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3~28일

7월 23~28일

[ 가정예배 ]

2018년 07월 20일(금) 19:17
월-축복의 선택
본문: 수 8:30~35
찬송가: 28장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근시안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지금 그들에게는 요단 도하와 여리고 점령과 아이 성 점령 등의 성공이 계속되고 있다. 일이나 사건 중심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행동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축복의 선택인지를 깨닫는 은혜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삶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한 것은 위대한 고백이다. 언약의 땅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외에는 다른 어떠한 이방의 우상들도 섬기지 않겠다는 것을 의지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축복이고 예배드리는 자를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항상, 평생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축복의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삶의 문제와 고난과 고통이 많을지라도 더욱 예배드리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다." 번제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 헌신을 목적으로 드려지는 제사이며 화목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평화와 친교를 목적으로 드려지는 제사이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감사하는 것은 높고 성숙한 신앙의 표현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승리감에 도취되거나 교만하지 않고 그 모든 성공과 승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임을 믿고 감사하는 제사를 드렸다. 마음의 넓이와 깊이가 있고 신앙의 넓이와 깊이가 있을 때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된다. 감사하는 마음과 표현은 은혜와 축복이다. 성숙한 신앙의 인격이다. 감사는 신앙의 꽃과 열매이다. 감사할 때 시험을 이기고 다양한 기적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삶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축복의 산인 그리심산에 오른 사람은 율법에 순종하는 자들을 상징하고 저주의 산인 에발산에 오른 사람은 율법에 불순종하는 자를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축복과 저주는 오직 율법의 순종 여부에 달린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지혜와 구원과 생명과 용기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께 예배하고 감사하고 말씀 경청하는 삶을 선택해 가장 복 받은 자의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정식 목사/봉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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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예배하며 사는 가정
본문: 계 7:9~17
찬송가: 502장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우리 믿음 생활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살피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본문은 요한이 환상 중에 본 하늘에서 드려지는 예배 모습이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때에 핍박 당하는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인데 중간 중간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4장, 5장에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여준 후 흔히 말하는 7가지 심판을 말한 후, 또 7장에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였고, 나팔심판 후 14장에서, 대접심판 후 19장 이후 예수님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드려지는 예배와 생활을 보여준다. 마지막 때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힘들고 어렵게 믿음 생활 하는 성도들에게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로하기 위해서다. 천국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보고 위로 받고 힘과 용기를 얻어 고난을 이겨가라고 예배를 보여줬다.
 
첫째로 예배는 이정표와 같다. 우리는 모르는 길을 가다보면 '이 길이 맞나 안 맞나' 궁금해질 때 '00 몇 km'라는 이정표가 나오면 안심하게 된다. 예배는 하나님 보좌 앞에서 드릴 예배를 생각나게 한다. 예배는 우리가 가야할 최종 목적지가 하나님 보좌 앞임을 가르쳐준다.
 
두 번째는 예배는 주유소와 같다. 차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워야 달릴 수 있듯이 우리도 주님의 은혜를 받아야 힘 있고 즐겁게 믿음 생활 할 수 있다. 어떤 은혜를 채워야 하는가? 예배드릴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 사죄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 기도응답의 확신, 인도와 승리의 확신, 성령 충만한 삶을 채워야 한다.
 
세 번째로 예배는 천국을 미리 경험하게 한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천국에서 가장 기쁘고 즐거운 일은 예배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배를 통해 구원의 기쁨과 감격으로 충만한 천국을 경험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예배드리기 위해 해발 800m의 산을 오른다.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땀 흘리며 가파른 산길을 오르지만 감사와 찬양으로 올라갔다. 성전에서 예배드린 후 하나님 앞에서 음식을 나누며 즐거워하며 천국을 경험한다. 그러기에 우리도 예배를 귀히 여기고 예배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누구를 만나든지 주께 하듯 하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며 일상생활 자체를 예배하듯 살았다. 우리도 예배를 통해 천국을 소망하고, 은혜를 공급 받아, 힘들고 어려운 생활에도 힘과 용기를 얻어 천국을 경험하며 구원의 감격과 기쁨으로, 감사하며 사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예배 드릴 때마다 천국을 보여주시고 구원의 확신, 구원의 기쁨과 감격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배 드릴 때마다 삶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재곤 목사/포항수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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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뼈에 닿자
본문: 왕하 13:20~21
찬송가: 159장

