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진정한 보물은 공로가 아닌 복음이다"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13>면벌부 논쟁

박경수 교수
2020년 04월 22일(수) 11:15
역사는 기본적으로 연속성을 지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방향을 바꾸거나 시대를 새롭게 여는 불연속적인 전환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 전환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르틴 루터의 95개 논제이다. 95개 논제는 당시 로마가톨릭교회 신학의 핵심을 비판함으로써 중세에서 근세로 이행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것은 16세기 교회개혁의 도화선이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이처럼 역사의 전환점이 된 95개 논제의 정확한 제목은 '면벌부의 능력과 효용성에 관한 논박'이다. 결국 95개 논제의 핵심은 면벌부를 둘러싼 논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면벌부란 무엇일까?



#면벌부

면벌부(免罰符)란 문자의 뜻 그대로 '벌을 면하게 해주는 종이 부적'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대사부(大赦符)라 부르고, 프로테스탄트교회는 면죄부(免罪符)라 부르기도 한다. 면벌부를 사면 그 만큼 우리가 치러야 할 벌이 면제된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로마가톨릭교회는 죄와 벌을 구별하여, 우리가 비록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죄는 용서를 받았지만 죄로 인한 벌까지 없애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남아 있는 잠벌(暫罰)은 현세에서든 아니면 연옥에서라도 해결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합당한 공로를 쌓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로를 쌓는 방식에는 선행, 성지순례, 금식, 자선 등 다양한 방법이 있고, 그 중에 가장 효율적이고 간단한 방법이 면벌부를 사는 것이다. 마치 액(厄)을 물리치기 위해 돈을 주고 부적을 구입하듯이, 벌을 면제받기 위해 면벌부를 구입한다는 것이다. 과연 죄와 벌을 나눌 수 있는가? 공로를 돈으로 살 수 있는가? 어떻게 면벌부가 효력이 있다고 믿을 수 있는가? 이러한 발상의 근저에는 교회가 '공로의 보물창고'라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자리하고 있었다.



#교회가 공로의 보물창고인가?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총뿐만 아니라 인간의 공로 또한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원에 이를 만큼의 공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제아무리 교회가 정한 규범을 실천하면서 선하게 산다고 하더라도 구원에 다다를만한 공로의 분량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소위 성인이라 불리는 신앙의 선조들은 스스로의 구원을 위한 공로 이상을 쌓았고, 이렇게 이들이 쌓은 여분의 공로가 '잉여공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잉여공로를 바로 교회가 보관하고 있어서, 교회가 공로의 보고(寶庫)라는 것이 로마가톨릭교회의 주장이다. 그리고 교회의 수장인 교황이 그 보고를 열 수 있는 열쇠의 권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교회가 보관하는 공로를 교황이 자기 뜻대로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 하에 교황의 인장이 찍힌 면벌부가 온 세상에 통용되게 되었다. 면벌부는 교황이 승인한 공로증서였던 것이다.



#루터의 95개 논제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 교수인 루터는 비록 자신이 로마가톨릭의 사제요 수도사이긴 했지만 면벌부의 부조리함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1517년 10월 31일 자신이 살던 비텐베르크의 성(城)교회 문에 면벌부를 반대하는 95개 논제를 게시하고, 알브레히트 추기경에게 그것을 발송했다. 사실상 루터는 종교개혁을 일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면벌부에 대한 신학적 토론을 위해 자신의 의견을 밝힌 것이었다. 그 당시 신학적 논쟁을 제기하기 위해 자신의 입장을 담은 팸플릿을 내거나 게시하는 것이 통상적 관례였기 때문이다. 루터가 95개 논제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독일어가 아니라 학자들의 언어인 라틴어로 작성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역사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루터의 주장을 담은 95개 논제는 곧 독일어로 번역되어 퍼졌고 많은 사람들이 루터에게 공감하게 되면서 개혁의 요구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하고 도도한 물결이 됐다. 중세의 모순이 겹겹이 쌓여 있다가 95개 논제라는 불꽃이 튀자 종교개혁 운동으로 폭발했던 것이다. 그러면 95개 논제는 어떤 주장을 담고 있었는가?

95개 논제는 '교황은 자신의 권한이나 교회법의 권한 밖의 어떤 벌도 면제할 수도 없고 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5번)'고 주장함으로써 교황의 면벌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이미 죽어 연옥에 있는 사람들의 벌까지도 면제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을 기만하는 사악한 계략이라고 말한다. 루터는 계속해 '교황의 면벌부로 모든 벌에서 면제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면벌부 설교자들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21번)'고 주장한다. 루터는 교황을 향해 '자기 양들의 살과 뼈 그리고 가죽으로 성 베드로 성당을 짓느니 차라리 그것을 재로 만들어버리라(50번)'고 일침을 가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는 '면벌부를 사느니 차라리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거저 나누어주는 것(43번)'이 훨씬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이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죄와 벌에서 해방되는 것은 면벌부를 통해서가 아니라 회개하고 복음을 믿음으로이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은 면벌부가 없어도 죄와 벌에서 완전히 사함을 받을 수 있다(36번)'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죄와 벌 모두를 단번에 사하신다.

루터는 또한 95개 논제에서 면벌부의 이론적 토대가 되는 공로의 보고로서의 교회관도 비판한다. '교회의 진정한 보물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거룩한 복음이다.(62번)' 교회가 보배로운 이유는 공로를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이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은 성인들의 잉여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은혜라 부른다. 루터는 교황을 향하여 정말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한 돈인가, 아니면 가련한 영혼인가? 만일 정말 교황이 면벌부로 공로를 나누어줄 수 있다면, 참된 교회의 보화인 가련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거저 주어야 하지 않는가?



#공로에서 은혜로

면벌부 논쟁의 근본에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 문제가 놓여 있다.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 교회는 공로의 보물창고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의 거룩한 복음을 소유한 신앙공동체이다. 면벌부는 은혜를 돈으로 바꿔치기하려 한 불경건한 시도였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거저 주어지는 선물이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이 복음의 가르침이다. 이것이 중세에서 종교개혁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고, 루터의 95개 논제가 담고 있는 알맹이이다.

박경수 교수 / 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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