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관리집사 '사찰'을 아시나요?

교회 관리집사 '사찰'을 아시나요?

[ 아카이브 ] 한국기독공보에 보도된 '사찰'
교회 구석구석 청소 안전 살피는 중요한 역할...이구동성 "'믿음'으로 감당"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2022년 02월 08일(화) 08:12
김영준 씨(1965년 2월 6일자)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직분이 있다. 현재는 교회 대부분이 '관리집사(인)'라고 호칭을 하지만 이전에는 '사찰(司察)'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했다. 규모가 있는 교회의 경우 사찰을 두고 교회의 시설 관리는 물론이고,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청소, 새벽종 치는 일도 감당했다. 현재는 교회 필요함에 따라 각 분야의 전문인력을 채용해서 관리하지만 그렇지 못한 때에는 모든 것이 '사찰'의 몫이었다.

이같이 '사찰'의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었던 점을 한국기독공보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65년 2월과 3, 4월에 걸쳐서 당시 서울 시내 주요교회에서 묵묵히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사찰들을 찾아 취재한 기획이 있다. '교회 사찰 순례'라는 제목으로 6회에 걸쳐서 기획된 이 기사를 통해 교회내에서 사찰의 역할의 중요성과 함께 교회의 한 면을 엿볼 수 있다. 이 기획에서 만난 사찰은 한양교회 김영준 씨(1965년 2월 6일자), 송학대교회 도현섭 씨(1965년 2월 13일자), 영락교회 방덕규 씨(1965년 2월 20일자), 서울 신광교회 김창윤 씨(1965년 3월 13일자), 덕수교회 손영식 씨(1965년 3월 20일자), 충신교회 박세근 씨(1965년 4월 10일자) 등이다.

이들이 사찰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각각 이지만 공통점은 '교회를 돌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신앙심으로 일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늘 기쁜 마음으로 교회를 쓸고 닦으면서 생각나는 것은 우리들의 신앙도 잠시나마 쉬지말고 쓸고 닦아야 참되고 윤기있는 믿음을 지킬 수 있지 잠시라도 머뭇거리면 먼지가 앉고 때가 끼어 신앙생활하기가 어려움을 느낀다."(김영준 씨)

"교회증축일에도 자기의 일 이상으로 남보다 더욱 열심히 일했으며, 그보다는 매일 뭇 성도들에게 새벽기도회 시간을 알리는 종각축대공사를 거의 손수하고서 이를 쳐다볼 때마다 이 종을 칠 때마다의 그 감격이란 무엇에 비할 수 없다"(도현섭 씨)

"주님을 의지하면 할수록 별로 어려움 없이 일을 해 나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나의 사명이 이것이 아닐까하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방덕규 씨)

"사찰일이란 너무나 무거운 직책이어서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모든 교인들이 함께 협력해줌으로 잘해나가고 있다."(김창윤 씨)

"하나님께서 맡겨준 이 귀한 직분을 매일 매일 충실히 해나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기쁘기 한이 없다."(손영식 씨)

"일을 할 수 있게 맡겨주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를 드리며 늘 기쁜 마음으로 청결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도록 애써보지만 힘이 부족하여 교회앞에 미안함을 금할 수 없다."(박세근 씨)

사찰의 중요성을 담은 '교회 사찰 순례'의 기획 동기를 통해 취재에 응한 분들이 고백하는 뜻을 읽을 수 있다. 기획하고 취재를 담당했던 기자는 첫 번째 기사에서 기획의 의미를 담았다. "교회에 많은 직분이있다. 사찰이란 직책은 어느 교회나 다 있는 듯하지만 교인들은 이 직책에 대해 별로 거들떠보지도 않는 예외자의 반열에 속한 듯한 인상마저도 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생활이나 그들의 봉사는 어느 무엇에 비해 결코 적게 평가받을 봉사직은 아닌 것이다."(1965년 2월 6일자 3면)

기획자는 사찰이 교회에 있는 듯 마는 듯하지만 이들이 없이는 교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반증한다. 절대 사찰의 역할이 평가절하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취재에 응한 분들이 사찰 일을 시작하게 되기까지는 또한 다양한 경험이 있었다. 해방되던 해에 '봉천서탑교회'에서 교회를 돌보는 일을 했다는 김영준 씨부터 사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다가 교회로 들어 온 분, 전직이 경찰관이었던 분 등 다양한다.

