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들의 피난처가 된 교회

약자들의 피난처가 된 교회

[ 땅끝편지 ] 필리핀 장순현 선교사<2>

장순현 선교사
2023년 06월 13일(화) 10:01
주로 필리핀 오지의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망얀족.
장순현 선교사 부부.
첫 회에선 망얀족 교회를 방문했다가 차량이 물에 빠진 사건을 나눴다. 오늘은 망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사실 사고가 난 원인 중 하나는 망얀족 사람들이 동떨어진 곳에서 주로 거주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교회를 개척하고 건축할 때 주로 망얀족 마을 중심부에 짓는데, 한 번 방문하기가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정말 산 넘고 물 건너 가야하기 때문이다. 망얀족들을 여기서는 흔히 산족(山族)이라고 부른다. 산에 거주하며 채집생활을 한다. 지금은 망얀족도 상당히 개화가 진행되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필리핀의 주 종족인 따갈로그 사람들과의 접촉도 많이 늘어났고, 또 망얀족들이 사는 곳에 가난한 따갈로그 사람들이 섞여 살기도 한다. 이제 자신들이 사용하던 망얀어와 8개 부족의 방언도 잊고 따갈로그어를 주로 사용할 정도까지 됐다. 그러나 내가 처음 이곳에 온 22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원래 망얀족은 이곳 민도르섬의 주인이었다. 처음 이들을 만났을 때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신체의 일부만 천 조각이나 나뭇잎으로 가리고 있어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또한 영어나 따갈로그어를 하지 못해 말이 잘 통하지 않았고 부족끼리만 뭉쳐살다보니 사회성도 부족해 경계심이 강했다. 당시 이들은 대부분 필리핀 국민으로 등록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씻지 않아 냄새도 났고 산속에 살다보니 그야말로 짐승처럼 취급받고 있었다. 따라서 돈 맛을 아는 따갈로그족들이 망얀족을 죽이고 땅을 뺏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망얀족은 제대로 방어조차 못하고 갈등을 피해 더 깊은 산 속으로 도망갔고, 문명 사회로부터 더욱 격리됐다. 21세기에 이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우리의 민도르 사역 가운데 하나로 '결혼 사역'이 있다. 망얀족 부부들을 정식 기독교 예식으로 결혼시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서류를 만들어 관공서에 등록한다. 그러면 이들도 주민등록증을 받고 정식 필리핀 국민이 된다. 투표도 할 수 있고, 자녀들을 근처 필리핀 공립학교에 보낼 수도 있다. 우리가 그 동안 개척한 60여 교회 중 40여 교회가 망얀족 교회로, 거의 대부분의 교회가 결혼 사역을 토대로 자리를 잡게 됐다.

필리핀은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으로 한 해에도 여러 차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다. 태풍은 망얀족들에게 특히 위협적이다. 태풍이 오면 강이 범람하거나 주거지가 휩쓸려 가는 경우가 많고 또 비바람에 몸이 젖어 저체온증을 겪기도 한다. 그 때 우리 교회는 마을의 유일한 피난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말 그대로 피난처다. 거의 모든 교회는 불어난 물을 막을 수 있도록 지표면에서 1m 이상을 높여, 시멘트 등 저항성이 강한 재료로 건축한다. 태풍이 다가오고 비바람이 치면 사람들은 마을 가운데 위치한 교회로 모인다. 시편에서나 읽었던 피난처가 실제 교회라는 사실을 보며 주님의 지혜를 읽는다.

망얀족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회에도 더 나눌 기회가 있을 것이다. 지난회 언급한 사고 이야기의 마무리를 짓겠다. 독자들은 우리가 어떻게 수렁에서 빠져나왔는지 궁금할 것이다. 모두 차에서 내려 차량을 꺼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차량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정말 난감했다. 산 속에서 비까지 내리는데 어디로 누구에게 연락해 도움을 구한단 말인가? 짧게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주위를 살폈다. 그 때 정말 믿지 못할 광경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굴삭기 한 대가 눈에 들어 왔다. 아니 이런 곳에 굴삭기가 있다고? 당시 서민도르주에서는 해안도로를 확충하고 있었는데, 이곳까지도 정지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굴삭기 기사는 우리 차량이 있는 냇가까지 기계를 이동시켰고 정말 간단하게 차량을 뭍으로 꺼내 주었다. 아마 굴삭기는 민도르 섬 전체에서도 몇 대 없을 것이다. 하물며 망얀족이 거주하는 산 속 오지에서 비 오는 날 아무도 일하지 않는 점심식사 시간에 굴삭기 기사를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우리 주님은 정말 우리를 감동시키시는 분이다. 우리의 문제보다 앞서 가신다. 그리고 문제의 해결책을 마련해 놓고 계신다. '여호와 이레'는 이런 때 쓰는 말이다.

망얀족 마을로 가다가 크고 작은 사고를 경험한 일은 여러번 있었지만, 그 날 사건은 정말 최악이었는데, 또 이렇게 손쉽게 해결되니 감사했다. 그날 받은 은혜가 또 하나 있다. 나는 그 사고로 동역자 닐로 목사의 차량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머플러가 잠기고 엔진까지 물이 찼기 때문이다. 차량은 꺼냈지만 어렵게 마련한 차량을 못 쓰게 되면 얼마나 상심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꺼내 놓고 시동을 거니 시동이 걸렸다. 이 날 우리는 설명하기 힘든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여기는 선교지이고 그리고 천사들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장순현 / 총회 파송 필리핀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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