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의 길과 같은 서평의 제주 올레길

순교자의 길과 같은 서평의 제주 올레길

[ 선교여성과 교회 ] 전남 지역 여전도회 33

한국기독공보
2023년 08월 31일(목) 03:35
1928년 8월 서평은 모슬포교회에 초청돼 부흥회를 인도했다. 모슬포교회는 바닷가 교회인 만큼 해녀들이 많았다. 해녀는 가정을 지키는 가장은 아니지만 본토 여성과 달랐다. 본토 여성 대부분이 보수적이고 남성에게 노예 같은 대우를 받은 반면 제주도의 여성들에게선 그들 특유의 정체성과 희망을 보았다.

남성교역자가 할 수 없는 여성 사역은 얼마든지 있었다. 서평은 그런 면에서 제주 여성사역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최흥종이 금정교회 담임을 사임하고 1926년 6월 모슬포교회 담임목사로 일했던 탓에 최흥종과 연계해 모슬포 지역에 대한 전도계획을 실행했다. 서평은 서거 한 해 전 1933년 병약한 몸으로 모슬포에서 생애 마지막 2주간의 사경회를 인도했다. 그때 동행했던 서로득 부인이 극구 말렸지만 서평은 "건강이 회복된 다음에 하자면 하나님 사업은 언제 하겠는가? 약속한 일이니 기어코 가야 한다"며 병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당시 서평의 간호를 맡았던 변마지는 "위독하다 할 정도로 병세가 어려웠는데도 '죽었으면 죽었지 목숨이 붙어 있는 이상 가지 않을 수 없다'며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하나님 일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조금도 개의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평은 서로득 부인과 조수 박해라의 부축을 받고 모슬포까지 이틀 반이나 걸리는 항해를 해야 했다. 여객선이라야 세 칸 집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배였다. 그는 삼등실에서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등 남녀노소가 뒤섞인 틈새에 끼어가야 했다. 파도에 따라 이리 밀리고 저리 쏠리면서 시달리고, 배멀미로 다른 선객들과 같이 구토도 했다.

서평은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150리 또는 200리나 되는 먼 거리에서 모여든 해녀들에게 성경 공부를 가르치는데 옷조차 남이 입혀주어야 할 만큼 쇠약한 몸에 더운 물주머니를 허리에 얹고 침상에 누워서 가르쳤다.

모슬포에서 2주간의 사경회가 끝나자 서평은 동행했던 서로득 부인에게 말했다. "처음 올 때보다는 훨씬 회복됐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귀를 타고 천천히 이 섬을 한 번 돌아보고 싶으니 박해라는 여기 놔두고 순이(제주에서 얻은 고아)만 데리고 광주로 돌아 가시면 좋겠어요. 이 섬에는 교회만 해도 10개소가 되고 각 전도소에는 선교사가 순회와 주기를 바라는 데도 아무도 이 섬을 돌아볼 시간을 내지 못했어요. 그러니 이왕 온 김에 돌아보고 싶어요."

이 말은 들은 서로득 부인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2주일간의 사경회는 이미 약속한 것이니 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꼭 돌아가야만 할 처지였다. 서평의 불타는 선교열정에 감동한 서로득 부인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찢겨지고 조각난 날개를 가지고서도 더 큰 비상을 계획하고 있는 정열이 얼마나 아름다운 봉사의 비전이며 승리인가! 용맹스럽고 순수한 영웅적인 자질에 순교자의 길을 걷고 있다."

타마자 부인의 선교보고에 따르면 서평은 이때 부인조력회를 조직했다. 본토와 떨어져 있는 탓에 선교사들의 감독이 어려우므로 장로교 통합위원회가 만들어질 때까지 여전도회와 연계되도록 했다. 이러한 제주 부인조력회의 발전은 선교부와 총회 차원에서 볼 때 일종의 기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기풍 목사와 윤식명, 김창국, 최흥종, 이경필로 이어지는 전라노회의 협력과 동역이 있었기에 전적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서평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서평은 이미 언급한대로 1917년 3월 이기풍과 제주 성내교회에서 부흥사경회를 연 이래 거의 해마다 제주를 찾았다. 동료 선교사들이야 어쩌다 한번 찾는 제주였지만 서서평에게 있어 제주는 광주에 이은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 여성들의 처지와 그들의 강인한 기질이 자신과 닮은 꼴이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서평의 제주 방문과 사역의 결과는 마율리, 도마리아, 노라복 부인, 타마자 부인, 서로득 부인과 매티 데이트 등 제주 현지를 잘 아는 선교사들의 보고서 속에 이 모든 것이 서서평 선교사가 조력회를 통해 이룬 아름다운 결실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모두 서서평의 선배이거나 동료들이다. 그들의 보고서에는 서서평에 대한 시기나 질투보다 냉정한 현실, 서서평을 들어 쓰신 하나님의 드러남이라고 보인다. 그런 이유로 서서평은 그들에게 무한한 자랑이었고 감히 넘어서기조차 두려운 그 무엇이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는 평범한 진리 앞에 자신을 내던진 서서평의 가치가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서로득 부인이 이러한 서서평의 가는 길을 가르쳐 "찢겨지고 조각난 날개를 가지고서도 더 큰 비상을 계획하고 있는 정열이 얼마나 아름다운 봉사의 비전이며 승리인가! 용맹스럽고 순수한 영웅적인 자질에 순교자의 길을 걷고 있다"라고 표현한 이유가 되었다.

순교자의 길을 걸었던 서평의 제주 올레길. 그 길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이 조력회였다. 1926년 무렵 제주조력회의 모습을 노라복 부인(Maie Borden Know)이 제주를 방문해 그린 글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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