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결혼식으로 시작된 교회개척

합동결혼식으로 시작된 교회개척

[ 땅끝편지 ] 필리핀 장순현 선교사<5>

장순현 선교사
2023년 07월 04일(화) 12:58
망얀족 150쌍의 합동결혼식.
꿈이있는행복한교회 건축 현장의 무지개.
지난 회에 언급된 민도르 아브라데일로그중앙초등학교 내의 '원이너프선교센터'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진행한 망얀족 합동결혼식과 교회개척 과정을 알아야 한다. 망얀족 선교과정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부분은 이들을 정식 필리핀 국민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망얀족 대부분이 사회의 주류인 따갈로그족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기에 정부도 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굳이 공공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망얀족 역시 전혀 경제적 여유가 없다보니 시민권을 취득할 수 없었다.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는 정식으로 결혼을 하고 정부에 등록해야 하는데 산에서 채집생활을 하는 망얀족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민도르 섬에 더 많은 따갈로그족이 유입되면서 이 땅의 주인이었던 망얀족과 따갈로그족의 접촉이 빈번해졌고, 토지 소유권을 둘러싼 유혈충돌도 빈번히 발생했다. 따갈로그족은 옷을 입지 않고 살며 씻지도 않는 망얀족을 짐승처럼 대했고 돌로 때리기도 하고 곁에 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때론 땅을 빼앗기 위해 살인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망얀족들은 저항보다는 더 깊은 산속으로 숨어버리는 식으로 대응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이들이 당당한 필리핀 국민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결혼이었다. 합동결혼식을 통해 시민권을 취득하도록 돕는 것이다. 나는 이미 사실혼으로 같이 살고 있거나 자녀가 있는 망얀족 커플들에게 결혼식을 올리자고 제안했고 그들도 필요를 느끼고 있었으므로 합동결혼식이 성사됐다. 그리고 이것은 복음과의 접촉점이 됐다.

필리핀은 국교가 가톨릭이어서 신부들이 결혼 주례를 해야만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다. 하지만 현지의 귀족인 가톨릭 신부는 망얀족들에게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다행히 우리 목사들도 정부의 훈련과 절차를 거쳐 결혼식을 주관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필자는 바로 민도르 스탭 목사들에게 이 자격증을 따도록 요청했고, 드디어 합동결혼식이 열리게 됐다.

관공서에 등록할 서류 작성을 밤샘 작업으로 진행해, 드디어 이들에게 시민권이 발급됐다. 너무 가슴이 벅찼다. 이제 이들은 잊힌 존재가 아닌 정식 국민이 된 것이다. 합동결혼식이 거듭되면서 등록된 망얀족 국민의 수는 빠르게 늘어났다. 우리는 이들 공동체와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전도사를 파송해 교회를 개척했다.

이후 우리가 예상했던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먼저 따갈로그족들의 태도가 변했다. 이들이 주민이 됐다는 소문이 돌자 망얀족들을 함부로 대하던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변화는 공립학교까지 이어졌다. 결혼한 망얀족들이 시민권을 받게 되자 그들의 자녀에게도 입학통지서가 날아왔다. 이제 망얀족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실질적인 변화는 또 있었다. 정치인과 관료들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실 선교사인 내가 현지 정치인들을 만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결혼사역을 알게 된 주지사, 국회의원, 시장 등 현장에 나타나는 일이 잦아졌다. 왜냐하면 이제 50여 개로 늘어난 망얀족 교회 교인들이 중요한 유권자가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필리핀의 지도급 인사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이 또한 주님의 선한 인도하심 가운데 일어난 일임이 곧 밝혀졌다. 망얀족 교회 개척 과정에서 나 또한 이 정치인들의 도움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최근에 개척한 마아심 지역의 꿈이있는행복한교회가 있다. 주지사가 가난한 사람들을 집단 이주시켜서 700여 가구의 마을을 조성하는 바닷가 지역이었다. 땅을 사서 계약을 맺고 교회 건축공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났다. 어느날 공사차량이 들어가려고 하는데 출입구가 봉쇄돼 있었다. 치우려고 하자 누군가 나타났다. 공사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고 물으니 자신이 이 마을 입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이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를 지을 수 없다고 억지를 부렸다. 한 눈에 봐도 돈을 요구하는 것이 명확했다. 필자도 질 수 없었다. 이곳에 유일한 교회가 들어서는 것을 방해하는 사탄의 계략이라고 생각했다. 황당한 일은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해도 경찰 등 공무원들은 뒷짐만 지고 있을 뿐이었다. 소송을 걸면 이길 수 있겠지만, 그 동안 공사는 중단돼야 했다. 결국 교회 건축은 몇 달째 중단됐는데, 그 때 기도하는 가운데 전에 만났던 주지사가 떠올랐다. 나는 즉시 주지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장순현 / 총회 파송 필리핀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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