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

[ 목양칼럼 ]

홍순영 목사
2024년 03월 07일(목) 15:11
필자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친이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네 남매를 키우느라 자신을 돌볼 겨를 없이 사셨다. 자식들이 다 장성하여 자리를 잡은 뒤에도, 몸이 약해지셨지만 총명함은 그대로여서 도리어 우리 형제들이 깜짝 놀라곤 했었다.

그러다 2019년 10월부터 신장 투석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투석 시작하는 것을 보고 막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갑자기 혈압이 떨어져 심폐소생술을 한다는 전화를 받고 다시 뛰어 들어가기도 했다.

당시 필자는 포항제일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전화가 오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나날이 지나갔다. 늦은 밤, 위급한 상황으로 인해 어머니가 입원해 계시던 부산까지 급히 달려가기를 몇 차례. 그 사이에 어머니는 그 맑던 정신도 점차 흐려지셨고 말문도 닫으셨다.

2020년 6월, 대전의 오정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이 결정되었다. 7월 첫 주에 부임하기로 되었기에, 그간 마음을 다해 섬겼던 포항제일교회에서 6월 마지막 주일에 송별회를 하게 되었다. 많은 분들의 축복과 기도가 참 감사했다. 그리고 그날 밤 부산에 가서 모친 얼굴을 뵈었다.

이미 눈도 못 뜨고 아무 말씀도 못하신 채 그냥 누워계신 어머니의 귀에 대고 말씀드렸다. "엄마, 저 이제 담임목사로 가요.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이틀 뒤인 화요일 새벽, 어머니는 천국에 가셨다.

포항제일교회는 사임했으니 알리지 않았고, 오정교회에도 아직 부임 전이니 서기장로님께만 연락을 드리고 교회에는 알리지 말 것을 당부드렸다. 그래도 장로님들이 다 함께 찾아와서 위로해 주시니 참 감사했다.

빈소에 둘 영정사진을 택해야 했다. 몇 년 전에 모친을 낙동강 변에 모시고 가서 흐드러지게 핀 꽃들 앞에서 찍어 드렸던 사진을 액자에 담았다. 수줍게 웃고 있는 모친의 얼굴과 화사한 꽃들의 색깔이 무척 예뻤던 사진이 작은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빈소에 머무는 사흘의 시간 동안 내 마음 속에 선명하게 들렸던 소리가 있었다. 어머니의 음성이었다.

"순영아, 더 이상 아픈 어미 돌보느라 왔다 갔다 신경 쓰지 말고 목회 열심히 해. 오정교회 교인들 더 많이 사랑해 줘"

목요일 발인을 마치고 금요일 하루 몸을 추스른 후 토요일 대전에 가서 주일 부임 설교를 했다. 마음으로 들었던 어머니의 음성을 그대로 나누었다.

그 어머니의 마음을 담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겠다고. 그리고 우리도 서로 그렇게 사랑하자고.

어머니는 평소의 분명한 성품대로 아들을 떠나시면서까지 아들의 사랑이 나뉘지 않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응원하고 기도하고 계실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지곤 한다.

이산하 시인의 '나무'라는 시가 있다. '나를 찍어라/ 그럼 난/ 네 도끼 날에/ 향기를 묻혀주마.'

이 짧은 시에서 십자가의 주님을 만난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알게 된다. 그 사랑으로 우리를 응원하고 계신 주님을 떠올리게 된다. 사순절을 보내며, 사랑하는 일에는 실패하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홍순영 목사 / 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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