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이 너무 하고 싶습니다"

"간증이 너무 하고 싶습니다"

[ 기획 ] 간증의 종 '청송주왕산 싱싱사과' 대표 김진락 장로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8년 11월 19일(월) 19:24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체험을 주변인들과 나누고 싶다는 김진락 장로. 김 장로는 경북 청송에서 사과 농사를 지으며 사과즙 생산을 하고 있다.
"철따라 무르익고 열매 맺게 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일평생 농부로 살아가면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신앙인이 있다.

경북 청송에서 20년째 사과 농사를 지으며 공판장 운영과 함께 사과즙을 생산판매하는 '영농조합법인 청송주왕산 싱싱사과' 대표 김진락 장로. 그의 간증을 듣기 위해 그가 땀 흘리며 농사짓는 청송을 찾았다. 김 장로는 점심 무렵 방문한 기자에게 식사부터 권했다. 청국장에 나물 몇가지로 소박한 밥상을 마주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질문 몇가지를 던졌지만 대답은 예 혹은 아니오로 짧았다. 평소 과묵한 성격임이 한 눈에 보였다.

밥상을 물리고 본격적인 신앙 간증이 나오자 말문이 터졌다. 본인을 소개하며 "경상도 사투리가 억새고 말주변이 없다"고 염려했지만, 간증을 시작하자 모세가 여호와를 만날 때처럼 '뻣뻣한 입과 혀'가 능력을 받아 풀린 듯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믿음과 한량없는 사랑을 체험한 은혜의 간증은 그의 마음을 뜨겁게 만든다.

김진락 장로는 자신의 간증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싶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100% 믿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지극히 낮은 나같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계속된다는 걸 말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김진락 장로가 농사지은 사과는 상품성이 뛰어나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쇄도한다. 쉽게 말해 없어서 못팔 정도다. 김 장로가 만드는 사과즙은 포털사이트에서 사과즙부문 판매 1위다.

사과는 2000평 부지에 1년 10톤을 생산한다. 사과즙은 1년에 1000톤 가량을 만들어낸다.

사과즙을 만들 때는 그만의 노하우가 있다. 사과를 즙을 내면 보통 60% 정도 착즙이 가능하지만 김 장로는 70%까지 끌어올렸다. 일에 대한 열정이 높아 착즙기까지 직접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김진락 장로의 간증 보따리는 농사꾼답게 '인생 농사' 이야기다. 인생이 농사같아서 뿌린대로 거둔다는 것이 핵심이다.

김진락 장로가 생산하는 사과와 사과즙은 상품성이 높아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쇄도한다. 부산이 원래 거처지만 일을 위해 경북 청송의 사과즙공장 한켠에서 쪽잠을 잔다.
김 장로는 경북 청송군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18살 차이나는 형의 농사를 도우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7살에 친구따라 교회를 처음 나갔다. 이후 교회를 계속해서 나가게 된 배경은 자신감을 심어준 교회학교 교사 덕분이었다.

"저는 어려서 수줍음이 많고 의기소침한데다 못생겼다고 생각해서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녔어요. 하지만 교회 선생님이 잘 생겼다고 칭찬해 주셔서 기분이 좋아 교회를 계속 나가게 됐습니다."

칭찬은 그의 마음속에 밀알로 자리잡아 점점 자라나더니 꽃을 피웠다. 복음이 자연스럽게 안착했다. 그러나 나이차가 많은데다 평소 무서운 성격의 형이 농사일을 이유로 교회를 못다니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일날 비가 오면 그렇게 기뻤다고 한다. 비가 오면 밭일을 못하니 교회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번째 간증은 이때 생겼다. 교회에 너무 가고 싶던 어느 토요일, 다음날인 주일은 비료로 쓸 풀을 하루종일 베야 하는 상황이었다. 교회에 가야한다는 일념으로 달이 뜨던 새벽 3시 풀을 베러 산에 올라 아침까지 일곱(7) 짐을 만들고 교회로 갔다.

김 장로는 "보통 하루에 종일 일해도 네(4) 짐을 하는게 일반적인데 힘과 속도가 생기더라. 형님이 놀라 교회에 보내줬다"고 회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절기인 망종(芒種)을 앞두고 보리를 베야 하는 상황에서도 교회에 가고 싶어 초인적인 능력으로 미리 작업을 해놓으니 그 일 이후로 형은 "이제 교회에 가도 된다"고 허락했다.

또다른 간증은 20대 초반, 형에게서 독립해 자기 농사를 새롭게 시작하며 일어났다. 마을에서 '범도 안물어가는 땅'이라고 불릴 정도로 버려진 밭을 집안에서 받은 후 나름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옥토로 가꾸어지길 기도하던 중 그 밭이 저수지 개발사업으로 보상범위에 포함됐다. 사실 그 밭에서 별 소득이 나오지 않았었다.

