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목회로 일군 흥겨운 마을공동체

마을목회로 일군 흥겨운 마을공동체

[ 우리교회 ] 서울동북노회 아천동교회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22년 12월 15일(목) 09:40
아치울마을 입구쪽 언덕에 위치한 아천동교회.
아천동교회 옥상에서 바라본 아치울마을.
김일재 목사는 부임 이후 두 번의 교회 건축을 진행했다. 교회 입구에 있는 두 개의 머릿돌.
아천동교회는 2003년부터 주민들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마을협동조합을 결성한 아천동교회 교인들은 구리시의 후원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서울동북노회 아천동교회(김일재 목사 시무)는 서울시와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아차산 동쪽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 장로회신학대학교가 아차산 좌측인 서울 동편 끝에 있다면, 아천동교회는 아차산 우측인 구리시의 남서쪽 끝에 위치한다. 뒤에 아차산과 망우산이 있고 앞으로 한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자리, 계곡과 등산로 입구에 교회가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아차산을 뜻하는 '아치'와 마을을 의미하는 '울'을 합쳐, 아치울로 불렸다.

산에서 땔감을 얻고 강물로 농사를 짓던 이 지역에 아천동교회가 들어선 것은 1964년 이강익 선생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다. 이후 이강익 선생이 기증한 땅에 1968년 첫 교회 건물이 세워졌다. 20여 년 후인 1987년엔 이강익 선생의 아들 이위재 장로가 추가로 120평의 땅을 기증했고, 1991년 두 번째 교회가 건립됐다. 이위재 장로는 현재 시무 중인 이수원 장로의 부친으로 3대가 아천동교회를 섬기고 있다. 현재 건물은 2007년 새로 지어졌다.

2006년 두번째 건물을 허물고 그 터에서 기공예배를 드린 김일재 목사는 '거리를 청소하는 목사'가 되기로 다짐했다. 매주 토요일 새벽예배 후 거리를 쓸고 쓰레기를 줍자 지역 어르신들이 동참할 정도로 좋은 반응이 돌아왔다. 이듬해 열린 입당예배에선 지역 토박이들이 축하금을 내고 교인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5년 이상 계속되던 거리 청소는 노인일자리사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중단했지만, 교회가 주민총회 장소를 제공하는 등 마을과의 소통을 계속했다. 교회는 봄·가을로 아차산 청소도 시작했다. 길과 하천을 청소하고, 등산로 입구에서 정상까치 쓰레기를 줍는 대작업이었지만, 성도들에게 큰 보람이 됐다. 이곳에서 두번의 교회 건축을 경험한 김 목사는 "주민들이 경운기로 자재를 운반해 줄 정도로 교회의 성장을 환영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도시개발로 농가가 사라지고 연예인이 많이 거주하는 인기 있는 마을이 됐지만, 아천동은 여전히 흥겨운 마을잔치가 열리는 곳이다. 2003년 아천동교회가 등산로 옆 공터에서 시작한 음악회가 지금은 지역 NGO들도 함께하는 마을잔치로 확장됐다. 본보는 지난 2004년 아천동교회 찬양대를 취재하면서 당시 2회차였던 음악회를 소개했다. 당시 400명 이상이 모인 음악회는 아래 동네와 윗 동네, 토박이와 이주민을 연결하는 화합의 장이었다.

농촌 교회가 실내악단을 만들고 마을 음악회로 발전시킨 사연이 재밌다. 부임 초 김 목사는 자녀들에게 바이올린 과외를 시키고 있었는데, 주민들이 관심 갖는 것을 보고 선생에게 추가 비용을 지불하며 무료교습을 시작했다. 여기에 부인 구경자 씨가 무료 피아노 교실까지 열자, 갑작스레 농촌마을에 악기교육 바람이 불었다. 김 목사는 "당시 받던 사례금의 절반을 바이올린 선생에게 줘야 했지만, 그 이상의 열매를 거뒀다"고 말했다.

