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 - 52고래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 - 52고래

[ 현장칼럼 ]

하상원 원장
2018년 10월 29일(월) 16:17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 - 52고래



올해 들어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는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 장관(Minister of Loneliness)'을 임명하여 주목을 받았다. 75세 이상 절반이 혼자서 생활하고, 900만 명이 고독으로 고통 호소하자 국가 차원의 관리를 선언한 것이다.

사회적 관계의 단절로 인한 고통이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이나 더 해롭고, 사회적 고립이 심혈관 건강을 해치고 사망률을 높이며 노화, 우울증과 치매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이에 따른 건강 등 사회적 비용도 치솟고 있기 때문에, 외로움을 실업, 폭력, 빈곤 같은 사회 문제로 분류하게 된 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외롭지 않은가? 지난 4월 한국리서치에서 만19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 고립과 이로움 인식보고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가 지난 한 달간 '거의 항상' 외로움을 느꼈다고 답했으며, 19%는 '자주' 느낀다고 대답했다. 나머지 51%도 '가끔'이지만 외로움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4명 중에 1명은 상시적인 외로움에 노출되어 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나이가 들수록 더 외로움을 크게 느끼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또한 한국 임상심리학회가 심리학자 317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고독지수' 설문조사에서도 현재 한국사회의 심리적 상태를 100점 가운데 '고독지수 78점'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렇게 한국 사회의 고독감이 크게 증가한 이유로는 개인주의의 심화, 사회계층 간 대립 심화, 장기화된 경제불황, 사회적 가치관의 혼란, 온라인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변화의 순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점은 물질 지향적 가치와 첨단 과학기술의 부산물인 개인주의이다. 개인주의는 가족과 사회 공동체의 유대감과 소속감에서 안정을 찾아야 하는 우리에게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질병을 남겨준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는 외로운 사회라고 명명할 수 있다. 이제 외로움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만이 아니라 사회문제로 보고 적극적으로 대책을 세워나가야 할 국가적 과제가 된 것이다. 14년간 이어온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인간 소외의 가장 극단적인 현상으로 나타난 고독사의 문제, 우울증과 정신질환의 증가. 각종 폭력의 문제 등이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외로움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라는 별명을 붙은 고래가 있다. 52hz의 주파수로 노래하는 '52 고래'가 그 주인공이다. 보통 고래는 12~25hz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이 고래는 51.75hz로 노래를 하기 때문에 다른 고래와 함께 하지 못하고 평생 혼자 살아간다고 한다. 이 고래를 본 사람이 아직은 아무도 없지만 52hz의 고래 소리는 여전히 들린다고 한다.

'52 고래'의 이야기는 남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다. 외로움이 사회 문제화 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마틴 부버는 '나와 너'라는 책에서 우리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상호 의존적 존재임을 역설하고 있다. '나와 너', '나와 우리'의 인격적 관계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보살펴 주는 돌봄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할 큰 과제를 갖게 된 것이다.

오늘도 필자가 근무하는 생명의전화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온다.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자원봉사 상담원들이 24시간 전화선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외로운 사람들의 호소에 귀 기울여 들으며, 비판하지 않고, 그의 마음을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는 가운데서, '나와 너'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 그 관계를 통해서 외로운 사람은 살아갈 힘을 얻고, 상담원은 살아갈 의미를 찾는다. 한국교회도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들에게 손을 내밀어 친구가 되어 줄 때, 우리 사회에서 존경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상훈 원장/한국생명의전화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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