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세례교인의 성찬 참여에 대한 우려의 마음

[ 독자투고 ]

이홍술 목사
2019년 12월 30일(월) 12:07
본교단은 지난 104회기 총회에서 유아세례교인의 성찬참여를 가결하고 노회 수의과정을 거쳐 헌법이 개정되었음을 공포하였다. 물론 신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연구자들의 노력과 총회에 참석한 총대들의 결정에 의한 것이므로 그 결의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 제도를 시행함에 있어서 몇 가지 부분은 한 번쯤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 성경이 말하는 성찬참여의 조건을 기억해야 한다는 점이다.

성경은 성찬참여의 조건을 세례에 두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성찬의 의미를 알고 주의 몸을 분별하여 합당한 자세로 참여해야 함을 가르친다(고전 11:27~29). 총회가 유아세례교인들의 성찬 참여를 결의하고 공포한 것은 성찬 참여의 조건이 세례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 주의 몸을 분별할 만한 신앙과 자세를 중요시했다.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하시며 성찬 참여자의 올바른 신앙의 자세를 당부했다. 그렇다면 유아들의 경우 주의 몸을 분별할 만한 신앙과 능력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세례를 받은 성인들도 성찬예식 앞에 서면 더욱 숙연해지는데, 과연 어린아이들의 마음에 그런 신앙의 자세가 있다고 볼 수 있겠는가? 만약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는데 그들로 하여금 성찬에 참여케 한다면 교회는 본의 아니게 그들로 죄를 짓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총회에서 준비한 세부지침 안은 내적인 요소보다는 무엇을(포도주, 떡) 어떻게 먹일 것인가 하는 외적인 면에 치중하고 있다. 총회는 유아세례교인들이 성찬참여를 통해 죄를 짓지 않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2. 유아시절부터 차별을 경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교단은 오래 전부터 유아들에 대한 배려가 깊은 교단이다. 그 근거는 우리 교단이 1903년에 채택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0장 3절에 대한 미국 남장로교회의 유권적인 선언문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선언문의 내용을 보면 "…유아 시절에 죽은 모든 아이는 구원의 선택에 포함되어 있으며,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에 의해서 거듭나고 구원을 받는다고 우리는 믿는다…"로 되어 있다. 우리 교단은 1968년 제 52회 총회에서 이 신앙고백을 총회 헌법에 첨가키로 결의하였다(헌법에 수록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선언문 참조). 이를 보면 우리 교단은 유아들의 구원에 대해 매우 넓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유아들에 대한 이런 넓은 이해를 가진 교단으로서 아직 성찬의 의미도 알지 못하는 유아세례교인들에게 성찬참여권을 줌으로써 감수성이 매우 예민한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신앙 안에서의 차별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며, 정말 차별을 전혀 느끼지 않는 방안이 있다면 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참여치 못한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모아 그들에게 과자(사탕, 초콜릿)를 주고 음료수를 주며 그들을 위로한다고 하는데…, 이런 행위는 해답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더욱 좋지 않는 결과를 만들게 될 것이다. 왜 성찬 예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로하면서까지 유아세례교인들을 성찬에 참여시켜야 하는가?

3. 좋은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교회의 1세대, 2세대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교회와 사회에 큰 본이 되고 신실한 믿음의 선배들이었다. 그분들은 좋은 전통들을 많이 남겨주었다. 유아세례교인들의 성찬 참여도 입교라고 하는 법을 정하여 그 과정을 거친 다음에 참여토록 했다. 적어도 그 나이쯤 되어야 성찬의 의미를 알고 주의 몸을 분별할 만한 신앙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옳은 생각이었다고 본다. 사실 유아세례는 아이가 신앙고백을 하거나 아이가 서약을 했기에 베푸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신앙과 서약으로 유아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아이의 신앙고백과 아이의 서약이 이루어진 후에야 비로소 유아세례는 완성이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입교라고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유아세례교인일지라도 입교를 한 후에 성찬에 참여하도록 했던 것이다. 우리는 믿음의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좋은 전통들은 이어가야 할 것이다. 이번에 개정 된 헌법을 보면 공동의회 참석 자격에 대해서는 18세로 나이까지 정해놓았으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신중한 자세를 요구하는 성찬 참여에 대해서는 나이를 정하지도 않고 결의하였다. 사람들의 모임에 대한 자격과 성찬에 참여하는 자의 자격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헌법이 개정이 되어 공포가 되었으니 교회는 이를 실행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가 위에서 우려하며 제기했던 몇 가지 요소들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고민의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이홍술 목사/평화로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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