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변함없는 '상록수 신앙' 김상기 장로의 삶

늘 변함없는 '상록수 신앙' 김상기 장로의 삶

[ 기획 ]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초지일관 신실한 신앙 주변에 모범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22년 01월 18일(화) 16:12
덕천교회 김상기 장로(사진 아랫줄 가운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맡겨진 달란트에 집중하는 충성된 종으로 활동하고 있다.
늘 한결같은 사람이 있다. 그의 지인들은 '상록수'같다고 표현한다. 사철 내내 잎이 푸른 것처럼 성실함에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전서노회 노회장을 지낸 김상기 장로(덕천교회)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김 장로는 전북 고창에 위치한 우리장례식장과 메리츠화재고창대리점의 대표로 있다.

작은 체격 어디에서 그런 강단이 나오는지 뚝심이 빛난다. 특히 사람 관계에 있어 손익을 따지지 않고 움직여 때때로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자기 희생은 섬김'이라는 생각으로 기꺼이 감수한다.

김 장로는 농가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들 중에서는 맏이라 진중함과 책임감이 어려서부터 강하게 자리잡았다. 그 책임감은 훗날 성장과정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 장로는 사업가이면서도 도심에서 생활권을 유지하지 않고 전북 고창의 고향 시골교회를 지키고 있다. 어려운 여건의 교회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가계 신앙의 뿌리는 친조모다. 함께 살던 친조모가 교회를 다닌 후 어머니와 누나들이 서서히 신앙에 입문했다.

김 장로는 초등학교 입학 전 누나들 손을 잡고 현재 시무장로로 있는 덕천교회에 첫 걸음을 내디뎠다. 교회학교 시절 교회가 좋아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교회학교 2학년 때 교회에서 남폿불을 키고 성경을 읽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제가 교회 마루바닥과 유리창을 잘 닦아서 칭찬을 듣곤 했어요. 겨울에는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면서 닦았던 기억이 나네요."

어렸을 적부터 김 장로는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다. 광주상고 학업을 마치고 군 입대를 했으며, 복무 기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가족을 지킨다는 생각에 제대 후 고향에 정착했다.

어머니와 농사를 짓다 지역 택시회사의 경리로 입사했다. 그 택시회사가 어려움을 겪으며 다른 이에게 인수됐지만 성실성을 인정받아 고용승계 후 전무까지 승진했다.

새로운 사장이 3개의 회사를 동시운영하면서 김 장로에게 총괄전무를 맡겼다. 당시 택시업 종사자들 중 거친 성격의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때 인간관계 훈련을 혹독하게 했다.

김 장로는 "상대가 매너 없이 거칠게 나와도 바로 받아치거나 똑같이 막말하지 않았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을 곱씹으며 차분하고 부드럽게 대했다"고 회상했다.

김 장로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거칠고 반항적인 직원들의 마음을 열게 했고, 그 과정에서 김 장로는 낮아짐과 베풂에 대한 일체의 기쁨을 배웠다.

김상기 장로는 전서노회 노회장을 역임했으며,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여러 부서에서 두루 쓰임받고 있다.
택시회사 전무로 일하면서 수많은 기사들의 사고처리를 도맡아하며 보험을 잘 알게 된 연유로 1982년부터 손해보험회사인 동양화재 보험설계사 겸업을 시작했다.

당시만해도 보험 판매업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고객은 끊이없이 늘었다. 그의 한결같은 성실성을 본 사람들이 보험설계를 알아서 맡겼다.

"평소 사람과 대화하고 사귀는 걸 좋아하다보니 뭘 좀 도와달라고 전화가 많이 와요. 별 일 아니어도 성심성의껏 도왔고, 그러다보면 고마워하고 본인들이 필요로 하는 보험이 생기면 연락을 주시더라구요."

이러한 성실은 신앙과 연관되어 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구절을 마음판에 새기고 사니, 매사가 긍정적이고 화낼 일이 없다.

그 결과 1998년 소속 보험회사의 전국 설계사 부문 1위를 수상했다. 승용차를 부상으로 받아 담임목회자의 심방과 전도를 위해 선물했다. 이후에도 수시로 수상을 하며 업계에서 독보적인 선두를 달렸다.

사회활동에 모범을 보이면서 교회 봉사와 교계연합회 활동에도 열심을 내며 올바른 복음을 수호하고 지역사회 평화의 중재자 역할을 감당했다.

2016년에는 후종인대골화증 진단을 받으며 신경이 마비되는 고통을 겪었지만, 수술받고 여호와라파의 기적을 체험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종말론적 신앙을 갖고 건강할 때 더 많이 섬기면서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

사업가인 김상기 장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신앙인이다. 다른 사람을 섬기고 베풀고자 자신에게는 혹독하리만치 검소하다. 사진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고액후원 약정식에 참석한 김상기 장로.
김 장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신앙인이기도 하다.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으로 살고자 나누고 섬기는데 인색하지 않다.

그는 검소가 몸에 배있다. 자신을 위한 투자가 없다. 안정적인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이면서도 의류는 매번 시장에서 저가로 구입하고 낡아 떨어질때까지 입는다.

먹는 것도 소박하고 차량에도 욕심이 없어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한다.

여기에는 섬김과 나눔에 있어 그의 철학이 담겨있다. 소득의 절반 가량을 선교와 구제에 사용한다는 원칙이 있다.

김 장로는 "내 것 먼저 챙기면 결국 아무도 돕지 못한다. 남는 것 갖고 도와주려고 하면 더 움켜쥐게 되는게 사람 심리다. 이런 것들을 이겨내고자 기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동옹호기관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지속적으로 후원해왔다. 어린이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들의 미래를 열어가는 일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후원금 1억원을 약정하는 '그린 노블 클럽' 멤버가 됐다. 현재 70% 이상 달성했다.

또한 라이온스클럽 활동을 하면서 봉사에 앞장서고 있으며,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게도 남모르게 장학금을 지원해왔다.

무엇보다 '땅 끝까지 이르는 증인'의 명령에 순종해서 해외선교에 열심이다. 2003년에는 케냐에 교회를 세웠으며, 특별히 북한선교를 위해 집중 기도하고 있다.

한편 김 장로의 가족 중에는 목회자가 많다. 친동생 김준기 목사는 함해노회 사랑의교회를 시무하고, 매제 허태호 목사는 광주동노회 새희망교회를 시무하고 있으며, 그 아들도 목사다. 또한 조카와 큰매형 아들도 목사다.

집안에 목회자가 많다보니 김 장로는 평소 목사와 장로 간의 동역 이야기를 자주 나눌 수 있어 큰 복으로 생각한다. 목사와 장로 간 갈등이 한국교회에 간혹 일어나는데, 윤할유 역할을 본인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 장로는 "여호수아의 신실한 동역자 갈렙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신앙관을 밝혔다.

한편 김상기 장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일꾼으로 두루 쓰임받고 있다. 동반성장 전문위원, 재정부 회계, 전국노회장협의회 감사, 선거관리위원, 고시위원,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가족으로는 부인 김선주 권사와 1남 3녀가 있다.

신동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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