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족 아이들 위해 마련한 기숙사

산족 아이들 위해 마련한 기숙사

[ 땅끝편지 ] 필리핀 장순현 선교사<3>

장순현 선교사
2023년 06월 20일(화) 13:53
아브라데일로그중앙초등학교 다목적선교센타 기공식.
지난 2월 민도로에 있는 아브라데일로그중앙초등학교(Abra de Ilog Central Elementary School)에서 특별한 행사를 가졌다. 학교 부지 내에 '다목적선교센터'를 완공하고 헌당한 것이다. 이 센터는 망얀족 어린이 교육과 지역 복음화를 위해 귀하게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원이너프선교회(이사장:박기철)를 통해 이 센터를 건립하게 된 것은 망얀족 선교에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

망얀족 교회가 늘어감에 따라 새로운 도전이 찾아왔다. 그것은 망얀족 2세들의 진로와 관련이 있다. 우리가 결혼 사역을 통해 망얀족들을 정부에 등록시켜 투표권을 가진 일반시민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다. 그 결과 망얀족의 아이들까지 민도로의 국공립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의 학업 중단 현상이 뚜렷하게 발생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이탈이 늘었는데 이유는 망얀족의 생계 유지와 관련이 있었다. 망얀족들은 채집 위주의 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부모를 도와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학교라는 것을 다니는 것도 생소하고 적응도 어려운데다 부모의 등쌀에 못 이겨, 망얀족 아이들은 배움을 중단하고 다시 산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필리핀 사회에 동화돼 살아가지 않는 한 그들의 삶의 지경은 변하지 않았다.

현장을 방문한 박기철 목사님과 필자는 망얀족 교회에 모여 부모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자녀들 세대는 달라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선사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계속해서 학교에 보내 공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외로 망얀족 부모들도 아이들이 계속 공부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일단 거주지와 학교가 너무 멀었다. 산 속에 살다 보니 아이들의 통학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녀들과 함께 일하지 않고는 생계를 이어 나가기도 쉽지 않았다. 이들의 얘기를 듣는 중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학교 근처에 기숙사 같은 것을 세워 통학 시간을 줄여주고,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한다면 아이들이 학업을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생각을 부모들에게 얘기했더니 그들도 무척 기뻐했다. 역시 부모의 마음은 어디나 같은 것 같다.

우리는 아브라데일로그 선교센터에 있는 질라오교회 예배당의 일부를 기숙사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22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로 임시 기숙사를 만들었다. 한국의 여러 교회들이 기숙사 개조 비용과 운영비를 지원해 주었고, 망얀족 아이들을 위한 기숙 사역이 시작됐다. 학교에서 10분 거리에 교회 전도사님과 청년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망얀족 어린이 기숙사가 마련된 것이다.

이제 망얀족 공동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첫 걸음이 시작됐다.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졸업하게 된다면, 이들은 더 이상 필리핀의 불가촉천민이 아닌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직은 먼 미래일 수 있지만 우리는 이 새로운 시도에 스스로 감격하고 주님을 찬양했다. 아이들에게 따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 것도 감사한 일이었다. 이렇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정부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운영 중인 기숙사가 불법이니 문을 닫든지 정부가 요구한 조건을 갖춰 인가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보건복지부 공무원이었다. 우리 기숙사 이야기가 어떻게 거기까지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이 제시한 운영 조건은 우리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황당한 것이었다. 그 내용을 다음 회에서 자세히 얘기하려고 한다.

장순현 / 총회 파송 필리핀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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