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뿌려진 한알의 밀알

아프리카에 뿌려진 한알의 밀알

총회 에큐메니칼예배, 한국교회 아프리카선교 50주년 기념예배로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8년 09월 13일(목) 08:46
제103회 총회를 방문한 에큐메니칼 인사들 및 총회 관계자들.
에큐메니칼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과 총대들. 총대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예배 후 축사한 아그네스 아붐 WCC 중앙위원회 의장과 CWME 국장으로 10년을 사역하고 최근 귀국한 금주섭 목사.
"한국전쟁 당시 120명 이상의 에티오피아 젊은 군인들이 귀한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후 1968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다른 의미의 군인을 에티오피아에 보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군사를 말이죠. 그 한사람으로 시작된 한국의 에티오피아 사역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 선교사들을 통해 우리가 희생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한국교회로 부터 받고 있습니다."(요나스 이게주 디비사 목사)

50년 전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된 한국교회의 아프리카 선교를 기억하며, 50년 전의 그 정신과 신앙을 되새기는 뜻깊은 예배가 열렸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12일 제103회 총회 셋째 날 저녁 해외동역교단 인사들과 국내 연합기관 인사 및 총대, 이리신광교회 성도들과 함께 에큐메니칼예배를 드렸다. '한국교회 아프리카선교 50주년 기념예배'로 드려진 이날 저녁예배에서는 에티오피아의 요나스 이게주 디비사 목사가 말씀을 전했다.

요나스 목사는 에티오피아 메카네예수스교회 총회장으로, 메카네예수스교회는 1968년 한경직 목사에 의해 최초의 아프리카 선교사로 파송된 박희민 목사를 맞이했던 교단이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를 제목으로 설교를 한 요나스 목사는 "50년 전 박희민 선교사와 그 가정은 지금 생각해도 멀고 먼 곳 에티오피아, 그중에서도 가장 시골지역인 서쪽 지역으로 갔다. 그들의 발이 너무 아름다웠던 이유는 화해의 소식을 가지고 왔기 때문"이라며, "박 목사님은 에티오피아에 화해의 소식을 가지고 왔을 뿐 아니라 에티오피아 사람과 한국 사람을 연결시켰다"고 강조했다.

요나스 목사는 "교회는 그 발걸음으로 인해 그 가치가 드러나기 때문에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해야 한다"며, "우리는 많은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메시지, 화해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부총회장 김태영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예배는 찬양과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를 낭독하며 시작됐다. 알렌 나푸키 목사(바투아투장로교회 총무), 발라즈 오도르 목사(헝가리개혁교회 국장)의 인도로 회중은 신앙을 고백했으며, 니콜라 펄리 스미스 목사(영국개혁교회 남부대회 대회장)의 고백의 기도, 김종현 목사(재일대한기독교회 총회장)의 용서의 선언이 있었다. 싸이리 노에미 마르떼 데 마또스 목사(도미니카복음교회 총회장)와 원중권 목사(해외한인장로회 총회장)의 성경봉독, 익산장로합창단의 찬양 후 요나스 이게주 디비사 목사가 설교했으며, 원영호 목사(미국장로교 한인교회전국총회 총회장)의 축도로 마쳤다.

예배 후 축사를 한 아그네스 아붐 박사(WCC 중앙위원회 의장)는 "아프리카 선교는 소외되고 빈곤한 지역 이뤄지지 권력의 중심지에서 행해지는 선교가 아니다"라며, "대한민국과 아프리카의 교회들이 경험과 영적 자원, 학습한 것을 나누며 전세계가 변혁적인 제자도를 나누는데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표현모 기자

설교한 요나스 목사와 통역한 송의광 에티오피아 선교사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를 방문한 에큐메니칼 인사들.
#해외인사, 전라도 지역 선교유적지·교회 등 방문



총회 에큐메니칼예배가 있기 전 진행된 환영만찬에서는 WCC 의장 아그네스 아붐 박사를 비롯한 14명의 해외인사들이 참석했다.

바누아투, 대만, 에티오피아, 영국, 일본, 헝가리, 도미니카공화국 등에서 참여한 해외인사들은 총회 임원 및 남선교회전국연합회,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청년회전국연합회, 선교사 등과 국내연합기관 대표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만찬을 즐겼다.

지난 10일부터 일정을 시작한 에큐메니칼 인사들은 양림 역사문화 마을, 양림동 선교사 묘역, 군산현대박물관, 장신대, 호남신대, 청주서남교회(장승권 목사 시무), 군산중부교회(박한수 목사 시무) 등을 방문하며 한국 문화와 교회를 체험했다.

이날 환영만찬에서는 해외인사들이 림형석 총회장에게 기념품을 전달하며, 교단의 103회 총회를 축하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표현모 기자

# 1968년 박희민 목사의 에티오피아 파송으로 아프리카 선교 시작

에티오피아 공주,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에 선교사 파송 부탁



1968년 에티오피아 선교로 한국교회 아프리카 선교의 문을 연 박희민 목사.
한국교회의 아프리카 선교는 박희민 박영자 선교사가 1968년 에티오피아에 파송되면서 시작됐다.

1968년 5월 6.25전쟁 당시 파병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한국정부는 하일레 셀라시에 에티오피아 황제를 초청했다. 이 방문시 손녀인 으지가예후 아스파워센 공주가 당시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총회장이던 한경직 목사를 만나 에티오피아에 한국인 선교사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고, 한 목사는 이러한 요청에 부응해 박희민 선교사에게 에티오피아에서 일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 베트남 선교를 준비하던 박 목사는 이 제안을 수락해 영락교회 해외선교부 파송으로 뎀비돌로(아디스아바바로부터 서쪽으로 627Km)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당시 30대의 젊은 나이였던 박 목사는 영어로 작성된 설교를 암하릭어로 바꾸고 다시 암하릭어 설교를 오로모로 바꾸어서 5편 정도의 설교를 준비했고, 그것을 외워서 오로모어로 설교할 수 있을 정도로 언어에도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박 선교사는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쳤고, 매주 선교본부에서 배치하는 시골교회를 찾아가서 설교했다.

박 선교사의 부인 박영자 선교사는 간호사 출신으로 1주일에 4일은 병원에서 근무했고, 동네의 아녀자를 교육하는 일에 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1971년 박선교사의 자녀들이 갑자기 풍토병에 걸리게 되고 치료가 어려운 상태가 되자, Dr. 맥클루 미국장로교 선교부 총무는 박 선교사의 아내와 아이들이 미국으로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비자와 치료받을 병원 등을 주선했다. 1971년 6월 박영자 선교사와 아이들이 미국으로 가고, 이어서 그해 10월 박희민 선교사도 가족을 만나기 위하여 미국으로 갔다.

그 이후 에티오피아의 정치적 상황이 나빠져서 박 선교사는 에티오피아로 돌아가지 못하고 캐나다와 미국에서 한인 디아스포라를 위한 목회를 했다. 박희민 목사는 목회하는 동안에도 선교에 대한 빚진 마음으로 교회 예산의 20%는 반드시 선교에 사용했으며, 많은 선교사 가정을 파송하고 후원했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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