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성공사례-몬드라곤과 볼로냐

협동조합 성공사례-몬드라곤과 볼로냐

[ 교계 ]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3년 04월 15일(월) 11:23
상생의 꽃, 협동조합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면
세계 경제위기의 큰 파도 견뎌내는 '협동'의 힘 발휘
평등 기초로 모두가 잘사는 세상 구현, 양극화 대안
 
리오넬 메시, 다비드 비야 등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를 보유한 스페인 축구클럽 FC바로셀로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오렌지의 대표 브랜드 '썬키스트', 포도주스와 무알코올 와인으로 유명한 '웰치스', 미국의 'AP통신사', 뉴질랜드의 키위 브랜드 '제스프리' 등의 공통점은 협동조합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협동조합이 많지 않아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협동조합이 태동된 영국을 비롯한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스위스 등의 유럽에서는 협동조합이 이미 오래 전부터 보편적인 기업의 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유럽의 여러나라에서는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마트나 시장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에 갈 때 "쿱(COOPㆍ협동조합) 간다"고 말할 정도다. 우리나라에는 서울우유협동조합, 아이쿱, 한살림 등의 협동조합이 있지만 유럽이나 북미에 비해서는 기업의 수나 규모가 미약한 수준이다.
 
협동조합은 특히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사람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았던 미국과 유럽의 수많은 주식회사 및 개인기업들은 금융위기의 거센 파도에 속절없이 휩쓸려갔다.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했으며, 살아남은 기업들에서는 가혹한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물론 협동조합 기업에게도 세계 금융위기는 크나큰 위협으로 다가왔지만 상대적으로 그 피해는 적었다.
 
특히 협동조합의 최고 성공사례로 꼽히는 스페인의 협동조합복합체 몬드라곤, 그리고 협동조합의 수도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의 8천여 개의 협동조합에서는 한 명의 해고자도 없었다. 비록 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평등의 기초 위에 상생을 위해 손을 맞잡으면 어떠한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는 협동조합의 정신이 빛을 발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 가장 가난한 도시에서 유럽 최고의 부자 지역으로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주(州)는 원래 1950년대까지 이탈리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한곳이었다. 이렇게 가난했던 에밀리아로마냐는 현재는 1인당 소득이 4만 유로(원화로 약 6천만 원)로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지역이 됐다. 이 드라마틱한 변화의 이유는 협동조합 때문이다.

   
▲ 에밀리아로마냐에서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는 상점의 모습
 
현재 에밀리아로마냐주에는 8천여 개의 협동조합이 있으며, 주의 총생산 중 30%가 이 협동조합 기업에서 창출되고 있다.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주도(州都)인 볼로냐의 경우는 협동조합의 경제비중이 45%까지 올라간다.
 
현재 볼로냐는 유럽연합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5개 지역에 속한다. 볼로냐는 이탈리아 협동조합의 수도라고 말할 정도로 협동조합이 도시의 산업과 일상의 삶에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다. 볼로냐에는 4백 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있으며, 볼로냐의 상위 기업 50개 중 15개가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은 볼로냐가 속한 에밀리아로마냐 주 모든 생산 경제 활동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임금은 이탈리아 전체 평균의 2배이며, 실업률은 3.1%에 불과하다. 대기업이 한 곳도 없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다.
 
그러면 볼로냐에서 협동조합이 이렇게 발달하고,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볼로냐 지방에는 옛날부터 이 지역에는 왕자, 백작, 공작이 거주하지 않아 전통적으로 계급 문화가 뿌리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일반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평등한 입장에서 일을 할 수 있었고, 협동조합이라는 구조는 일반 시민들을 위한 최적의 시스템이 됐다.
 
또한, 1800년대 후반에는 가톨릭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도 활발하게 일어났고, 이러한 운동들을 통해 역사적으로 수동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려는 지역성이 형성되기도 했다.
 
사회적 제도도 볼로냐의 협동조합 발달에 큰 몫을 담당했다. 이탈리아 헌법 제45조는 협동조합 운동이 존재함을 알고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기업과 달리 세제 혜택이 있어 협동조합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요건이 됐다. 협동조합은 일반 사기업과 똑같이 세금을 내지만 이윤에 있어 사기업은 이윤 1백% 중 27.5%의 세금을 내지만, 협동조합은 이윤의 70%는 면제되고, 나머지 이윤 30% 중 27.5%만 세금으로 낸다. 새 협동조합에 재투자하면 이에 대한 면세 혜택도 있다.
 
