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화해의 큰 틀에서 영호남 갈등 다뤄야"

"민족 화해의 큰 틀에서 영호남 갈등 다뤄야"

[ 기획 ] <대화(對話)가 대화(大和)를 만든다(2)> 영남 신영균 목사 vs 호남 김동운 목사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6년 03월 14일(월) 18:25

<한국기독공보사 소통 프로젝트>
대화(對話)가 대화(大和)를 만든다
2편 영남과 호남의 만남

본보의 소통 프로젝트 '대화(對話)가 대화(大和)를 만든다'의 두번째 순서는 영남과 호남의 만남이다. 우리나라의 최대 갈등 중 하나는 지역갈등인데 그중 가장 큰 갈등의 벽은 영남과 호남 사이에 놓여 있다. 순천에서 목회하는 김동운 목사(순천성광교회)와 경주에서 목회하는 신영균 목사(경주제삼교회)는 지난 11일 만남을 통해 호남과 영남의 갈등의 원인과 현상,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 대한 교회의 반성과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두 목사는 나이는 세살차가 나지만 장신대 76기 동기로 서로에 대한 존경심 속에서 신앙 안에서 지역주의가 설 곳이 없음을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사회: 서로가 서로를 소개해달라.

김동운 목사(이하 김 목사): 신 목사님과 저는 장신대 76기 동기이다. 당시에는 학생들이 많아 학우 간 두루 친해지기가 어려웠다. 신 목사님과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총회를 출입하면서 신 목사님을 자주 뵙게 됐다. 신 목사님은 목회도 잘하시고, 신학 후 행정학 학위도 받으셔서 교회 뿐 아니라 사회에도 영향을 끼치시는 분이다. 호남에서도 저보다 더 많이 강사로 부름을 받으시는 것 같다. 총회, 교계, 사회에도 크게 활동하는 신 목사님이 동기로서 자랑스럽다. 깊은 정을 갖고 있는 좋은 사람이다.

신영균 목사(이하 신 목사): 김 목사님은 학교 다닐 때부터 목회철학이 분명하셨다. 영성이나 인격적인 면에서 상당히 훌륭하시다. 예컨데 총회 사역을 위해 올라오셔도 교회를 비우지 않으시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농어촌의 후배들도 잘 돌보신다. 순천에 가보라. 김 목사님 팬들이 많다. 주변에 사람이 많고 집회도 많이 나가신다. 영남 지역에도 많이 오셨고, 영남 친구들도 많으시다. 인간애가 넘치는 분이시다. 호남 친구들 만나보면 김 목사님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심이 깊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한다.

사회: 두분의 학창 시절은 어떠했는지요? 동기간 우정에서 영남과 호남이라는 점이 장애물이 된 적이 있었나?

신 목사: 당시에는 신학생들이 장신대에서 두 학기 동안 함께 공부해야 했다. 그 기간 동안 체육대회도 하고 MT도 하고, 같이 기숙사 생활도 하고 재미있었다. 영남 호남 구별 없이 모든 지역의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경험이 총회의 화합과 일치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신학생 간 교류의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 목사: 그때 전국의 동기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생각과 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영남과 호남, 모든 지역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는데 솔직히 지역 사람들 간 간극이 있었다던지 소통이 안된다던지 그런 일은 없었다.

신 목사: 학생들 임원 뽑을 때도 자연스럽게 지역을 안배했던 기억이 난다. 호남 친구들 따라서 손양원 목사님 순교기념관, 보성 녹차밭 등을 구경 간 적도 있다. 최근에도 영남 지역의 목회자 친구들이 호남에 놀러간다. 그러면 저는 김동운 목사님에게 전화하고 가라고 코치한다.

김 목사: 저도 영남지역에서 자주 동기들 만난다. 그런데 그 정이 가면 갈수록 깊어진다. 이질감? 그런 것 없다.

사회: 영남과 호남의 기독교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가?

김 목사: 영남은 산악, 호남은 평야가 많다. 영남은 척박한 환경을 이기면서 학문과 군사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호남은 좋은 자연환경에서 인간의 삶을 높이는 문화 예술 쪽을 발전시켰다. 교회적으로 봤을 때 영남의 장점은 한국교회에 출중한 지도자와 훌륭한 신학자를 많이 배출했다. 그리고 수많은 기독교학교, 병원이 설립됐다. 반면, 호남 지역은 수많은 영성가와 순교자를 배출했다. 한국교회 순교자의 80%가 호남 출신이라는 기록도 있다. 호남은 높은 복음화율과 사회봉사 실천으로 교회의 성장을 가져왔다.

