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단상(斷想)

사순절 단상(斷想)

[ 논설위원칼럼 ]

김한호 목사
2019년 03월 04일(월) 18:06
김한호 목사
유럽과 남미 등 전통적인 가톨릭국가에서는 사순절을 앞두고 '카니발'이라는 축제를 한다. 이 축제는 세계적인 축제로 라틴어 '카르네 발레(carne vale)'라는 말에서 왔다. '카르네'는 '고기'라는 뜻이고, '발레'는 '그만, 안녕'이란 뜻이다. 직역하면 '고기여 안녕!'이란 말이 된다. 사순절 기간 금육을 실천하다 보니 가정마다 소비되지 못하는 고기가 많아지자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 집에 있는 고기들을 다 내와서 친교를 가졌던 것이 유래이다. 한 마디로 카니발은 육적이고 세속적인 쾌락을 금하고, 하나님께만 온전히 집중할 시간을 함께 준비하자는 뜻깊은 잔치이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인들은 카니발의 의미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로 답한다. 첫째는 겨울을 물리치고 새봄을 맞이하는 '희망의 퍼레이드'로, 둘째는 상징물로 가장한 '인간의 불안 요소들을 없애고자 하는 염원'의 의미로, 마지막 셋째로는 기성세대에 대한 '신세대 저항문화의 표출'의 의미이다. 이처럼 카니발의 본래 의미는 현대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렸다. 따라서 오늘날 카니발 잔치의 주인은 더 이상 예수님이 아니다. 주인을 잃고, 의미를 잃고, 화려한 겉모습만을 자랑하게 된 카니발은 사순절을 경건의 훈련을 위한 기간으로 보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방해하는 잔치로 변질되고 말았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에게 사순절은 어떤 의미인지 돌아볼 때이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경건의 능력은 없고, 신앙의 형식만 요란하게 남아 예수님께로 가까이 오고자 하는 이웃들의 마음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자. 이번 사순절을 앞두고 사순절을 준비했던 카니발의 진정한 의미를 회복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다면 사순절을 어떻게 보내야 카니발의 본래적 정신을 지키는 것일까?

얼마 전 뉴스에 네덜란드의 덴학(Den Haag)이라는 도시에 아르메니아에서 온 난민 가족의 이야기가 나왔다. 자녀 3명이 있던 부부는 9년 동안 난민 지위를 부여받아 잘 살아 왔다. 그런데 네덜란드에 너무 많은 난민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이 가정은 난민 자격을 박탈당한다. 그래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 되었다. 절망적인 순간에 이 가정을 돕기 위해 도움의 손길을 뻗은 교회가 있었는데, 바로 베들레헴 교회였다. 네덜란드 법에 의하면 예배드리는 교회에는 경찰이 공권력을 행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교회는 난민 가정을 위해서 멈추지 않고, 24시간 예배를 96일간 드려주었다. 이를 위해 20개 교단에서 약 550명의 목회자가 참여했다. 예배를 드려준다고 어떤 이익도 주어지는 것이 없지만 '카르네 발레!'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자신의 삶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이 가정을 위하여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희생으로 섬긴 것이다. 기독교의 감동적인 모습을 본 네덜란드 당국은 난민들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임에도 결국 이 가족뿐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 놓인 700명의 난민을 포용해주었다.

바로 이것이 사순절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닐까? 저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얼마나 흐뭇해 하셨을까? 바로 이런 삶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무색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사순절의 좋은 전통들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카르네 발레!' 모든 육적인 것들을 '그만 안녕!' 절제하고, 하나님께만 온전히 집중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사순절의 본래 의미를 되새기고 사순절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기를 소망한다.

김한호 목사/춘천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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