아천동교회는 유치부부터 청년부까지 모든 다음세대 부서를 운영한다. 서울에 인접해 주민 유출이 적은 이유도 있지만, '30년 동안 악기교육을 통해 배출된 일꾼들이 교회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김 목사의 분석이다. 지금도 초등학생부터 20대 중반의 청년들이 실내악단 '듈로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학년은 토요일에 별도의 연습시간을 갖고, 주일예배 전후로 전체 연습시간이 있다.

무료 악기교육으로 주민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교회는 2008년 구리시에서 세번째로 시립 무료경로식당을 개소했다. 또한 2009년부턴 호남신학대학교 농어촌선교연구소와 협력해 '농어촌교회 어린이 서울 나들이'를 시작했으며, 2011년엔 지역아동센터를 개소해 정식 인가까지 받았다. 이외에도 2015년 교회창립 50주년엔 경로식당 담당자가 경기도지사 표창을 받는 등 아천동교회는 지역사회의 협력과 인정 속에 사회선교를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엔 아천동교회 교인들 주도로 '아치울 여우지(여기, 지금, 우리)'라는 마을협동조합이 탄생했다. 출자금을 내고 조합원이 된 교인들은 관련 교육을 이수하는 등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고, 구리시로부터 1000만 원의 지원금까지 받아 올해 어린이 환경 교육, 여성 대상 꽃 테라피와 전통음식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김 목사는 "마을협동조합은 취미생활은 물론이고 경제활동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에 잠재력이 크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잠시 중단됐던 음악회도 올해 재개됐다. 매년 10월 셋째주 주일에 아나바다장터, 먹거리장터와 함께 열린 음악회는 지역 언론에 수차례 소개될 정도로 명물이었다. 올해 음악회엔 아쟁, 피리, 대금 등을 이용한 국악 연주,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피아노로 구성된 실내악단의 연주, 첼로 트리오 공연, 남성중창 등으로 진행됐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 먹거리장터는 열지 않았지만, 마을협동조합과 구리시 사회적 기업 10여 곳이 참여해 특산품을 판매했다.

아천동교회 옥상에 오르면 마을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이젠 건물이 들어선 음악회가 열리던 공터, 현재 음악회가 열리는 어린이공원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60년 가까이 이곳에서 아치울마을의 변화를 지켜보며 기도하고 섬겨 온 아천동교회의 미래가 기대된다.



● 김일재 목사 인터뷰

내년에 은퇴하는 김일재 목사는 1989년부터 한 세대 이상을 이곳에서 사역했다. 그는 이곳에서 함께 복음의 지평을 넓히던 옛 교인들을 생생히 기억했다. 당시 장로들은 목회자의 행실이 어긋날 때마다 충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김 목사는 "교인이 목사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쉽지는 않다"며, 교인이 기도한 후 목회자에게 무언가 말할 때는 반드시 경청하고 돌아볼 것을 조언했다. 김 목사는 "목회자의 잘못을 일깨워주기 위해 노력한 장로님들 때문에 이렇게 오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목회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는 기자에 질문에 그는 "세월호 사건 때 총회 인권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진실 규명과 유가족 지원에 힘썼던 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통받는 현장을 찾아 기도하고 위로했던 일, 지역에 큰 홍수가 났을 때 교인들과 지원에 나섰던 일 등 도움이 필요한 곳에 함께했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견해 차이로 결정이 어려울 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했다. '무슨 일을 하든 드러내지 않고, 후임자에게 맡겼으면 개입하지 않는 것'도 그의 목회 방식이다.

구리YMCA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등 지역사회 섬김에도 앞장서 온 그는 "복지의 기본이 이해에 있다"고 정의했다. 지역 사회의 청소년, 여성, 장애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쉽지 않은 일을 교회는 해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늘어나는 노인들과 그들이 겪는 상실감을 언급하며, "교회는 항상 마음 속 빈자리를 예수님으로 채울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차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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