신 목사: '동불서기'라는 말이 있다. 동쪽 영남은 불교가 강하고, 서쪽 호남은 기독교가 강하다는 뜻이다. 호남 쪽에서 순교자가 많이 계셨고, 훌륭한 영적 지도자들이 많아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본다. 영호남을 신앙적 관점에서 보면, 교회가 사회를 리드하는 쪽은 호남쪽인 것 같다. 여수, 순천만 해도 시의원이 22명쯤 되는데 기독교인이 20명 정도다. 손양원순교기념관 건립을 할 때도 전혀 저항이나 이질감 없이 할 수 있었다. 영남은 교회가 사회를 리드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 오히려 불교가 사회 깊숙히 뿌리 박고 있다. 근래에 와서 포항이나 창원, 울산, 대구 월배, 칠곡지역에서 교회가 왕성해짐으로 리더십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사회: 호남과 영남 갈등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신 목사: 영호남의 지역갈등은 사실 정치적 산물이었다. 역사적인 기록을 보면 고려 왕건이 후대의 왕들에게 통치의 기조로 삼으라고 내렸다는 '훈요십조'의 8조인 '후백제인 불등용'이 최초로 나타났다. 삼국시대 이후 역사적으로 퇴적된 영호남간의 사회심리적인 적대감과 서로가 이질적이라는 신념이 나타났고, 일본 식민통치자들은 호남과 다른 지역과의 대립관계의 형성을 통하여 호남인들의 저항정신을 억누르려는 의도에서 호남에 대한 편견을 조장했다. 호남은 일제의 식민정책에 의해 식량공급기지로 전락하면서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었다. 근대사에서는 군사 쿠테타나, 5.18민주항쟁을 기점으로 영호남 갈등을 부추켰고, 선거 때마다 영호남 갈등현상으로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정치인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를 통치할 때 즐겨 쓴 수법은 분할 통치이다. 피지배 민족을 갈라 적당히 이간질시키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편리하게 성취하는 방법이다.

