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선교지에 있다

지금 우리는 선교지에 있다

[ 땅끝편지 ] 필리핀 장순현 선교사<1>

장순현 선교사
2023년 06월 06일(화) 10:37
민도르섬에 있는 교회를 방문하기 위해 이동 중 개울에 빠진 자동차.
장순현 선교사(우)와 아내 신선희 선교사.


지난 1월 필리핀 민도르섬에 위치한 한 교회를 방문했다. 그리고 민도르에 주로 거주하는 망얀(Mangyan)족들이 출석하는 까마루가얀교회에 들를 일이 있었다. 현지 스태프 닐로 목사와 아내, 동료 선교사 3명과 함께 차로 이동했다. 사실 이 교회는 최근까지 차량으로 갈 수 없었다. 차량으로 이동이 가능한 해변까지 나와서 그곳에서 흔히 '날개배'로 불리는 '방카선'을 타고 해안을 따라 40여 분을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북똥이라는 지역에 내려 다시 산으로 걸어 50분 정도 들어가야 까마루가얀교회가 나온다. 그런데 닐로 목사가 지난 7년 여 동안 주정부에서 공사하고 있던 도로가 어느 정도 완성됐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방카로 이동했기 때문에 선뜻 믿기 힘들었지만 상황도 살필 겸 차량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가다 보니 거의 도로가 완성돼가고 있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포장된 것이 아니라 도로 형태만 만들어져 있었고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덜커덩거리며 얼마를 갔을까? 개울이 나타났다. 이제 저 개울만 건너면 필자가 19년 전에 개척한 까마루가얀교회가 나온다. 사실 이곳에서 개울을 만나는 것은 일상이다. 현재 사역하고 있는 '아브라 데 일로그(Abra de Ilog)'군(郡)도 '강(江)의 발원지'라는 의미다. 그만큼 이 섬엔 강과 개울이 풍부하다. 개울에 다다르자 덜컹 겁이 났다. 필리핀의 1월은 건기철이다. 하지만 이상 기온으로 거의 매일 비가 왔다. 한 눈에 보아도 물이 많이 불어난 것이 확연했다. 아직 큰 개울은 다리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흐르는 강의 낮은 곳을 찾아서 조심조심 건너야 했다.

나는 운전하는 닐로 목사에게 물었다. "괜찮을까? 이 차로 건너기는 무리일 것 같은데." 그러자 닐로 목사는 "선교사님, 문제 없어요. 지난 주에 제가 한 번 건너봤어요.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차에는 우리 둘 외에도 아내 신선희 선교사와 이번 여정에 동행한 세 분의 선교사님이 있었다. 드디어 도강이 시작됐다. 기어를 바꾸고 조금씩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좌우, 아래위로 차가 크게 흔들렸지만 조금씩 전진했다. 드디어 개울 중간까지 도달했다. 자신감이 붙은 닐로 목사가 좀 더 속도를 냈다. 그때였다. 차가 크게 기우뚱하더니 옆으로 심하게 기울어 버렸다. 모두 "악"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 정적이 흘렀다. 우리는 서로를 겸연쩍게 바라보며 "괜찮겠지"라며, 조용히 기도했다. 그러나 헛된 기대였다. 잠시 후 차 안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닐로 목사는 당황하며 연신 기어를 조정하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하지만 깊은 여울에 바퀴 하나가 빠지며 차는 꼼짝도 안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외쳤다. "모두 내리세요!"

사실 아내는 얼마 전 민도르의 산속 루꾸딴교회를 방문했가 미끄러져 오른쪽 발가락 뼈 3개가 부러져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함께 온 선교사님 가운데 한 분은 80대의 고령자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는 다시 한 번 내리라고 소리치고 앞쪽 조수석 문을 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미 차량이 거의 반쯤 잠긴 상황이라 문을 여는 것은 불가능했다. 운전석 문으로 빠져나간 닐로 목사가 뒷문을 열려고 한동안 씨름하다가 결국 문을 열자 불어난 물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다. 나는 모두를 일단 차 밖으로 대피시킨 후 겨우 뒷 자석으로 이동해 빠져나올 수 있었다. 차량이 빠진 곳은 물살이 거칠어 물이 단숨에 가슴 높이까지 차 올랐다. 나는 아내를 부축해 뒤뚱거리며 낮은 물가로 먼저 피신시켰다. 신선희 선교사는 물살에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 했다. 그리고 나머지 분들도 무사히 안전한 곳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남자들은 비를 맞으며 차량을 꺼내보려고 시동을 켜서 함께 힘을 다해 밀고 최선을 다했지만 차량은 이미 물 속에 잠겨서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이 차는 얼마 전 후원교회에서 필자에게 보낸 병원비 300만 원을 닐로 목사에게 지원해 할부로 구입한 중고차다. 순간 '차가 완전히 망가졌겠구나, 차량을 구입하려면 돈이 많이 들텐데 어떡하지 아직 할부금도 덜 냈는데'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어 '지금 내가 선교지에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지난 22년간의 필리핀 사역이 스치듯 지나갔다.

장순현 / 총회 파송 필리핀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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