엘리사는 스승이었던 엘리야에게 영감의 갑절을 구했던 놀라운 사람이다. 그리하여 기적도 갑절로 행했던 것을 볼수 있다. 엘리사가 죽을병에 걸리자 이스라엘왕 요아스가 눈물을 흘리며,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할 정도로 그는 많은 기적과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행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도 결국은 병들어 죽고 말았다.인생의 허무함을 잘 보여주고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을 나그네다 객이다 또는 안개와 이슬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제 이스라엘의 왕까지도 아버지라 불렀던 엘리사가 죽자 그를 묘실에 장사했고 이 틈을 타 모압의 도적떼들은 그 땅을 침범하여 쳐들어왔다. 그때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왕하 13;21)라고 성경은 말한다.
 
엘리사는 죽은 후에도 그의 뼈에 죽은 시체가 던져지어 닿기만해도 살아나는 소생의 역사를 일으켰다. 믿는 자들이 점점 죽음 앞에,문제 앞에,인생의 풍랑 앞에 힘을 잃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엘리사처럼 능력있는 삶을 살아내야 하겠다. 살았을 때 뿐만 아니라,죽음 이후에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소망을 잃은 자들에게는 하늘 소망을 심어주고,슬퍼 낙망하는 영혼들에게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힘이 됨을 말해줘야 한다. 그래서 부활신앙을 가지고 신바람나게 살아야 한다. 오직 부활이요 참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인생의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영접하는자 곧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활의 주님을 따라가려면 못자국난 주님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그 못자국난 주님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개고 이 세상을 헤쳐나갈 때,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할것이나,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는 말씀대로 성취되는 삶을 살게될것이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권능으로 임하셔서,마른뼈가 나뒹구는 골짜기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신다.그리고 물어보신다."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에스겔이 자신없게 대답한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소망없는 뼈들에게 대언하라 하신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그 명령대로 대언했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가 되었다. 이제 우리의 사명은 우리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손길이 닿는 곳마다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오늘의기도
우리를 통하여 이 땅에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미자 목사/주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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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믿음과 영생
본문: 요 6:60~71
찬송가: 436장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디를 가시든지 몰려왔다. 예수님은 이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천국복음을 전하셨다. 그 사람들 중 일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예수님의 사역은 모두가 말씀을 듣게 하고, 믿음을 가지게 하고 구원을 얻게 하기위한 것이었다.
 
본문을 보면 제자들이 "이 말씀이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하고 말한다. 그리고 제자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났다고 한다. 이들이 이렇게 쉽게 예수님을 떠난 것은 예수님을 찾아온 목적이 오직 떡과 고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교회에 나온 사람들은 자기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떠나간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난 또 다른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구원을 얻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인데 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영광스러운 메시야만 생각했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구원할 메시야를 생각하지 못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다. 하나님을 본 적이 없으나 믿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 가장 큰 복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자에게 역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도 하나님의 도움을 기도하며 성경을 읽고 연구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너희도 가려느냐?" 이 때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일종의 신앙고백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곧 영생의 말씀인 것을 믿는다는 고백이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영생의 말씀이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알았다. 69절에 보면 "믿고 알았다"고 말한다. 그렇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 예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영생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은혜이다. 아무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 나라에 있을 곳을 예비해 놓으셨다고 해도 믿음이 없으면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지고, 설교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듣게 되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른다.
 
오늘의 기도
모든 말씀을 온전한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기쁨으로 이 말씀을 묵상하며 전하게 하소서.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완철 목사/성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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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섬김의 언어를 위해
본문: 잠 15:1~4
찬송가: 218장

남을 섬긴다는 것은 꼭 돈을 가져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돈 없이도 남을 기쁘게 할 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말로 기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섬김의 언어'라고 한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유순한 대답, 지혜 있는 말, 온순한 말 이것이 섬김의 언어이다. 사람이 마음에 품은 것이 입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악을 품었으면 악한 말이 나오고 선을 품었으면 선한 말이 나온다. 오해가 있으면 뼈 있는 말이 나온다. 그 말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마음에 열매로 남는다. 때로는 섭섭함의 열매, 미움의 열매, 두려움의 열매, 싫어함의 열매, 때로는 기쁨의 열매, 감사의 열매, 사랑의 열매로 남는다.
 