김 목사: 근 현대사만 보더라도 일제강점기, 해방 후 어려웠던 시기, 한국 전쟁을 거치기까지 영호남의 문제는 심각하지 않았다.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정치적 목적으로 영호남 갈등을 부추기기 전까지 영남과 호남의 갈등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3공화국 이후 대통령 일곱분이 영남 출신이었다. 이로 인해 영남지역에 편중된 산업화로 부의 양극화, 교육 양극화로 호남사람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세력들과 함께 영남 사람들에 대한 통치를 반대하는 여론을 형성하게 되고 영호남 갈등도 증폭됐다. 그러던 것이 근래 가장 크게 갈등을 가져 오게 된 것이 광주 민주화운동이다. 그런데 당시 언론이나 집권자들이 뭐라고 했나? '폭도', '빨갱이'라고 했다. 또한, 호남을 제외한 3당 합당도 큰 갈등의 요인이 되었다. 호남 사람들은 항상 기득권층, 집권층에 대한 막대한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신 목사: 일제시대부터 일본 사람들의 식민지 통치 방식이 분할 통치, 편가르기, 이간질을 통해 정치적 목적을 이루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것을 학습하듯이 정치인들이 동서갈등뿐 아니라 노소갈등, 이념, 세대갈등을 계속 조장해서 하고 있을 때 교회와 총회가 아니라고 바르게 지적는 등의 쓴소리가 필요했는데 부족했다. 이번 회기 총회 주제가 '주여, 우리로 화해케 하소서'가 아닌가? 그러나 한해 지나가면 우리 머릿속에서 없어지는 식으로 하면 안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라는 철학 안에서 정책, 교육 훈련, 언론의 가치관, 사회에 선포하는 선지자적 사명 등 다방면에서 우리가 임무를 지속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고려문화재단 설문조사에 의하면 '종교인이 평화에 기여하기보다는 갈등을 더 유발한다'는 의견에 '매우 동의' 14.6%, '약간 동의' 35.9%, '동의도 반대도 아님' 28.0%, '약간 반대' 17.9%, '매우 반대' 3.6%로 집계되었다. 종교인의 배타성에 관한 물음에는 조사대상의 68.0%가 '종교적 신념이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배타적'이라고 응답했다. 이제 의식전환을 필요할 때이다. 요나서의 가르침인 니느웨 선교 사상, 예수님의 사마리아 전도는 감정적인 편가르기 사상을 통합적, 통전적 사상으로 전환하라는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김 목사: 교회가 무슨 일을 했는가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교회는 개교회주와 교회 성장에 함몰되어 있었다. 영호남 갈등은 사실 교회가 바깥의 정치적 흐름에 편승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흐름에 편승하여 어떤 이익을 얻겠다는, 신앙과는 무관한 지역 이기주의에 교회가 그 기반을 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교회가 사회적 책임에 의한 행동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해 교회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사회: 교계에서의 영호남 갈등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김 목사: 정치 사회적 영향으로 비롯된 갈등을 선교사에게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보는 사람들은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는 영남지역,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선교하면서 다른 신학적 흐름을 소개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한국에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은 거의 대부분 신학적 배경은 보수적 복음주의, 신앙의 내용은 전천년주의, 선교의 목적은 개교회주의를 바탕으로 한 교회성장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1970년대와 80년대 교회의 성장지상주의와 더불어 고착화 되었다. 또한, 영호남 갈등을 영남을 중심으로 한 고신파 분열과 호남을 중심으로 한 기장의 분열과 연결시켜 보수교회와 진보교회의 차이를 강조한 분도 있지만 이후 진행된 예장의 분열 등을 고려해 볼 때, 또 더 나아가 한국교회 전반에 걸친 성장 위주의 개교회주의를 고려해볼 때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신 목사: 정치적 갈등이 사회갈등으로, 사회갈등이 교회로 들어와서 영호남 갈등 속에 편승되어 있는 형태다. 물론 선교사들이나 교계 선배들이 잘못한 부분 보다도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우리 총회가 미시적인 측면에서 여러모로 노력해왔다. 영호남이란 말을 쓰지 말자고 해서 동부, 서부지역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했다. 영호남지역을 우리 총회에선 일찍이 동부지역, 서부지역으로 불러왔듯이 지역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는 점에서 선배들에게 감사를 드릴 뿐이다. 하지만 총회 주요부서 공천이나 총회 주요 직책이나 특수한 자리에 직원을 선출할때는 종종 지역감정이 표출되는 경향이 나타났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약 20년 전에 영남지역노회협의회를 조직하면서 당시 서기로서 호남신앙동지회 임원들을 초청했고, 영남지역노회협의회 회장이 되었을 때는 당시 호남신앙동지회 임원들과 중간지점인 화개장터에서 주기적으로 만나서 교류한 적이 있다. 당시 호남신앙동지회 회장은 한완옥장로님이셨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추억이다. 지금은 총회 산하 5개 지역 지역노회협의회가 총회 때마다 회장들이 참석하여 서로 축하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약 30년 전 저희 교회 최영내 장로님과 안동의 김인환 장로님, 광주의 한완석 목사님, 전주의 조세환 장로님을 '총회 4인방'이라고 부를 때가 있었다. 영호남의 갈등을 예방하고 오히려 화합을 리드하시던 어른들이셨다. 그런 통합과 화해의 리더십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손양원 목사님의 일대기가 뮤지컬로 제작되어 공연할 때 대구청소년회관에 유치한 적이 있다. 특히 애양원교회 건축할 때는 영남지역 많은 노회와 교회들이 참여하였던 기억이 난다.

사회: 우리가 영호남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교단이 교회적, 총회적으로 해야할 일이 있다면?