볼로냐에서는 협동조합 간의 협동도 잘 이뤄진다. 한 협동조합에서 실업자가 생기면 다른 협동조합에서 그 실업자를 고용하는 형식으로 협동조합의 틀 안에서 고용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고용불안도 해소한다. 하나의 협동조합은 작고 연약하지만 각각의 협동조합들이 함께 연대함으로 세계경제위기 같은 큰 파도도 능히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 세계 최대의 협동조합
 
이탈리아에 에밀리오로마냐의 협동조합들이 있다면 스페인 바스크 지역에는 세계 최대의 협동조합복합체인 '몬드라곤(MONDRAGON)'이 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이 위치한 바스크 지역은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 사이에 위치해 역사적으로 많은 갈등을 겪은 곳이다. 이곳에서는 스페인어가 아닌 바스크어를 사용하며, 지금도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이들이 많아 정부의 박해와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호세 마리아라는 젊은 신부가 1941년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시골마을에 부임했을 때 이 지역은 독일 히틀러 군대의 공습을 당해 폐허가 되어 있었고, 1만 명의 시민 대부분도 고향을 떠난 상태였다.
 
   
▲ 몬드라곤에 있는 협동조합 기념 조형물. 지구본 위에 악수하는 두 손이 상호협력을 의미하고 있다.
민중의 극심한 경제적인 어려움에 가슴 아파하던 호세 마리아 신부는 이들의 가난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협동조합을 생각했다. 그는 지역민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 가난을 극복하자고 주민들을 설득해 기술학교를 설립했고, 결국 1956년 기술학교 졸업생 5명과 노동자 23명이 힘을 모아 석유난로 공장을 설립했다. 이 석유난로 공장의 이름이 몬드라곤의 첫 협동조합이 '울고(ULGOR)'였다. 이렇게 조합원들의 주인의식을 바탕으로 성장을 거듭한 울고는 60년대 초반 이미 스페인 내 1백대 기업으로 떠올랐다. 이 같은 울고의 성공을 모델로 아라사테, 코프레시, 에델란 등 다른 생산협동조합들이 속속 생겨나 몬드라곤그룹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몬드라곤그룹은 80년대 초 스페인 경제가 침체를 겪을 때 몇 년 간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이후 줄곧 고속성장을 지속했다. 울고 설립 이후 MCC는 순익 기준으로 연평균 7.5%, 일자리 창출 규모로 연평균 10%씩 성장했다. 직원 5명으로 시작한 협동조합이 현재는 8만4천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매출 21조원의 거대그룹으로 성장한 것이다.
 
현재 몬드라곤은 1백11개의 협동조합, 1백20개 자회사 등 총 2백55개 사업체를 거느린 협동조합복합체다. 몬드라곤 지역 인구 2만5천여 명 중 노동을 할 수 있는 인구는 1만3천여명 정도인데 이 중 3분의 2가량인 8천3백여 명이 몬드라곤그룹의 조합원이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몬드라곤그룹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이곳의 주민들은 몬드라곤그룹 산하의 금융기관인 '카하 라보랄(노동인민금고)'에서 대출을 받고 산하 소비협동조합인 '에로스키'에서 각종 생활용품을 산다. 또 복지기구인 '라군 아로'에서 건강보험과 노후복지 혜택을 받으며 이들 자녀들의 상당수는 몬드라곤그룹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몬드라곤 기술대학을 졸업한 뒤 다시 몬드라곤그룹에 취직한다.
 
이렇게 큰 대기업이 된 몬드라곤은 조합원 해고를 하지 않는다. 한 조합이 어려워져서 인원을 줄여야 하면 고용여력이 있는 그룹 내 다른 조합으로 옮기게 하는 방법으로 경기침체시에도 무해고 방침을 이어간다. 직원들에게는 꿈의 직장인 셈이다. 몬드라곤이 전세계인들에게 주목받는 이유는 이 꿈의 직장이 꿈이 아닌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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