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에게 감동주는 시냇물흐르는교회

주민에게 감동주는 시냇물흐르는교회

[ 우리교회 ] 지역에서 인정 받는 목회…부족한 가운데 나누는 기쁨까지 누려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8년 10월 26일(금) 10:43
시냇물흐르는교회 뒤켠에는 공방이 있다. 공방 앞에서 도끼질로 장작을 패고 있는 정종찬 목사. 오른쪽 뒤에는 그가 사랑하고 아끼는 고물이 담긴 트럭이 보인다.
시냇물흐르는교회 전경. 빨간 벽돌로 지어진 정겨운 모습의 건물은 정 목사가 손수 진두지휘하며 건축한 교회다.
교회 출석하는 나이지리아 성도들과 함께.
경기도 포천 신북면에 위치한 서울북노회 시냇물흐르는교회(정종찬 목사 시무).

1995년 12월 정종찬 목사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이곳에 부임했을 때는 교회도 정 목사도 지역주민들에게 별로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심지어는 왜 이사를 오느냐고 욕까지 들었다고 한다.

시골 지역 특유의 텃세, 지식인 목사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반감이 교묘히 얽혀 정 목사와 시냇물흐르는교회에 대한 지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래도 정 목사는 열심히 마을회의에도 참여하고, 인사도 열심히 했다. 이렇게 7~8년이 지나자 마을회의에 참여한 정 목사에게 "목사님도 한 말씀 하세요"라고 하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이 정 목사를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면서 정 목사는 마을의 총무 역할을 맡게 됐다. 가장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기는 돈관리를 10년간이나 부탁했다고 한다. 몇 1000만원의 돈이 정 목사 명의의 통장에 들어 있어 국가에서 지원 받을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현금이 많다는 이유로 받아야 할 지원을 받지 못하는 손해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손해는 작고, 얻게된 신뢰는 크다는 것이 정 목사의 고백이다.

지역주민들은 이웃지역에 가서 교회 이야기를 할 때,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 동네 교회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며 열심히 편을 들 정도가 됐다. 정 목사는 마을 사람들의 추천으로 포천시 시장상을 받고, 도움을 받은 장애인들이 감사하다며 추천해서 상을 또 받고, 옆 동네 이장의 추천으로 올해는 '자랑스러운 시민상'을 받았다. 이렇게 받은 시민상이 총 4개나 된다.

정 목사가 마을주민들에게 이 정도로 신뢰를 받게 된 것은 오랜 기간 그가 보여준 한결같음 때문이었다는 것이 동네 사람들의 평가다. "너무 행복하고 재미있게 목회생활하고 있다"고 말하는 정 목사의 생활은 사실 어렵지 않은 적이 없어 보였다.

처음 부임했을 때 작은 방에서 10명 정도의 교인이 모인 것이 전부이고, 일년 재정도 20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이곳에서 목회를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했다. 생수배달을 하기도 하고,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 한 교회 집사가 고물장수가 돈을 짭짤하게 벌 수 있다고 권해서 중고트럭을 사서 고물장수를 시작해 지금까지 하고 있다.
교회 출석하는 나이지리아 성도들과 함께.
교회건축을 위해 목수기술도 배워 공방도 만드니 형편이 어려운 교회들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정 목사는 시간이 되는데로 이러한 요청이 오면 안타까운 마음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목사가 목회 외에 일반 생업에 종사하니까 오히려 지역주민들의 호감도가 올라갔다. 교회 돈만 갖다쓰는게 목사인줄 알았던 지역주민들은 목사가 돈을 벌어 교회를 위해 쓰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신뢰했다.

고령의 어머니를 모시고 산 것도 지역사회의 인심을 얻는데 큰 역할을 했다. 89세로 생을 다할 때까지 15년간 정성을 다해 노모를 모시는 효심을 지역주민들은 높이 평가했다. 어머니의 소원 중 하나가 교회 식당이 생기는 거였는데 정 목사의 어머니는 자녀들이 주는 용돈을 꼬박 꼬박 모아 정 목사에게 넘겼고, 돌아가셨을 때도 장례비용을 최대한 줄여 3000만원을 씨앗기금으로 해서 식당을 건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웃의 어려운 이들을 몸소 섬기는 모습에서 지역주민은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 동네에 부모의 이혼으로 조부모랑 함께 사는 초등학생 남매가 있었는데 의붓할머니에게 너무 심한 구박을 받는 것을 보고 이들을 부모처럼 돌봤다. 이들이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했고, 군대에 갔을 때는 부모처럼 보살폈다. 자신의 네 자녀를 키우는 것도 재정적으로 버거웠던 그가 두 남매까지 돌보는 것을 본 동네 사람들은 남들과는 다른 정 목사를 존경하기 시작했다.

