벨라르의 속죄론을 도덕감화설이라 부른다.

하지만 아벨라르의 이러한 주장은 당대 최고의 권위를 누렸던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결국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는 아벨라르를 정죄하였다. 안셀무스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성인으로 추대되었지만, 당대 "가장 예리한 사상가, 대담한 신학자"로 평가받은 아벨라르는 이단으로 단죄되었다. 시대를 앞섰기에 고난의 삶을 살았던 아벨라르는 지금 그의 영원한 연인 엘로이즈와 나란히 파리의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 7구역에 묻혀 있다.



박경수 교수 / 장신대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