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 인식

일본의 역사 인식

[ 특집 ] 한일 갈등과 기독교인-역사학도가 보는 일본의 역사와 역사학

김인주 목사
2019년 09월 20일(금) 00:00
일본의 나라꽃이 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벚꽃이라 답한다. 일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일본 왕실은 국화를 상징으로 활용한다. 엄밀하게 따지면, 일본의 국화는 정해진 게 없는 셈이다. 이렇게 본다면, 일본은 단순하지 않고 다양하다.

우리는 일본을 왜소한 섬나라로 생각한다. 하지만 큰 나라이다. 길게 구성된 국토는 여러 가지 기후를 동시에 연출한다. 단일 민족이 다수를 차지하여 주도권을 쥔 나라를 세어 보면, 중국과 인도 다음으로 세계 3위의 국가이다. 더 크고 수가 많은 다른 나라들이 떠오르지만, 모두 다민족 국가들이다.

일본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이다. 그 이전에는 천황이 존재하나 존재감이 없는 시대였다. 칠백 년 가까운 세월을 쇼군이 지배하였다. 가마쿠라, 무로마치 막부에 이어 세 번째로 에도 막부가 주도하는 시대가 열렸다. 보통 우리가 임진왜란으로 부르는 조선과의 7년 전쟁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혼란의 시대를 딛고 최후의 승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패자로 군림하였다. 이 때 수도가 교토에서 에도로 바뀌었다. 지금의 도쿄가 일본의 중심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 체제를 뒤엎고, 천황을 중심으로 근대국가 수립의 기틀을 마련한 사건이 메이지 유신이었다. 미국 혹은 유럽 열강의 위력을 서서히 감지하면서, 선진 문물을 수용하는 부국강병의 길을 모색한 것이다. 이 변화를 주도하고 나라의 틀을 교체하는 데 앞장 선 지역이 조슈번 혹은 야마구치현이었다. 조선과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곳으로, 자연스레 침략의 꿈이 자라났다. 일본열도를 벗어나 대륙으로 진출하는 것이 강국으로 일어서는 유일한 길이라 판단한 것이다. 이들이 일본 현대사에서 애국적인 선구자가 되었는데, 우리 민족에게는 비극의 출발점으로 작동했다.

도쿠가와 가문의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영민한 지도자로 기대를 모았지만,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하여 희생을 줄이고자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하였다. 나라를 위한 희생과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여, 50년 가까이 더 생존하며 유유자적의 삶을 보냈다.

현대의 일본 문화와 일본인의 심성은 그리스도교 전래와 선교 역사와도 밀접한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 천주교는 오랜 기간 일본 선교를 위해 사역자들을 파송하였다. 적지 않은 신자들을 얻었는데, 조일전쟁에 동원된 고니시 장군과 그 휘하의 병사들이 대부분 천주교 신자였다. 이들을 보살피기 위해서 포르투갈의 세스페데스 신부가 종군하였다.

이러한 성공적인 선교의 역사는 가혹한 박해와 큰 희생으로 막을 내렸다. 에도 시대에 이들이 겪은 참혹한 일들은 엔도 슈샤쿠의 소설 '침묵'과 이를 영상으로 옮긴 마틴 스콜시지 감독의 '사일런스'에 잘 그려져 있다. 목숨을 버리고 순교하거나, 배교를 통해 삶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천주교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겉으로는 매우 상냥하고 예의 바른 언행을 보이지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은, 어려운 시대 시련을 견뎌내는 생존의 방법이었다. 이제는 신앙과 상관 없이 일본 문화의 전반적인 기층을 이루고 있다.

2차 대전에서 패전하자, 전승국 미국이 일본의 명운을 좌우하게 되었다. 미국식의 민주주의 제도를 이식하려 하였지만, 무늬만 민주주의일 뿐 정치는 봉건시대 귀족정과 세습의 양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전범을 징벌하는 일은 최소화했고, 구체제의 유산을 그대로 유지하여 현대 일본을 세웠다. 따라서,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아시아 동부에서 벌였던 범죄들에 대한 자각이 너무 미흡하다. 오히려, 핵폭탄 투하에 따른 희생과 피해를 내세우며, 도덕적인 치부를 가리려 한다.

여기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혼동되는 듯하다. 올해 8월에도 일본의 지도부는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국민들에게 말했다.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라는 선언이었을까? 오히려, 다시는 패전을 겪는 수모는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약속한다는 뜻이라고 보였다.

전범국가로서 위축되었던 위상을 벗어나, 새천년에는 국제 사회에서 당당하게 제 몫을 찾겠다는 심정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적절한 절차가 필요하다. 1980년대 중반 드라마 '홀로코스트' 4부작은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독일에 살던 유대인 가족이 무너지거나 생존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전쟁 이후에 태어난 독일의 신세대는 질문하였다. 이게 정말로 우리 부모 세대의 삶이었느냐고.

일본 안에서 역사에 대한 이해는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다. 국가 지도자들, 양심적인 지식인들, 평범한 시민들이 각기 다른 틀과 가치관에서 기억하고 기록하며 정리한다. 우리 사회에 비해서 그 세력들 사이의 간극은 훨씬 더 크다.

독일에서 언어를 배우던 교실에, 일본인 학생이 두 명 있었다. 둘 다 인문학에 능했고, 독일어는 모두 서투르지만 한자어를 통해서 보충하면서 의사소통은 꽤 할 수 있었다. 나의 질문에 한결같이 분명하게 답할 수 있는 교양을 갖춘 전문가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묻지도 않았는데 말하였다. "내가 우리 역사는 배우지 않아서 잘 모른다. 미안하다."

다자이 오사무는 중편소설 '사양'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을 명쾌하게 지적하였다. '인간은 간직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컴퓨터를 리셋하면, 초기 상태로 돌아간다. 작업할 수 있는 최적 상태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깨어나면, 어제 마지막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기억력이 쇠퇴하여 그 이전으로 간다면 기억상실의 징후이고, 아예 처음에 가까운 상태에서 출발하면 치매라 한다.

일본은 1940년 올림픽을 유치하고서도, 전쟁으로 무산되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통해서 패전을 딛고서 단기간에 세계무대에 다시 등장했다. 2020년 두 번째 올림픽을 준비하고 기다린다. 원자력발전 사고로 생긴 참상과 피해를 숨기며, 정상국가라고 억지 주장하는 형국이다. 평화의 제전에서도 침략과 지배를 꿈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불안하기 그지없다.

김인주 목사 / 봉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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