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했던 시골교회에서의 경험

강렬했던 시골교회에서의 경험

[ 땅끝편지 ] 체코 장지연 선교사<2>

장지연 목사
2023년 08월 29일(화) 16:26
기도를 요청하는 교인을 붙잡고 기도하는 필자.
체코 오스트라바에 둥지를 튼 우리 가족은 시내에 위치한 현지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예배가 루터교회의 형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처음엔 낯설었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우리 가족이 지역 교회들로부터 초청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체코어로 설교할 수 있을 정도의 언어 실력이 되지 못했지만 한국과 한국교회 소개 같은 순서를 맡아 지역교회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또한 매주 월요일 아침 8시 30분에 실레지아 루터교단 본부에서 현지인 목회자들이 정기 모임을 갖는데, 필자도 허락을 받고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 모임 덕분에 나는 지역교회 목회자들과 친해졌고, 교회들의 상황도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시골교회 담임목사인데 지인으로부터 나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면서 나에게 설교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무척 당황했다. 체코어로 설교할 수 있는 실력과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 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한번 용기 내어 해보자'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덥석 설교 요청을 수락하고 말았다.

설교 요청을 수락받은 타데아쉬 목사는 필자에게 다른 요청을 덧붙였다. 설교 후에 기도제목을 가지고 단 앞으로 나오는 교인들을 위해 개별적으로 기도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체코에서 예배 중에 안수기도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는데, 그것을 해달라고 하니 난감했지만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역시 수락했다.

첫 설교를 준비하는 데에 족히 한 달은 걸렸던 것 같다. 우선 영어로 짧은 문장을 만들고, 이것을 아는 목사님을 통해 체코어로 번역한 끝에 설교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드디어 약속한 주일에 시골 마을에 위치한 떼를리츠코교회를 방문했다. 설교 시간이 되자 떨리는 마음으로 서투른 체코어로 설교문을 읽어나갔다. 성도들을 쳐다볼 여유도 없이 설교문을 읽기에 여념이 없었다.

설교가 끝나고 교인 중 기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나오며 안수기도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안수기도하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을 회중들이 의식돼 긴장한 상태로 기도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기도하면 할수록 그들을 향한 주님의 긍휼이 느껴지면서 무언가 뜨거운 감정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나는 체코 교인들을 붙들고 눈물과 콧물 쏟으며 오열하고 있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었지만, 그 광경을 본 회중들이 얼마나 당황하였을까 싶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타데아쉬 목사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내용을 요약하면 교인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목사님 자신도 폐암 투병 중인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나를 초대했는데, 필자가 교회를 다녀간 후 그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생겨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어떠한 정보도 없이 찾아가 함께 예배드린 그 자리에서 성령의 은혜와 역사가 나타났다는 고백을 읽으며 입에서 저절로 감사가 흘러나왔다.

타데아쉬 목사는 나에게 정기적인 교회 방문을 요청했다. 필자는 이후로도 몇 년 동안 그 시골교회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설교와 중보기도로 그들을 위로했다. 그때 강렬했던 시골교회에서의 만남은 현지 교인들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됐을 뿐 아니라 필자에게도 사역에 대한 확신을 갖는 계기가 됐다. 하나님이 앞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크게 역사하고 계심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필자는 떼를리츠코교회 교인들이 신앙 생활에 더욱 힘을 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수 두드림교회(구 길벗교회)를 소개해 주고 자매결연을 맺도록 도와주었다. 두 교회의 관심과 기도는 실제로 한국 교인들이 떼를리츠코교회를 방문하는 열매까지 맺었다. 함께 예배 드리며 교제하는 가운데, 민족과 언어가 달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임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손님을 맞는 체코 교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러 가정들이 집에서 손수 과자, 케이크 등을 만들어 왔으며, 예배 후 친교 시간에는 교회 옆 마당에 솥을 걸어놓고 스프를 끓여 한국 교인들에게 체코 음식을 정성껏 대접했다. 체코 방문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교인들은 "다양한 유적지를 포함해 프라하같은 큰 도시를 방문하기도 했지만, 떼를리츠코교회에서 이뤄진 현지 교인들과의 만남이 가장 감동적이었고 기억에 남는다"는 고백을 했다.

떼를리츠코교회 교인들도 내년에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계획 대로 잘 진행돼 체코 교인들이 한국에서 복된 경험을 하고 신앙의 새로운 결단을 내리길 기대해 본다.

장지연 목사 / 총회파송 체코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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