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전, 체코 선교사로 부름 받다

인생 후반전, 체코 선교사로 부름 받다

[ 땅끝편지 ] 체코 장지연 선교사<1>

장지연 목사
2023년 08월 22일(화) 13:35
2008년 교회 모임에서 찬양을 부르는 장지연 선교사 가족.
2006년 선교사 파송예배에서의 장지연 선교사와 한성미 선교사.
체코는 크게 보헤미아, 모라비아, 실레지아 이렇게 세 지역으로 나뉜다. 필자와 아내 한성미 선교사는 체코 북동쪽에 속한 실레지아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다. 이 지역의 중심 도시인 오스트라바에서 2007년부터 거주하고 있는데, 수도 프라하로부터 380km 떨어진 곳이다.

총회 파송 선교사로 체코 땅에 첫 발을 내딛던 때 우리 부부의 나이가 36세, 34세였으니, 인생 후반전을 체코에 투신하게 된 셈이다. 영문도 모르는 두 딸과 함께 도착한 프라하에서 선임 선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적응기간을 보내고, 다음 해 새로운 땅 오스트라바로 향했다.

낯선 곳이지만 교회를 선택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선임선교사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시내에 위치한 개신교회를 찾았고 체코 담임목사님을 대면했는데, 그분은 우리 가족이 프라하를 떠나서 동떨어진 지방 도시로 이사 온 것에 대해 의아해했다. 그만큼 당시에는 오스트라바라는 도시에 한국인이 있다는 것이 체코인들 눈에 낯설게 느껴졌던 것 같다.

어느 누구든 낯선 땅에 들어서면 새로운 경험에 직면하게 되고 복잡한 감정을 겪게 된다. 또한 모국에서는 문제 될 게 없는 일이 선교지에서는 까다로운 일로 다가오기도 한다.

두 딸을 각각 초등학교 3학년과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데 이게 당장 큰 일로 다가왔다. 거주지를 중심으로 동네 한 바퀴를 돌아봤지만 학교나 유치원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한국 같으면 학교와 유치원을 쉽게 만나는 데 말이다. 당황스러웠다. 다급한 마음에 다소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A4 종이에 체코어로 '학교'라고 적어 버스 정류장을 다니며 학부모로 보이는 이들에게 보여주니 손짓으로 방향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 식으로 여러 사람에게 물어가며 가리키는 방향으로 갔더니 마침내 교육기관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언어도 서툴고 모든 것이 낯선 상황에서 발휘된 생존본능이었던 것 같다.

체코 생활 초창기에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머리가 덥수룩해져 동네 미용실을 찾기 전에 '머리카락을 조금만 잘라 달라'는 체코어 표현을 미리 연습했다. 미용실에 들어가 앉자마자 미리 익혀둔 대로 '조금만 잘라 달라'고 얘기했다. 미용사 아주머니는 이해했다는 듯이 바리캉을 집어 들고는 사정 없이 머리 뒷부분을 밀기 시작했다. '머리를 조금만 남겨 달라'고 이해한 것이다. 소통이 잘못된 걸 직감했지만 순간 정지 상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때 완성된 짧은 스포츠형 머리는 십수년 동안 내가 고수하는 스타일이 됐고, 그 미용실도 단골 가게가 돼 지금은 방문할 때마다 미용사와 수다를 떨며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오스트라바에 대해 많은 정보가 없던 나로서는 틈이 나는 대로 발품을 팔아 동네를 다니며 지리를 익히고 지역교회들을 리서치하기 시작했다. 자가용이 없다 보니 불편할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한국인 지인이 자신의 소형차가 오래되어 폐차시킬까 고민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를 설득하여 적당한 협상 끝에 차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여기저기 벗겨진 낡은 소형자동차였지만 이후 사역에 요긴하게 활약을 해주었다.

2년 정도 그 차를 잘 타고 다녔는데, 안타깝게도 체코에서 처음으로 교통사고를 겪게 되었다. 추운 겨울 아침에 사역을 위해 체코 목사가 앞선 차로 안내하고 필자는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에 앞선 차가 멈췄는데, 그걸 확인하고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지만 빙판길 위에서 차가 제동이 되지 않은 채 그만 체코 목사가 몰던 차의 뒤를 부딪치고 말았다. 대단히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빙판길에서 제동을 못하고 사고가 나는 장면을 뉴스나 드라마에서나 보았지 필자가 직접 겪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수리비를 감당하기에는 차가 많이 낡아 하는 수없이 필자의 차를 폐차시켜야만 했다.

앞선 차로 필자를 안내하다가 봉변을 당한 다니엘 흘레벡 목사는 청소년, 청년 세대를 위해 사역하는 M.I.S.E라는 이름의 선교기관의 책임자였다. 지금은 그와 친구처럼 지내고 있지만, 사실 그와의 첫 만남은 유쾌하지 못했다. 어느 지역교회 행사에서 만나 탁자를 앞에 두고 얘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무슨 이유로 우리 가족이 오스트라바에 왔느냐는 질문과 함께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 거냐는 질문을 해왔다. 첫 만남에서 '언제 돌아갈 거냐'는 질문을 들으니 속으로 기분이 언짢았던 기억이 난다. 이곳에서 사역하는 외국인 선교사가 거의 없기도 하고, 있더라도 단기간 사역하고 떠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체코인 입장에서 필자에게 그런 질문을 꺼냈을 거라는 추측을 하게 됐지만 첫 만남에서 그런 질문은 필자에게 부정적으로 다가왔다. 어색했던 그 첫 만남 이후로 서로의 고민도 털어놓고 기도제목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나중에 다니엘 흘레벡 목사가 필자에게 얘기하기를, '당신이 이렇게 오랫동안 체코에서 지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면서 서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장지연 목사 / 총회파송 체코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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