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들의 두터운 경계심

지역주민들의 두터운 경계심

[ 땅끝편지 ] 일본 강장식 선교사<4>

강장식 목사
2022년 11월 15일(화) 08:43
전도지 배부지역과 상관 없는 먼 곳에서 몇몇의 젊은 가정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진은 평일에 모인 기도모임.
교회 청소를 하면서 화분 분갈이를 하고 있는 강장식 선교사 부부.
2008년 2월말에 착임한 교회는 1년 넘은 담임목회자 부재와 여러 요인 등으로 10여 명이 주일예배만 겨우 모이고 있었다. 사택은 사무실로 쓰던 곳 한 켠에 부엌을 만들고, 구분이 잘 안 되는 방 하나를 가설해 놓은 곳이었다. 그리고 세면장은 남자화장실에 온수기를 설치해 놓은 형편이어서인지 전임목회자도 입주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일본 입국 첫 날, 시멘트 바닥에 장판과 카펫을 깔고 한 쪽에 전기장판을 놓아 둔 거실에서, 4명의 가족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 교회와 이 지역에 축복의 증거자가 되게 해 주시기를 구했던 뜨거운 기도를 잊을 수 없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첫째는 일본초등학교 아이들은 외국인에게 이지메(집단 따돌림)를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파르르 손을 떨면서 첫인사하고, 그래도 형이라고 묵묵히 일본학교에 적응해 나갔다. 그런데 3학년에 전학한 막내는 친구들의 따돌림과 불편한 일본생활에 답답해 하며 한국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울먹거리며 한국에 돌아 가자고 할 때가 많았다.

그 때마다 아내는 보고 싶어 하는 한국친구에게 국제통화를 하게 했는데, 그렇게 통화를 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막히던 숨통이 트이는지 밝은 얼굴의 아이가 되어 다시 힘들어 하던 일본어를 배워나갔다. 예상 외로 심각한 아이들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등교시간에 네 가족은 한 마음으로 손을 잡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이 기도는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은 계속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에 은혜와 보호의 울타리를 우리에게 내려주셨음을 고백할 수 있다.

필자 가족을 위한 한국 후원교회의 기도와 사랑이 오늘까지 수 많은 어려움과 고비를 넘게 하시고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게 하셨음을 고백한다. 첫째는 직장생활을 하며 후쿠시마현에 있는 작은 일본인교회에서 사랑을 받으며 봉사를 하고 있고, 둘째인 막내는 사회인이지만 예배통역과 청소년부 담당교사 등 다양한 교육봉사를 감당하고 있다. 바라기는 하나님 나라를 일본 땅에 세워가는 큰 그림을 그리며 뜨거운 비전의 삶을 살아 내는 선교적 일꾼되기를 바랄 뿐이다.

당시의 평일 상황은 많은 교인과 행사에 파묻혀 살던 한국의 대형교회 부목사의 일상과는 너무도 달랐다. 우선 평일에 교회에 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개미 한 마리 얼씬 거리지 않는다'는 말이 어울리는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는 바쁜 교회생활을 오래 했던 필자에게는 생소하기만 했다. 그러니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은 활동을 해야 한다는 선교사의 삶이 실감이 났다. 목회자와의 갈등도 경험하였던 몇 안 되는 고령의 교우들도 담임 목회자가 선교사라는 사실에 마음의 문을 여는데 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1년 이상 목회자가 없어서 묶은 때가 많던 교회를 청소하고 정비하면서 지역 정탐과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 전철역 앞에서, 그리고 교회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3km 정도 구역까지 복음 전도지와 교회 소개지를 들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한 집 한 집에 문패와 주소를 읽어가며 기도와 함께 수 만장은 배부한 것 같다. 그러나 발이 아프도록 돌렸지만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찾아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항의 전화는 여러 번 받았다. 어떤 일본인은 대뜸 욕부터 하고는 당장 와서 전도지를 가져가지 않으면 불법주거침입죄로 고소한다고 협박을 하곤 주소를 알려주었다. 사과하려고 찾아 갔지만 골탕을 먹이려고 알려준 틀린 주소였다. 어떤 이는 종교 토론을 하자고 몇 시간 전화기를 붙잡고는 기독교 교리를 따지고 들었다. 교회 반경 3km 지역의 골목길은 몇 번을 돌았기 때문에 눈에 훤하다.

이 정탐과 전도를 통해서, 잘 눈에 띄지 않는 일본인 교회 4개를 찾아내었고, 한국인 이름으로 보이는 문패가 네 집 있다는 것과, 교회 주변은 재일교포도 한국인도 잘 들어와 살지 않는 전형적인 일본인 주거지역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어느 날 필자가 교회 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뒤에서 일본 아주머니 두 명이 필자 교회를 지칭하면서 "통일교회 아니면 이상한 교회이니 조심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지역주민의 경계심과 오해가 두터웠다.

8년 전, 이 지역으로 교회가 이사를 온 후 왜 전도가 안되고 어려워졌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먼 거리에서 교회에 출석하며 주일이면 반갑게 만나는 교우들이 더욱 사랑스러웠고, 일본의 아주 작은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더욱 귀하고 감사하게 여겨졌다.

하나님은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는 말씀으로 늘 위로해 주셨고 소망을 품게 해 주셨다. 복음과 교회의 은혜를 너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이러한 반응을 보인다는 현실을 알았기에 일본선교를 향한 기도와 선교적 방향성이 더 구체화되어 갔다. 하나님은 이러한 필자를 긍휼히 여기셨는지 전도지 배부지역과 상관 없는 먼 곳에서 조금씩 힘이 되어주는 젊은 가정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평일에 주의 성전에서 몇몇의 교우들과 교회의 부흥과 일본선교를 위해 기도와 찬송의 제단을 쌓아가는 작은 감격과 기쁨이 시작된 것이다.

강장식 목사 / 총회 파송 일본 선교사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