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 목숨 연장해 달라는 서서평의 기도

3년만 목숨 연장해 달라는 서서평의 기도

[ 선교여성과 교회 ] 전남 지역 여전도회 35

한국기독공보
2023년 09월 14일(목) 15:57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이 우리 곁을 떠난 1934년도 어느덧 81년 전의 일이다. 사람들은 쉐핑의 이름을 모른다. 여성이기에, 목사도 아닌 평신도였기에, 의사도 아닌 간호사 신분이었기에 사람들은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물론 애써 기억할 필요야 없겠지만 한국교회는 실제 이분에게 많은 빚을 지고 산다.

흔히 서서평 선교사로 불리우는 쉐핑은 우리나라 근대 간호계의 대모이다. 1923년 조선간호부회를 조직해 오늘 대한간호협회를 있게 하신 분이다. 또한 1922년 부인조력회를 만들어 그가 일으켜 세운 조선 여성들의 소망과 삶에 일대 전환을 가져온 탓에, 조선예수교장로교 총회가 이를 '여전도회'로 이름을 바꾸어 전국적인 조직으로 흡수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여전도회가 해외 선교현장에서 가장 아름답게 꽃피운 나라가 한국이었다. 그 사역의 정점에서 조선 여전도회의 기초를 다지고 헌장을 만들고 요즈음 소위 말하는 구역제도와 성미제도를 만들었다.

광주의 갈 곳 없는 과부들과 고아들을 모아 전도부인을 양성하고 이들을 한 해에 4만 명도 더 넘는 주일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엘리제 선교사로서는 극히 예외적으로 금정교회 교인으로 등록하고 선교부에서 받는 급여의 반을 떼어 십일조로 드렸다. 십일조가 아니라 십오조를 드린 셈이다.

특히 양림교회가 분립되어 나간 이후 금정교회에 대한 그의 헌신은 가히 살신성인적 자세로 임했다. 부인조력회를 지도함은 물론 본인 스스로 부인전도부장직까지 맡았다.

쉐핑은 가난한 목사들의 생활고를 덜어주고자 성미 제도를 만들었다. 밥을 짓기 전 쌀과 감자의 십분의 일을 덜어내 교회로 가져오면 이 가운데 세 말에서 다섯 말 정도를 목사의 생활비로 지급하고 나머지를 이웃의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사용했다. 복음을 위해 살았던 이들에게 먹고 사는 일은 이차적인 문제였다. 전도하고 어려운 이들을 살피며 돌보는 일이 최우선이었다.

제아무리 세상사는 모습이 달라졌다 해도 요즈음 교회의 모습과는 다르다. '과거 그들이 믿었던 하나님은 요즈음 하나님과 다른 분인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종교를 갖는 일에는 자기 개인의 편안함과 물질적인 축복을 누리고 싶은 소망도 포함된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자인 절대자에게 의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신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직업적인 사제나 스님, 목사가 되려는 이들을 포함해 신앙인에게는 자신의 축복 속에는 이웃을 향한 연민과 봉사의 책임도 뒤따른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과 삶을 나누는 정신은 하나님이 요구하는 거룩함을 실천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충성이나 헌신이기 이전에 양심 있는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최소한의 요구다. 병들고 굶주린 이웃을 돌보다 정작 자신은 영양실조로 죽어야만 했던 엘리제 쉐핑이 어쩌면 바보처럼 살았는지도 모른다. 요즈음의 종교인들에게서 이런 상식과 양심을 가진 바보를 기대하기가 정말 어리석은 일일까?

엘리제 쉐핑의 삶은 이 땅에서 병들고 지친 이들과 더불어 22년간 사랑을 나누며 자신의 몸과 영혼을 드려 조선인으로 살았던 데서 의미를 갖는다. 엘리제는 13명의 여자 아이를 입양하고 한센인이 낳은 아이를 거두어 자신의 양아들로 키웠다. 단순히 돕는 차원이 아니라 이들과 한 이불 속에서 속살깊은 사랑을 나누며 더불어 살았다.

엘리제는 조선의 간호부회를 창립하고 죽기 직전까지 이끌었다. 그녀는 조선인의 자주 독립과 국제적 지위향상을 위해 국제 간호협의회의 정회원 국가의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일본의 방해로 좌절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지막 130일간에 걸친 투병 생활을 마치고 죽기 전 이런 기도를 올린다.

"오, 하나님. 아픔을 덜어주시고 3년만 더 살게 해주십시오. 제가 품고 있는 포부는 하늘만큼이나 크고 원대한데 이 풍토병 때문에 천직으로 알았던 간호원 일도 그만두어야 했고 어둠 속의 조선 여성들을 가르치는 일도 마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명을 갖고 온 선교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3년만 시간을 더 주신다면 하나님 사업을 더하고 마무리할 수 있을 터인데 제발 제 목숨을 3년만 연장시켜 주십시오."

우리 여전도회원들이 서서평 선교사의 유언처럼 하나님 앞에 3년만 생명을 연장시켜달라는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 그만큼 그 마음의 중심에 여전도회를 사랑하는, 하나님 앞에 숨은 기도가 간절한 분이었다.

'성공보다는 섬김', 영토의 확장보다는 하나님의 거룩을 실천하려 애쓴 그분은 정작 자신은 영양실조로 그렇게 떠났다. 삶으로 주님을 드러낸 쉐핑같은 믿음의 사람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도, 한국교회도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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