지금까지 내가 한 모든 말들이 타인의 마음에 미움의 열매로 맺혀 있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이고, 사랑의 열매로 맺혀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왜냐하면 그것이 곧 내 인생의 열매가 되기 때문이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나니 혀를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이 세상에 칼로 죽인자 보다 혀로 죽인 자가 더 많다. 칼은 쓸수록 무뎌지지만 혀는 쓸수록 날카로워진다. 요즘같이 모두가 살기 어렵고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 섬김의 언어로 남에게 위로를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첫째, 지나친 농담이나 비꼬는 말을 삼가해야 한다. 농담이라는 것은 무거운 대화로 너무 경직되어 있을 때 긴장을 풀기 위해 한번 사용하는 것이다. 이럴 때는 약이 되지만 시종일관 농담을 하게 되면 친한 사이라도 신뢰를 잃게 되고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쉽다.
 
둘째, 아주 좋은 말로 격려하고 칭찬하자. 좋은 격려 한마디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열매를 맺는다. 리빙스턴이 어렸을 때 선교사가 교회에 와서 찬양과 간증으로 집회를 했다. 리빙스턴이 동경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볼 때 담임 목사님이 "너는 이 다음에 더 훌륭한 선교사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주었다. 그 격려를 리빙스턴은 잊지 않고 기억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어릴 때 목사님의 미소와 격려가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말 한마디의 위력이 얼마나 큰가.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남을 섬겨야 하는데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언어로의 섬김이다. 물질로 도와주고도 말을 함부로 하면 절대로 감사하지 않는다. 어려운 이 때에 섬김의 언어로 위로를 주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러면 이 사회가 한층 밝아질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한마디 말을 위하여 먼저 침묵하는 지혜를 깨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품위 있는 말을 통해 남을 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홍순안 목사/참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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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상 받도록 달음질 하라
본문: 고전 9:23~27
찬송가: 483장


어린 시절 필자가 처음 교회에 나갔던 것은 여름성경학교에서 나눠주는 간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런 것들이 신앙생활의 이유라면 문제가 된다. 신앙이 자라면서부터 교회에 나가는 목적이 분명해져야 한다. 천국을 소망하고, 그 길이신 예수님을 더 알고 싶어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상 그것을 소원해야 한다.
 
신앙은 경주와도 같다. 달음질 하려거든 상 얻도록 해야 한다. 성경은 절제를 그 비결로 꼽는다. 절제란 목표를 분명히 정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서로 배치되는 것을 동시에 얻으려고 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잘 보고 싶지만, 놀고 싶기도 하다. 날씬해지고 싶지만, 맛있는 것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다른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 두 가지 욕구 사이를 오가며 요요현상을 겪는다. 몸만 고달프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하다못해 세상 불신자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할 땐 절제한다. 그들이 얻는 것이라고 해봐야 다 썩어질 영광뿐인데도, 딱 하나의 목표에 초점을 맞춘다. 하물며 썩지 않을 상을 깨닫고 그 영광을 구하는 성도의 태도는 어떠해야할까? 사도 바울은 '복음이 가져올 영광'에 참여하고자,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한다고 했다. 상을 얻기 위하여 목표를 분명히 하자.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초코파이가 아닐 것이다.
 
절제란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권투 선수가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해 대는 것이 무슨 유익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주먹질 한다는 면에서 보면 유사해 보이지만 이 쓸데없는 일은 무익하다 못해 해롭다. 이기려면 쓸데없는 주먹을 절제해야만 한다. 신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많은 일들이 다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심판 날에 많은 사람들이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이것도, 저것도 했습니다'라고 말 할 테지만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판결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이다.
 
바울은 주의 교회를 핍박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복음을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전에 좋게 여기던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버렸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사람 앞에 보이려고 구제를 행하고,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고 사거리 어귀에서 기도했다. 그들은 복음 앞에서도 그 썩어질 명예욕을 버릴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은 자들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상 받기 원하는 사람은 썩어질 상을 움켜쥐려 해선 안 된다. 분토와 같은 것을 버려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받을 수 있다.
 
오늘의 기도
밭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한 사람처럼 이전에 좋던 것에 더 이상 욕심내지 않는 마음을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전경수 목사/온양농아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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