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 주권보다 우선이다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 판결의 의미'토론회 개최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1년 01월 22일(금) 07:34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제34민사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1심에서 피고 일본국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 등은 "'여성인권과 평화'라는 새로운 가치, '인권이 주권에 우선한다'라는 새로운 국제법을 창조해낸 할머니들과 전 세계 시민들의 숭고한 노력의 결과"라고 이번 판결을 평가했다.

지난 18일 정의기억연대를 비롯해 일본군'위안부'역사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일본군'위안부'연구회 주관으로 열린 '일본군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 판결의 의미'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김창록 교수(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는 "국내법이 영원하지 않듯 국제법도 '항구적이고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면서 "대한민국 법원이 국제법의 진화에 앞장섰으며 이 획기적인 진화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만들어낸 역사"라고 말했다.

이번 재판은 지난 2013년 8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2명이 일본 정부에 '원고 1인당 1억원 씩 위자료를 배상하라'는 민사조정 신청서를 내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일본이 무반응을 고수하자 할머니들은 2015년 10월 정식 재판을 요청했고, 일본이 '국제법상 주권 면제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재판을 계속 거부하자 결국 한국 법원이 지난해 1월 이 사건을 일본에 공시송달한 후 재판을 진행했다.

일본 정부는 "국제법상 주권국가는 다른 국가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는다(주권 면제 원칙). 이것은 정해진 규칙이다. 이 소송은 각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재판을 무시해왔다. 때문에 우리나라 법원이 '국가 면제 원칙'을 인정하지 않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판결문에는 "국가면제 이론은 주권국가를 존중하고 함부로 타국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도록 하는 의미를 가진 것이지, 절대규범을 위반하여 타국의 개인에게 큰 손해를 입힌 국가가 국가면제 이론 뒤에 숨어서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해 형성된 것은 아니다"고 꼬집으며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의 해석에는 예외를 허용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정의연대는 "국내 법원은 물론이고 전 세계 각국의 법원들이 본받을 수 있는 인권보호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같이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한 경우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 및 재판청구권과 보편적 인권존중의 원칙을 국가면제의 항변보다 앞세워야 한다는 명쾌한 선언"이라고 환영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주권 면제의 장벽을 넘어 생존자들의 정의회복의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며 일본군 '위안부'뿐 아니라 전 세계 전시 성폭력 및 전쟁범죄 생존자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라고 밝혔다.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일본군'위안부'소송 변호단)도 "국가에 의해 인권을 침해당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새로운 구제수단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일본에 사는 사람들도 인권 침해에 대항할 새로운 무기를 손에 쥘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본은 국제법상의 주권면제 원칙에 의해 한국의 재판권에 복종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으며 한국이 국가로서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이번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원고 중 상당수가 사망해 현재 생존하는 피해자는 5명에 불과한 상황이다. 정의연대는 "이번 판결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나침반이 되어 또 다른 피해자 소송 판결에서도 다시 한번 구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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