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축소판 '안산 국경없는 마을'

지구촌의 축소판 '안산 국경없는 마을'

[ 아름다운세상 ] 아름다운세상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3년 05월 09일(목) 13:43

걸으며 만나는 그들 모두 아름다운 '하나님 작품'
 
 

   
 


베트남 2707.90km, 방글라데시 3770.43km, 네팔 4001.33km, 스리랑카 5803.22km, 키르기스스탄 4416.89km, 중국 연변 660.13km, 몽골 1999.08km, 나이지리아 1만1874.64km, 미얀마 3763.47km, 캄보디아 3591.07km, 태국 3675.22km….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이주민들이 살고 있는 안산 원곡동에서 그들의 고향까지 거리다. 가깝게는 600여 km, 멀게는 1만여 km의 거리에서 한국을 찾아온 이들은 국적은 모두 달라도 이곳 안산에서 하나의 마을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안산이 그들에게는 한국 고향인 셈. 지난 4일 호기심을 안고 지구촌의 축소판이라고 불리는 안산 원곡동 다문화거리를 찾았다.
 
지난 2009년 5월 '안산다문화마을특구'로 지정된 이곳은 사실 '국경없는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1994년 서울서남노회와 부천노회가 설립한 안산이주민센터(이사장:민경설 대표:박천응, AMC)가 국경없는마을 운동을 전개하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 지역의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흔한 시장통처럼, 평범하게 느껴지는 거리에 들어서면 누구나 어느새 여러 국경을 넘나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국경없는마을에 망고 심어주세요." 1번으로 방문한 안산이주민센터 마당에서 누군가의 희망 메시지가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망고 나무'라니, 왠지 원곡동에서는 잘 자랄 수 있을 것 같다면 착각일까. 기분좋은 상상과 함께 센터에서 국경없는마을의 지도를 받아들고서야 본격적인 다문화 탐험이 시작됐다. "다문화의 초점이 이주여성에게만 맞춰져있는데 다문화의 중심은 '인권'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권에서부터 대등한 문화를 이야기할 때 올바른 다문화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김영선 사무국장의 조언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기자가 찾은 시간에도 센터에는 상담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외국인이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분명 그에게도 생존과 인권의 문제가 시급한 일이었으리라.
 
안산의 다문화길은 '먹거리'를 중심으로 길게 들어서있다. 꽈배기, 양꼬치, 마른 두부와 연변순대, 만두, 케밥, 두리안 등 열대과일. 오후 3시면 배가 고프진 않지만 맛있는 음식 냄새에 입맛을 당기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눈으로 한번, 냄새로 두번 맛본 음식들 역시 이곳의 사람들처럼 국경이 없다. 음식 뿐이 아니다. 이 거리에는 언어도 국경이 무색하다. 간판의 언어 숫자를 어림잡아 세봐도 7∼8개를 훌쩍 넘었다.
 
 

   
 


안산역 방향으로 조금 더 걷다보니 왼편으로 넓은 공원이 보였다. 시설면으로는 다른 동네 공원과 다를 것이 없지만 '만남의 광장'인 이 공원의 풍경은 더욱 이색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평일 오후임에도 공원은 제기차기, 장기, 카드놀이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그렇다고 이들의 한가로운 일상을 부러워할 수만은 없다. 주름이 깊게 패인 노인들 뿐만 아니라 아직 한창 일할 수 있을만한 청ㆍ장년들도 무료한 표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 공원은 물론 다문화길 구석구석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구직 광고판이나 "다방ㆍ노래연습장에서의 티켓영업, 접대부 고용 알선, 음주허용 및 주류판매는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는 현수막이 다문화길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야(얘)는 중국말 해요 조선말 해요?" "중국말 조선말 둘다 해요." 공원 한켠에서 아낙네들의 수다를 엿듣고 있다보니 3살 배기 남자 아이가 기자를 향해 배꼽 인사를 했다. 아이의 이름은 '준'. 현재 원곡동에는 중국 조선족,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서 온 이주민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으며 최근들어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주민이 늘고 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2개 국어를 하고 '다문화'를 익숙한 옷처럼 입게 될 이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국경없는마을의 모습은 어떻게,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재밌는 상상을 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다문화길의 또다른 시작점인 안산역 2번 출구 앞을 찍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려 이번에는 정반대 방향에 위치해있는 안산시외국인주민센터로 향했다. 지난 2006년 안산시에서 설립한 주민센터의 외벽에는 58개 국기로 형상화된 키다리 아저씨 그림이 장식돼있어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지하 1층에는 총 1만 1176권이 비치된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이 있는데 '국경없는마을' 답게 80%가 외국어 도서다.
 
만약 국경없는마을 탐방을 계획하고 있다면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오경석 소장(안산제일교회)은 "원곡동에 처음 방문해 특유의 냄새가 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낯설더라도 그 자체로 온전한 문화이자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며, "모든 존재의 다양성을 하나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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