세번째 간증은 어머니와 관련돼 있다. 막내였지만 지극한 효심에 함께 살았는데 어머니가 환갑날 갑자기 사경을 헤매게 되고, 친척들 모두 장례를 준비했지만 김 장로는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어머니가 사실 겁니다"라고 당당히 선포했다.

모두들 김 장로의 언행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김 장로는 내리 6시간을 기도하고 찬송하며 "구하면 주겠다" 한 말씀을 간구했다. 결국 어머니는 하루종일 감았던 눈을 떳고, 이후 김 장로와 10년을 더 건강하게 살다 별세했다.

그의 네번째 간증은 이렇다. 30대 초반 농사를 접고 장사하던 시절, 탑차를 몰고가다 졸음운전으로 가로수를 들이받은 사고를 당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타이밍의 치료를 경험했다.

당시 갑작스런 사고로 정신이 혼미했지만 기도부터 했다. "죽으면 영혼을 받아주시고, 아니면 더 열심히 전도하며 살겠습니다."

김 장로는 "평소에 운전을 잘했고, 예수님 잘 믿었기 때문에 사고가 없을 것이라고 자만했었다"며 "막상 사고가 나니 회개와 감사의 기도가 쏟아졌다"고 회고했다.

복통을 호소하며 종합병원 응급실에 실려간 그에게 낯선 여성이 옆으로 오더니 "형부"라고 부르며 의사와 간호사에게 "우리 형부니 서둘러서 잘 치료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김 장로는 어리둥절 했지만 '내가 모르는 먼 친척뻘의 처제인가보다'라고 생각했다.

마침 공휴일이라 환자가 밀려있었지만 처제라는 사람의 도움으로 다친 내장기관의 치료와 수술을 빠르게 마쳤다. 그런데 알고보니 처제라고 말한 여성은 그 병원의 수간호사였고, 김 장로의 옆 병상에 누워있던 자신의 진짜 사촌형부와 착각해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김 장로는 이 간증을 하며 "예수님 믿는게 얼마나 재밌고 신나는 일이냐"면서 또다른 간증을 이어갔다.

김진락 장로는 사업장 내에 찬송가 방과 기도 방을 만들어 직원들과 예배를 드리고 수시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고 있다.
김 장로는 사과농사와 관련해 기후에 대한 기도를 하며 평소 "제가 있는 곳 반경 40km 주변으로 태풍이 오지않기를" 간구했다고 한다.

2007년과 2010년에 일어난 사건이다. 초대형태풍이 청송을 정확히 관통한다는 소식에 사과농장주들이 낙과를 염려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덜익은 사과를 수확했지만 김 장로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자'는 담대함으로 기도하며 버텼고, 결국 본인의 사과농장에서 정확히 40km 떨어진 안동에서 태풍이 소멸되는 체험을 했다.

이러한 간증은 김 장로의 사업장 직원들과 주변 농장주들의 전도로 이어졌다. 태풍이 소멸된 날 8명을 교회로 전도해 데리고 갔다.

김 장로는 "태풍이 비껴갈 것이라는 기도내용을 들려주고 현실이 되자 주변 사람들이 '누가 태풍을 붙들고 있었나보다. 우리도 예수님 믿어보자'라고 말했다"며, 당시 상황을 담담히 전했다.

그의 간증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어깨 통증으로 한밤중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실려갔고 어깨 힘줄이 끊어졌다는 진단을 받은 후 '여호와 라파'의 기적을 체험했다.

병원측이 고령이라 수술 후유증을 염려해 수술을 못하겠다는 소견을 알린 상황에서, 그 주일 교회예배 중 찬양을 부르다 올라가지도 않던 뻣뻣한 팔이 펴지고 씻은듯이 나았다.

당시 그가 부르던 찬양은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였다.

김 장로의 간증을 들은 후 사업장 곳곳을 둘러봤다. 그는 찬송과 기도가 일상이라 찬송가 방과 기도 방을 사업장에 만들었다. 찬송가 방은 김 장로가 수시로 찬송을 부르는 곳이자 직원들과 아침마다 예배드리는 공간이다.

찬송가 방에 얽힌 간증도 있다. 2007년 찬송가 방이 공사를 마치고 오픈하던 날, 연골이 닳아서 주사를 계속 맞고 있던 무릎의 통증이 완화됐다.

김 장로는 "무릎 때문에 '아프다'는 말이 입에 배어 있었다. 그러나 찬송가 방에서 하루종일 찬송을 부르고 기도할 때 '내 무릎이 설사 끊어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며 감사의 기도가 계속 나왔다"며 "그날 집에 도착하니 다리가 괜찮아져서 몇일 후 건강검진 받으러 가니 연골이 강화되고 있다는 소견을 들었다"고 전했다.

김진락 장로는 간증을 말하는 3시간 내내 '하나님을 자랑'하는게 즐거운 듯 보였다. 김진락 장로는 인터뷰를 마치며, "농사를 지으니 하나님의 은혜를 섬세하게 체험하게 된다. 철따라 무르익어 자라게하고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모든 삶을 그분께 맡기게 된다"고 강조했다.

신동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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