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鍾)

종(鍾)

[ 목양칼럼 ]

홍순영 목사
2024년 03월 20일(수) 00:43
필자는 당회실에 들어갈 때마다 기가 죽는다.

당회실에는 역대 당회장 사진이 걸려 있는데, 그 첫 번째 액자를 차지하고 있는 분이 이자익 목사님이기 때문이다.

이자익 목사님이 누구인가. 마부가 지주보다 먼저 장로로 선출되고, 지주 조덕삼은 자신의 마부 출신 이자익을 신학교로 보냈을 뿐 아니라 그 후에는 담임목사로 모셨던 김제금산교회 이야기의 주인공 아닌가.

바로 그 이자익 목사님이 오정교회의 제1대 당회장이다.

그러니 인격도, 영성도, 실력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필자가 당회실에 들어갈 때마다 기가 죽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2년 전, 교회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오정교회에는 오래된 종이 하나 보관되어 있다. 그 종은 이자익 목사님이 헌납한 종으로 알려져 있다.

70주년을 맞이하며 종탑을 세우기로 했다. 높이 솟아 탑만 보이는 종탑이 아니라, 종 자체가 잘 보이는 높이로 종탑을 세웠다. 한 장로님께서 직접 기도하며 제작하여 헌물해 주셔서 더 감사했다.

종탑 제막식날이 되었다. 교회의 푸른 잔디 마당에 교인들이 섰다. 그리고 종에 매달린 줄을 힘껏 당겼다.

"두둥~" 웅장하게 퍼져나가는 에밀레종 소리를 기대했다. 그런데 "쨍그랑, 땡그랑"하는 그냥 평범한 종소리였다.

그때 필자의 옆에 서있던 성도가 촉촉한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70년 전 울렸던 그 종소리를 지금 우리가 듣고 있다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요."

평범한 종소리였지만 필자의 마음을 울렸던 감동을 그분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한국전쟁이 채 끝나지 않았던 1952년, 해체된 미군 막사에서 주워온 목재와 쇠붙이들로 예배당을 지었던 그 손길들. 예배 시간이 되어 힘껏 종을 쳤을 그 손도 얼마나 거칠고 투박했을까. 그 일상의 땀이 담겨있는 종소리는 지극히 평범한 소리여야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종소리가 백성들의 영혼을 깨웠고 시대의 등불이 되었다.

그리고 그 종소리에 담긴 믿음과 헌신이 오늘 우리 가슴에 살아있다. 손살같이 지나가는 세월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가 알아주고 기억해주기를 원하며 쌓아 올린 업적과 명성들의 수명이 얼마나 짧은지, 우리는 잘 안다. 웅장한 교회 건물들 역시 세월이 지나면 초라해진다.

그러나 무명의 그리스도인이, 피곤한 일상 속에서 굵고 거친 손마디로 친 그 종소리, 그 생활의 종소리야말로 조국 교회에 생명과 감동을 이어주는 원천이었다.

교회 마당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고백했다. "저도 좋은 종치기가 되겠습니다."



홍순영 목사 / 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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