정 목사는 "동네 사람들이 그 아이들 돌 본 것을 다 알아주고 저에게 잘한다"며, "솔직히 저는 그 아이들 때문에 진짜 목사가 될 수 있었다. 제가 덕을 많이 봤다"고 고백했다.

동네의 70세 넘은 할머니들에게 정 목사는 '어머니'라 호칭한다. 교회 승합차도 이 여러 명의 어머니들이 외출할 때면 모셔다 드리는 용도로 사용될 때가 많다.

교회 잔치 때는 동네 어른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한다. 물론 마을행사 때도 교회가 잘 참여한다. 교회에 외부 합창단이 오면 동네 노인들을 불러 함께 즐기게 하고, 임직식이 있을 때면 동네 노인들 다 불러 점심을 대접한다.

지역에 있는 나이지리아 이주노동자들도 차별이 없는 시냇물흐르는교회에 예배 드리러 오는 것을 좋아한다. 이뿐 아니라 추수감사절이면 지역의 20~30명의 나이지리아 노동자들이 교회에서 모일 정도다. 이들을 위해 교회는 중고 냉장고도 사주고 끈끈한 교제를 나눈다. 명절 때는 교회에서 아침을 준비해 나이지리아인들을 초청해 함께 식사한다. 이 때는 동네의 장애인들과 갈 곳 없는 어르신들도 명절 아침 식사 자리에 초청한다.

이웃 교회, 특히 작은 교회들과 특별한 친분을 유지하고 교제하기도 한다. 자기도 어려우면서 더 어려운 목회자들을 초청해 설교를 하게 하고 사례비도 드린다. 연말에는 타교회 식구들을 초청해 식사를 하며 어울리기도 한다.

교회의 2층 목회실은 동네 목사들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정 목사가 없어도 들어와 차 마시고 쉬고 가기도 한다고. 수련회를 하지 못하는 교회들을 생각해 시냇물흐르는교회가 씨앗기금을 내어 함께 연합수련회를 하기도 한다. 이들 교회에게 매년 김장을 담어 나누어주기도 한다.

희생적인 삶에 감탄하는 기자의 반응에 정 목사는 "목회자가 예수님을 따라 가는 사람인데 어떤 일을 했다고 해서 희생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며, "제가 좋아해서 한 것이다 . 사실 여기서도 제가 영광을 다 받는다.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라며 특유의 겸손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공방에 대해 설명하는 정종찬 목사.
#"개인기도와 독서, 노동하는 목회 가능케 해"

시냇물흐르는교회 담임 정종찬 목사

정종찬 목사의 하루는 다른 목회자들에 비해 특이하다.

아침식사 이후에는 노동자의 삶을 산다. 고물장수를 하고 있는 정 목사는 고물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원근 각처를 막론하고 그의 고물 트럭을 몰고 간다. 어디 그것뿐인가? 교회를 손수 지어본 경험이 있어 가난한 교회가 건축을 할 때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들이 많다. 건설 현장에 없으면 교회 뒤 공방에서 건축을 위한 나무를 자르고 못을 박는다. 완전 육체노동자의 삶이다. 저녁 9시면 눈이 감기고, 10시 이전에는 곯아 떨어지기 일쑤인 피곤한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매일 새벽 4시에 시작된다. 여러 준비를 마치고 5시에 시작되느 새벽기도회가 끝난 후 8시까지는 반드시 개인기도와 독서의 시간을 갖는다. 정 목사는 "아침 개인기도 시간과 독서 시간이 저를 지탱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지역의 한 초등학교 어머니들로 구성된 독서모임을 지도하고 있기도 하다. 그의 학문적 깊이를 알아본 한 초등학교 교장선생이 어머니들의 독서모임을 인도하고,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한 이래 8년간 그 모임을 이끌고 있다.

물질적으로 가진 것은 많지 않아도 지역의 작은 교회 목회자들과 교단을 초월해서 깊은 사귐을 갖고 있는 것도 큰 특징이다. 심지어는 감리교 목사 한 명은 오랜 개척교회 생활을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이 지역을 떠나지 않는 이유가 정 목사와 헤어지기 싫어서란다.

심지어는 정 목사가 고생하는 것을 안쓰러워하는 한 교인으로부터 "목사님, 고생 그만하시고 큰 교회 가세요"라고 말을 듣기도 한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목사는 지금의 목회가 정말 재미있다고 말한다.

"제가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교인들이 제가 못하는 많은 부분들을 채워주시기 때문이죠. 교인들이 읍내에 나가서 장을 보면서도 우리 교회는 정말 특별한 교회라고 자랑을 해요. 그렇게 한명 한명 교회에 와서 등록합니다. 올해에만 15명이 오셨어요. 저는 정말 다시 태어나도 목회할거예요. 이렇게 재미있는걸요. 하하."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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