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으로 작별...아빠와 함께 우리 가족 토닥토닥

'이웃사랑'으로 작별...아빠와 함께 우리 가족 토닥토닥

[ 송년특집 ] 뇌사장기기증유가족 정순이 씨 가족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3년 12월 28일(목) 21:26
5명의 생명을 살리고 간 고 안경상 씨.(사진 맨 오른쪽)
사진 왼쪽부터 딸 가은, 엄마 정순이 씨, 아들 현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우리는 여느 때 처럼 함께 평범하게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했다.

그렇게 하루가 잘 마무리되는 듯했는데 …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여보 119좀 불러줘. 나 몸이 이상해. 좀 누워야겠어."

남편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정순이 씨(기쁨의교회)는 "모든 날 모든 순간 남편이 생각난다"고 했다.

정 씨는 뇌사 장기기증자 유가족이다. 남편 안경상 씨는 3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이송됐지만, 안타깝게도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예고없이 닥친 이별 앞에서 정 씨는 "그 순간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남편을 두 차례나 '장기기증'이 가능한 병원으로 옮겼다.

남편이 쓰러지기 며칠 전, 정 씨의 표현대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어" 딸 가은 씨와 사랑의장기운동본부 사이트에서 직접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그 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는 주변의 반대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딸과 제가 실행에 옮겼을 뿐, 우리 가족은 언제나 함께였기에 남편도 동의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남편의 폐와 간, 신장은 5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그렇게 남편은 마지막 가는 길은 '이웃사랑'으로 작별했다.

"남편의 장기를 기증하면서 한가지만 생각했어요. 우리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가족을 잃지 않고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요. 그거면 된거라고요."

남편이 쓰러지고 함께 했던 7일. 정 씨는 그 시간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서로 대화를 주고받지는 못했지만 남편은 분명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라는 정 씨는 "남편이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는 못했지만 예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천국가게 하신 것도 은혜"라면서 "단 한 순간도 이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정 씨는 "시간이 지나면 슬픔은 무뎌질지 몰라도 그리움은 더 커져만 간다"면서 "남겨진 가족들에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달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사랑하는 가족을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고통은 쉽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다. 가족이 켜켜이 쌓아올린 기억이라는 시간 속에서 "한 순간 사라진 남편과 아빠"의 부재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다. "여전히 남편이 곁에 없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는 정 씨는 "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때마다 전화를 주시고 유가족을 위한 위로 행사를 통해 남편을 계속 기억하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면서 "교회도 어떤 이유로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들을 위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아빠가 떠난 후 ROTC로 지원한 딸 가은 씨는 올해 임관을 앞두고 있다. 가은 씨는 평소 아빠가 자주 했던 "너는 내 자랑이야"라는 말을 기억하며 고된 훈련을 묵묵히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다. 초등학생이던 아들 현균 군은 중학교 2학년. 아빠의 죽음을 회피했던 현균 군은 올해 부쩍 아빠 이야기를 자주했다고.

모든 날, 모든 순간이 그리움으로 가득했던 2023년. 정순이 씨 가족은 "애썼다"면서 서로를 토닥인다. "우리 언젠가 아빠 만나면 여전히 '서로의 자랑'임을 확인하자"면서.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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