그러나 이들의 이전 직업이나 출신과는 관계없이 사찰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은 '믿음'임을 공통적으로 강조한다.

김영준 씨는 "이일은 믿음이 없이는 감당해내기 어려운 직책"이라고 전제하면서 "그렇지않으면 사찰일이란 힘이들도 게으리기 쉽다"고 말한다.(손영식 씨)

"생의 보람과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되니 무한히 기쁘고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보람찬 일로 나날을 보낸다....하나님께서 맡겨준 이 귀한 직분을 매일 매일 충실히 해나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기쁘기 한이 없다."(손영식 씨)

그러면서 사찰의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자신이 감당하고 있는 일과 연결지어서 설명했다.

"교회에 관계된 일이란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다 자기 일로 알고 일해오고 있다. 그래서 교회와 믿는 자의 가정에 관한 것은 무엇이나 봉사하고 있다."(도현섭 씨)

이같은 사명감과는 달리 사찰의 근무환경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한국기독공보는 1976년 1월 10일자 '교회 사찰은 고달프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장신대 학생이 서울 시내 교회 사찰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소개하고 있다. 당시 조사 대상 교회는 53개로 이 중 12교회는 사찰이 없었으며, 교회에서 근무 중인 사찰의 대부분은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이들이 받고 있던 봉급은 평균 3만 3000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사 결과에서 사찰로 일을 하고 있는 분들에 대해 기자는 "결론적으로 사찰의 일이 벅차며 격무에 시달리고 있음이 확실하나, 그 나름 대로의 소명의식을 갖고 믿음으로 이겨나가고 있음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사찰들의 노고에 작지만 보답을 하는 내용의 기사도 찾아 볼 수 있다. 1974년 1월 12일자 '교회 사찰들 위로'는 신년을 맞이해 용산연합제직회 주최로 지역내 교회 사찰 위로회를 가진 기사이다. 13개 교회에서 사찰로 활동하고 있는 13명이 초청됐으며, 선물과 식사를 제공했다.

또 용산연합회는 1980년 12월 27일자 기사에서도 사찰위로회를 가졌다. 특히 이전 위로에서 한층 발전해 20년 간 근속한 사찰 3명을 뽑아 감사의 내용을 담은 근속표창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기사는 행사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20년 이상된 박세근, 윤병욱, 강승현 세 사찰에 대한 근속표창은 이 자리를 더욱 흐뭇하게 만들었는데,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같은 사찰에게도 표창을 준다는 것은 아마 대한민국에서도 없는 일'일거라며, '주최측 뿐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며, 감격스러워함은 참석한 이들에게 눈시울을 자아내게 했다."고 기록했다.

이같이 한국기독공보를 통해 확인한 '사찰'에 대한 기사는 많지는 않았지만 신문에서 '사찰'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미를 찾게 된다.

현재도 교회에는 명칭을 다르지만 '사찰'이 있다. 이들의 역할은 청소를 위한 또 안전을 위해 교회 구석수석을 돌아보는 일이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사역을 감당하고 있으며, 눈길을 주지 않아도 '알아 달라'고도 하지 않고 맡은 역할에 충성하고 있다.

한국기독공보 아카이브에서 찾은 오점선 집사(봉천교회 사찰)의 신앙간증 원고에 마음이 간다.

"나는 과거 24년을 돌이켜 볼 때 교회 봉사를 얼마나 하였는지 부끄러울 뿐이다. 성도님들의 목소리에 허리가 굽어지고 백발로 변한다 하나, 하나님 은혜 감사하는 것은 지금도 건강주셔서 교회 사역에 충성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할 뿐이다."(1990년 2월 3일자 8면)



김창윤 씨(1965년 3월 13일자)
도현섭 씨(1965년 2월 13일자)
박세근 씨(1965년 4월 10일자)
방덕규 씨(1965년 2월 20일자)
손영식 씨(1965년 3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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