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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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앤이슈 ]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2018년 07월 17일(화) 10:34
난민



최근 국내에서 '난민'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다. 내전과 전쟁을 피해 제3국으로 피신해 온 예멘인이 비자없이 쉽게 입국할 수 있는 우리나라 제주도에 들어오면서부터 국내에서 난민에 대한 관심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국내 난민의 역사는 길지 않다. 아니 난민이 국내적으로 문제가 된 것이 길지 않다고 봐야할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난민문제가 아닌 난민으로 파생되는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비교적 우리는 난민문제는 선진국인 유럽의 국가들이나, 분쟁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인접한 국가들만의 문제로 생각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난민에 대한 국어 사전적으로는 "전쟁이나 이념 갈등으로 인해 발생한 재화를 피하기 위하여 다른 나라나 다른 지방으로 가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살고 있던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이주하는 것이며, 앞으로 어떠한 일이 있을 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난민이 처한 현실이다.

난민 문제를 접하면서 우선 떠오르는 것은 성경의 아브라함(아브람)의 이야기일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향해 정든 고향 땅을 버리고 떠날 것(창세기 12장 1절)을 명령하셨다. 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원해내 가나안으로 가라(출애굽기 6장 2~9절)고 지시에 따라, 자신들의 삶의 터를 버리고 낮선 곳으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난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 또한 권력자의 폭거로부터 피신해 나사렛으로 이주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듯 성경 속에서도 난민에 대해 이야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한편 우리 민족은 어떨까? 고대 신화와 같은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가까운 역사에 속에서 난민의 역사를 찾을 수 있다. 일제시대에 일제의 폭거에 저항하며 독립운동을 위해 고향을 떠나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한 선조들이 있었으며, 6.25한국전쟁에서 포로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제 3국을 선택했던 것도 난민의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이들 중에는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하고 평생을 고국을 그리워 하며 한인 디아스포라로 살다가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난민들은 '난민 지위에 관한 조약'에 의해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 조약은 1951년 체결되었으며, 이를 근거로 UN에서는 UN 난민 고등 판무관들로 하여금 난민들을 돕는다.또 난민으로 인정을 받게되면 그들은 영주권자 정도의 지위를 인정받아 자유롭게 경제활동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난민이 최근 국내에 대거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낯선자들에 대한 거부반응과 함께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문제를 앞세워 이들을 거부하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반면에 난민문제(이주민)를 놓고 활동을 해온 민간단체들은 비록 난민으로 우리나라를 찾아 왔지만 우리에게 온 손님이라며 환대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난민 문제는 크게 보면 우리의 손을 떠난 국제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좁은 범위에서 이해하면 우리를 찾아온 손님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는 정이라는 것이 있다. 과객을 집안에 들여 배부르게 먹이고 쉬었다 가도록 하는 인정이 있다.

난민문제는 정해진 법에 따라 처리될 것이다. 거기에는 국제적인 문제와 정치적인 것들도 가미될 것이다. 이러한 처리 과정을 떠나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헐벗고 굶주린 자들에게 빵을 나누어주고, 고통 받지 않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사랑을 베푸는 일이다. 고향을 떠나 모든 것이 낯선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그들에게 있다. 그 이유 중에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역할은 '사랑'으로 통일 할 수 있지 않을까?

박만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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