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마리'

'마리 마리'

[ 땅끝편지 ] 페루 김명수 선교사3

김명수 선교사
2020년 11월 17일(화) 09:18
'선한 사마리아인 이동병원'의 진료 현장과 환자가 타고온 마차.
칠레 남부 및 아르헨티나의 안데스 지역에는 마푸체(Mapuche:'땅의 사람들'이란 뜻) 부족이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은 만나면 '마리 마리(Mari mari)'라고 인사한다. 그런데 '마리'는 숫자 '10'이면서 또 '많다'는 의미의 단어다.

마푸체인 성공회 부주교에게 "왜 인삿말이 10 10이냐"고 물었더니, '10 중 10의 마음으로 당신을 환영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해주어서 감동한 적이 있다. 이분들은 참 순박하고 신실하면서 용맹한 부족이다.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스페인군에게 정복 당하지 않았으며, 칠레와도 평화협정을 맺어 끝까지 독립을 지킨 부족이다.

꼰셉시온의 '싼 뻬드로교회'를 즐겁게 목회하던 중에 칠레 현지선교회에서 신학교를 세우기로 했는데, 이미 사역이 오래된 분들은 옮기기 어렵고 새로 온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적절치 않아 당시 3년차였던 필자가 그 일을 담당하게 됐다. 그래서 정든 꼰셉시온을 떠나 산티아고로 사역지를 옮겨 최종남 목사님과 함께 '칠레 복음신학교'를 세우게 됐다. '싼 뻬드로교회'는 후임으로 온 이재삼 선교사님(현 부에노스 아이레스 한국인교회)이 잘 이끌어 주었고, 필자에겐 큰 위로와 감사가 됐다.

그렇게 산티아고에서 신학교 사역을 하며 8명의 칠레기독교장로교회(ICP Chile) 목회자를 배출했는데, 1년만에 다시 떼무꼬(Temuco)로 사역지를 옮기게 됐다. 1994년 떼무꼬에 상도교회(당시 김이봉 목사 시무)의 후원으로 '떼무꼬 기독병원'이 개원했는데, 경영이 어려워 설립자 두 분이 사임하면서 우리가 갑자기 병원을 맡게 된 것이다.

매월 적자를 감수하며 직원이 120명이나 있는 병원을 운영하는 일은 무척 힘들었다.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와 후원 교회의 결단으로 1년 뒤 병원을 잘 정리할 수 있었고, 우리는 후속 사역으로 1997년부터 '이동병원 선한 사마리아인'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떼무코는 마푸체 부족 40여 만 명이 사는 지역의 중심이어서 주변에 여러 마푸체 부족 마을이 있었는데,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다보니 현대적 의료 혜택에서 상당히 소외돼 있었다. 그들을 진료하는 방법은 찾아가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트럭을 개조해 진료 버스를 만들어 마푸체 마을들을 방문하며 진료를 시작했는데, 엄청난 환영을 받았다. 마을의 교회나 회관을 대기실로 이용하고 진료는 차량에서 했는데, 주민들은 1~2시간을 걸어서 혹은 마차를 타고 진료를 받으러 왔고, 진료를 받으면 "다음엔 언제 오느냐"고 물으며 간절함을 전했다.

20여 지역을 선정해 매월 정기 방문을 했고, 2~3회 진료가 이어져 적응이 되면 진료 중에 한편에서 초신자와 지도자들을 위한 성경공부 모임을 개설했다. 또한 마을마다 2~3명의 보건 담당자를 선발해 질병 예방과 간단한 응급처치를 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

방문이 거듭되면서 그분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진료 분야가 치과임을 알게 됐고, 버스에 연결할 수 있는 치과 진료 차량을 추가로 설치했다. 이에 우리 사역은 일반 의과, 치과, 새신자 성경공부, 지도자 교육, 건강요원 교육 등으로 확장됐고, 우리가 방문하면 주민들은 감자, 옥수수 등을 가져와 나눠 먹으며 즐거운 교제의 자리를 가졌다.

칠레 남부의 겨울은 우기여서 비가 오면 작은 개울들이 범람하는 일이 잦았고, 혹시라도 버스 타이어가 진흙에 빠지면 마을 사람들이 소를 끌고 나타나 차를 꺼내 주었다. 진료소에 오다가 물에 빠져 흠뻑 젖은 할머니도 보았다.

이렇게 떼무꼬 인근의 정기 방문 사역과 함께, 여름에는 안데스 고산지역, 해변, 호수 안 섬마을 등 먼 지역으로 범위를 넓혀 가던 중 안타깝게도 2001년에 사역을 마치게 됐다. 후원교회의 정책 변화에 따른 것이기도 했고, 칠레 정부가 마푸체 부족의 의료 복지를 강화해 더 이상 방문 사역이 필요 없어진 이유도 있었다.

그래서 2002년에 한국으로 안식년을 오면서 '선한 사마리아인 이동병원 사역'은 종료됐지만, 지금도 그분들의 선하고 소박한 미소는 잊을 수가 없다. '마리 마리' 10의 마음으로 우리를 환영해 주었던 그분들을 다시 하늘나라에서 10의 마음으로 만나고 싶다.

김명수 목사 / 총회 파송 페루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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