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 야곱?!

비정규직 노동자 야곱?!

[ 현장칼럼 ]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2년 05월 04일(수) 17:16
IMF 이후 양산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 사장님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계약직 노동자와 다름없는 상황에 처한 특수고용직군의 노동자들, 2차, 3차에 걸친 왜곡된 고용구조 속에서 산업재해 등 위태로운 상황에 내몰린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 또 최근 배달 앱에 프로그램된 알고리즘을 따라 위태롭게 일하면서도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재보험을 받을 수 없는 플랫폼 노동자까지 실로 다양하게 펼쳐진 노동의 문제 가운데 들어가게 되면 켜켜이 쌓여온 아픔과 슬픔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교회가 이들에게 어떤 위로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마음이 무겁다. 아직도 교회에서는 노동이나 노동자라는 단어가 본연의 의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영등포산업선교회의 일은 이런 교회와 현장 사이의 간극을 좁히며 연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늘 섬세함을 유지하면서도 책임감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

이런 부담감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부당하게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펼쳐놓은 길거리 농성장으로 가 함께 연대하는 시간일 것이다. 매주 한 번씩 날을 정해 현장에서 해고 노동자과 함께 기도회를 드리고 있다. 이 때 가끔 말씀을 전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설교를 준비하며 평소 느끼던 답답한 마음을 붙들고 성서 본문과 씨름하다 보면 문득 말씀 속에서 지금의 현장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해답을 물을 때가 있다.

한 번은 창세기에 나오는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를 묵상하게 되었는데, 맏아들을 중심으로 가문의 재산이 상속되던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장남이자 형인 에서의 발을 잡고 태어난 야곱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발 뒤꿈치를 잡는 자' 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발 뒤꿈치를 잡는 자'로 불리며 평생을 살아야 하는 야곱의 운명은 그 활동의 정당함과 무관하게 사회에서 비난받는 이름이 되어버린 '노동조합' 과 겹쳐보였다. 이윤추구를 극대화 하려는 산업현장의 분위기 가운데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려 현장에서 악착같이 활동하고 있는 '노동조합'은 어떻게 해서든 기업의 이윤을 노동자의 권리와 사회인권의 발전을 위해 가져오려는 숭고한 노력으로 보였다.

또한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으려다가 받게 된 박해를 피해 도망쳐 나온 야곱의 꿈에 나온 사닥다리는 마치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이들이 올라가 있는 굴뚝처럼 보였고, 삼촌의 혼인을 빙자한 14년간의 강제노동을 견디는 야곱의 모습 또한 불합리한 고용구조와 불안한 노동환경을 견디고 있는 노동자의 모습으로 보였다.

형의 발 뒤꿈치를 잡던 철없는 동생 야곱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둘러싼 세상이 장자를 제외한 다른 자녀들을 소외시키고 있었던 것처럼, 회사의 발목을 잡고 사회에 불쾌함을 주는 강성노조, 귀족노조가 아니라 비정규직, 라이더, 청년, 여성 노동자를 소외시키고 그들의 힘을 뭉치지 못하게 하는 세상이 오히려 노동자의 발 뒤꿈치를 잡고 흔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등포산업선교회는 방학마다 기독청년들과 함께 '현장심방-발바닥으로 읽는 성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기독청년들과 함께 평소 낯설어 보이는 농성현장에 찾아가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정말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어찌할 수 없으셨던 이유를 조금씩 알게 된다. 노동현실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천막을 치고, 공중에 오르고, 곡기를 끊어야 하는 간절한 이유와 비정규직 노동자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면서까지 복을 받아야 했던 간절함이 맞닿는 순간을 경험하고 나면 이 땅에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 야곱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 칼럼을 통해 발바닥으로 성서가 읽어지는 그 순간을 많은 분들이 함께 경험 했으면 좋겠다.



송기훈 목사/영등포산업선교회 교육홍보팀장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