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미래 아닌, 이미 공존하고 있는 기술

먼 미래 아닌, 이미 공존하고 있는 기술

[ 똑똑!신세대목회 ] 인공지능시대선교와목회(2)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4년 02월 13일(화) 13:03
어렸을 때 보았던 충격적인 영화 중에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이라는 영화가 있다. 우주인이 불시착한 행성에는 원숭이가 사람처럼 살고 있고, 반대로 인간은 동물처럼 살아가는 행성이었는데, 사실 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Pierre Boule)의 SF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었다. 저자는 2차 대전에 참전하여 싸우다가 일본군에게 2년간 포로로 잡혀 있으면서 백인종과 황인종의 관계 역전을 경험하게 됐는데, 이때 받은 충격이 훗날 소설의 심리적 기반이 됐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을 통해 이런 관계 역전의 충격적 경험을 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2016년 3월 9일 구글에서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로부터 수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지금은 인공지능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도대체 인공지능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가?

인공지능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놀랍게도 위대한 13세기 회교권 선교사 라몬 룰(Ramon Llull, 1232-1315)을 만나게 된다. 그는 아랍 점성술 도구인 자이르자(Zairja)를 이용해 '아르스 마그나(Ars Magna)'라는 장치를 만들었는데, 기계적인 장치를 이용해서 아이디어를 생성해내는 최초의 장치였다. 그는 기계적인 장치를 통해 이성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간단한 명제들을 기계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조합하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장치는 훗날 18세기 조나단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도 영향을 주게 되는데, 토머스 홉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파스칼, 라이프니츠와 같은 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본격적인 연구는 1956년 미국 다트머스대에서 인공지능 학회가 열리면서였다. 이 학회에 참가한 존 매카시, 마빈 민스키, 알렌 뉴웰, 아더 새뮤얼, 허버트 사이먼 등은 훗날 인공지능 연구의 선구자들이 되는데, 그 중에서 마빈 민스키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의 개념을 창시해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그는 뇌 신경망을 모방해 논리회로를 만들면 컴퓨터도 지능을 가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존 매카시와 함께 인공지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50년대와 60년대를 인공지능의 첫 황금기라 부르는데, 인공 신경망 퍼셉트론(perceptron),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언어 리스프(lisp),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의 개념,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프로그램 엘리자(ELIZA)까지 모두 이 시기에 발명됐다. 하지만 넘어야 할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결국 1974년 미국과 영국은 인공지능 관련 예산을 크게 줄이면서 1980년대 초까지 인공지능 연구는 큰 침체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다 1980년대에 다시 인공지능 연구가 재개됐는데, 이 경쟁에 일본이 뛰어들면서 인간과 대화가 가능하면서 번역뿐 아니라 사진을 해석하고 추론까지하는 컴퓨터를 만드는데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으면서, 덩달아 미국과 영국도 다시 이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난항을 겪으면서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두 번째 침체기에 빠지는데, 인공지능이 다시 부활하게 된 것은 1990년대 말 컴퓨팅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다. 그러다 2010년대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기술과 답러닝(deep learning) 인공신경망 기술이 개발되고, 거기에 빅데이터까지 결합 되면서 인공지능은 더더욱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2017년 구글의 바스와니(Vaswani)가 언어처리에 획기적인 처리능력을 가진 트랜스포머(Transformer) 알고리즘을 발표하면서 이를 응용한 ChatGPT가 출시되는데, 그 이후로 수많은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사람의 말을 이해할 뿐 아니라 질문의 의도와 맥락까지 이해하는데까지 이르게 됐다.

다시 혹성탈출 이야기를 해 보자. 이 영화의 가장 큰 충격적인 장면은 결말이다. 주인공은 바닷가에서 상반신만 나와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게 되는데 알보고니 다른 행성에 불시착한 것이 아니라 지구로 귀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원숭이가 지배하는 혹성이 알고보니 지구였던 것이다. 이런 충격적인 인식이 오늘날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먼 미래의 일, 혹은 은퇴 이후의 이야기로 치부하며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먼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이미 우리와 공존하고 있다. 먼 미래나 SF 영화 속이 아니라, 이미 자동차에 타고 있었고, 핸드폰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CCTV 안에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우리만 사는 줄 알았던 이 행성에 어느때 부턴가 인공지능도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이다.



김윤태 목사

대전신성교회·대전신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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