신 목사: 영호남지역을 우리 총회에선 일찍이 동부지역, 서부지역으로 불러왔듯이 지역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는 점에서 선배들에게 감사를 드릴 뿐이다. 지역 갈등 해소를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손양원목사님의 정신을 교육하고 훈련해야 한다. 손양원 목사님의 그 위대한 이타적인 정신을 뿌리내리도록 하는 총회정책과 총회교육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총회 및 지교회의 조직문화와 교회들의 의식전환을 주도해 나가는데 전념해야 한다. 십자가 정신의 구현을 최고의 가치로 자리매김하도록 하는 과제가 총회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영호남 한마음 성시화 운동이 섬진강에서 또는 영호남 지역에서 교류하고 있고, 영호남 노회 자매결연, 찬양대 교환집회, 신학대학교 교수교류 등의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지만, 혹시 이것이 전시적인 행사나 일회적인 이벤트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화해와 일치로 이어질 수 있는 실질적인 노력들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설문조사 연구에 의하면 영호남 갈등에 대한 인식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자들이 느끼는 영호남 갈등의 정도가 영호남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수도권에서 영호남 갈등이 크다고 보는 비율은 56.7%로 영남 거주자(36.4%)에 비해 20% 가량 더 높게 나타났다. 이 통계를 살펴보면 서울 또는 총회 지도자들부터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정책을 펴나가야 하고, 정실인사제도를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영남신학대학교와 호남신학대학교의 학문적 교류를 뛰어넘어 인간적 교류를 더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차세대 지도자들의 화해와 일치가 장래 총회화합의 인프라가 되기 때문이다. 김동운 목사님과 저는 신대원 과정을 장신대에서 같이 공부한 동기이기에 그 정이 평생 지속해 간다는 생각이 든다.

 

김 목사: 영호남 갈등의 문제는 상당히 복잡하다. 그래서 나는 영호남의 문제를 보다 큰 틀 안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남한이라는 울타리 보다는 한반도라는 보다 큰 울타리, 민족의 통일과 화해라는 틀로 승화되어 접근해야 한다. 또한 신학적으로는 만물을 화해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큰 틀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민족 화해의 큰 틀 안에서 영호남 화해 문제를 다루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는 신앙고백이 선행되어 한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계명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는 하나님과 먼저 화해해야만 이웃과 참다운 화해가 가능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영호남 갈등의 치유를 위해 교회는 무엇보다 하나님과 먼저 화해해야 한다. 한국교회에 팽배한 개교회주의와 교회 바깥의 정치적 흐름에 편승해 어떤 이익을 얻겠다는 신앙과는 무관한 지역주의로 인해 교회를 하나님으로부터 분열시키고, 더 나아가 이웃으로부터 분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교회의 모든 관심을 교회 안에만 지금까지의 잘못에 대해 뼈아쁜 회개를 해야할 것이다. 또한, 교회는 남북화해를 위해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계심을 고백하고, 남북으로 분단된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화하는 구체적인 과정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이룬 큰 화합의 빛 안에서 교회가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 책임을 표현하는 과정이 바로 교회가 사회와 소통하며 대화하는 방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와 우리 교단의 교회에 당부하고 싶으신 말은?

신 목사: 행정학 용어에 님비, 핌피현상이란 말이 있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현상으로 모두 지역 이기주의이다. 이기주의적 공공성 결핍 증상, 또는 지역이기주의 현상이다. 적어도 총회정책, 총회인사, 총회공천, 총회재판, 총회기획, 총회교육, 총회언론 등 어느 자리에서든지 주워지는 환경 속에서 저부터 섬김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이도록 하겠다. 갈등해소방안 중 '담론이론'이 있다. 담론이론은 사랑방 대화를 의미한다. 저와 김목사님을 비롯한 영호남 교계지도자들이 지속적이고 의미있는 만남의 장, 대화의 장을 더 많이 만들어 가서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하나되어 지역화합을 넘어서 사회통합 과 민족통일로 이어지는 화해의 복음 정신을 뿌리는 하나의 씨앗이 되고 싶다. 오늘 대담의 주제 '대화(對話)가 대화(大和)를 만든다'가 곧 담론이론이기 때문이다. 담론이론에 충실하겠다.

김 목사: 지금은 사순절 기간이다. 사순절 기간에 겟세마네 동산의 주님의 기도가 생각난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시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했다. 우리 한국교회는 영호남의 문제를 넘어 저 멀리 다가오는 통일 한국을 바라보며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깊이 헤아리는 사순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기회에 영남과 호남의 갈등이 뭘까 깊이 생각해봤다. 신약에서 바울이 화해라고 할 때 하나님을 경험한 신앙 고백적으로 사용된다. 화해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다. 우리 힘으로 화해시킨다는 능동태가 아닌 하나님 은혜로 된다는 수동태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만나 대화 하는 것이 아니라 막힌 담을 허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큰 틀에서의 대화를 통해 참된 소통의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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