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고통에도 함께하시는 하나님

내일의 고통에도 함께하시는 하나님

[ 땅끝편지 ] 영국 장순택 선교사(완)

장순택 선교사
2020년 10월 29일(목) 10:59
장순택(앞열 우측), 하점순 선교사 부부와 자녀들.
몇 년 전 총회 선교부가 연결해 준 한 선교단체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일이 있다. 너무 좋아서 박스를 열었는데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순간 마음이 먹먹해 움직일 수 없었다. 아내도 와서 보더니 울음을 쏟아냈다. 휴가도 안식년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24년의 세월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본머스에서는 부주방장으로 일하면서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했고, 이스트본에서도 자립선교를 위해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국제교회를 섬겼다.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세 곳의 현지인 교회를 섬겼기에 휴가도 반납하고 열심히 뛰어야 했다. 외국인이었기에 모든 일이 낯설고 긴장됐다. 말 한마디를 할 때도 온 신경이 집중됐고, 특히 설교시간엔 필자에게 집중하는 교인들의 시선 하나 하나가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저녁예배를 마치고귀가하면 매번 녹초가 돼 있었다.

부족한 면이 많았지만 필자는 젊었고 현지인과 다른 한국적인 열정과 목회철학을 갖고 있었다. 교인 대부분이 노인이었기 때문에 모임이 있을 때마다 직접 쟁반과 행주를 들고 음식을 대접했으며 식사 후에는 차와 커피를 만들어 주고, 테이블을 닦고, 끝까지 남아서 책상과 의자를 정리했다. 누구보다 일찍 교회에 도착했고, 마지막까지 남아 그들을 배웅했다. 그리고 심방을 정말 많이 했다. 노인들이기에 발음이 부정확하고, 이해하기 힘든 옛날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심방 때마다 한 시간씩 들어주면서 그들의 벗이 됐다.

이렇게 사역에만 매달렸는데, 2년 전 아내가 감기를 앓는 것 같더니 아프기 시작했다. 배에 통증이 있어 검사를 했지만 이상이 없다고 했다. 다음엔 혈압이 200을 넘어가더니 왼쪽 팔이 아파왔고, 심장도 검사해 보았지만 이상 소견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증상에 피검사도 수십 번을 했고, MRI촬영도 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계속되는 검사에 아내는 지쳐갔고 증상은 호전되지 않아 한국에서 치료를 받았고 상태가 호전되는 것 같아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몇 달 후 다시 아프기 시작했고, 결국엔 입원하게 됐다. 다시 받은 검사에서 나온 병명은 '류마티스다발성증후군'이었다. 이 병은 원인도 모르고 특별한 약도 없어 면역력 조절 효과를 가진 스테로이드 처방을 받으며 상태를 지켜봤다. 그러나 7개월째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극심한 피로감에 누워있기만 했다. 아내는 주일예배도 참석하지 못하게 됐고, 어쩌다 교회에 나가면 교인들이 아내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전에는 교인들이 아내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아내가 들어주었는데, 이제는 교인들이 "우리가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위로해 주었다.

아내도 영국개혁교회가 운영하는 평신도 지도자 과정을 마치고 자격증을 취득해 필자와 함께 영어 예배를 인도하며 사역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다 보니 우울증이 생겼고, 공황장애도 찾아 왔다. 나는 2년 동안 병든 아내를 간호하며 집안 일과 요리까지 맡아야 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집안일까지 기쁘게 감당했지만 가끔은 회의감과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기도하며 고통받는 교인에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을 많이 했지만, 막상 아내의 병은 점점 심해졌다. 내게도 우울증이 찾아와 담당의사는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것을 권했다.

아픈 아내를 보면 때로는 화도 나고 신경질이 나기도 한다. 요즘은 코로나19 위험 때문에 아예 집 안에만 머물고 있다. 그런데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부족한 사람을 따라 외국에 와서 이야기 나눌 친구 하나 없이 외롭게 24년을 사역에만 몰두한 아내. 남편의 뒤에서 묵묵히 내조한 아내와 이제야 좀더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옆에 앉아 아내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고, 다리도 주무르면서 힘들었을 아내를 위로하려고 노력한다.

여전히 증상이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때까지 도우시고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손길과 앞으로도 있을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을 믿기에 오늘도 또 한 걸음을 떼며 나아간다. 내일도 하나님의 도움이 있을 것임을 알기에 우리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오늘을 살아낸다.

장순택 목사 / 총회 파송 영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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