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하나님께 충성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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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세상 ] 김현태 선교사와 고순길 집사의 아름다운 만남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18년 10월 24일(수) 11:23
35년 전 군대에서 이등병과 주임원사로 만나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 온 김현태선교사(우)와고순길집사가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반갑게 인사하는 김현태 선교사(우)와 고순길 집사. 평생 근검절약하는 삶을 살아 온 고 순길 집사는 500만 원을 선교후원금으로 내놓았다.
우로부터 김현태선교사,고순길집사,이정숙권사,김홍윤목사
군생활은 제대한 남성에겐 유쾌한 추억이지만, 복무중인 군인에겐 고난의 현장이다. 그러나 부대 방향도 쳐다보기 싫다던 군인이 어느덧 군대 얘기를 풀어놓는 나이가 되면, 악연이라 여겼던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지난 11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김현태 선교사가 의정부에 살고 있는 고순길 집사를 방문했다. 군대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당시 이등병과 주임원사였다.

이야기는 35년 전, 김 선교사가 논산훈련소를 거쳐 대대본부에 배치받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3년 전방에서의 신앙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대대 규모 부대엔 교회가 없던 시절이라 주일성수는 불가능했고, 혹여 장교나 고참이 타종교인이면 군생활 동안 종교활동은 접어두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나 혈기도 신앙이 뜨거웠던 김 선교사는 기독교 장병들과 창고 한 쪽을 정리해 작은 예배처소를 만들었다. 몇 번이나 예배를 드렸을까! 고 집사가 사용하지 않는 비품들을 그곳에 쌓아 놓으면서 예배처소는 자연스럽게 폐쇄됐다. 김 선교사가 군에서 만난 고 집사는 대대 전체 살림을 꾸려가는 인사계였고, 독실한 불교인이었다. 그는 철저한 군인이었고, 매사에 까다로웠다.

이런 인사계를 만난 김 선교사의 군생활을 누가봐도 신앙의 암흑기로 예견됐고, 이등병에게 인사계는 복음을 전하거나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상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김 선교사가 군생활을 1년 정도 남긴 시점에 고 원사가 원인 모를 마비증상으로 쓰러져 군생활을 중단한 것이다. 22세와 40세에 처음 만나 좋지 않은 감정만 쌓아 온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날듯 했다. 조용히 부대를 떠난, 어찌됐는지 알수도 없던 고 원사의 소식이 들려온 것은 그로부터 3개월 후였다. 병을 극복하고 같은 대대로 복귀한다는 소문이었다.

소문은 현실이 됐고 몇일 후 내무반에 고 원사가 나타났다. 그러나 진짜 이변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주일이 되자 고 원사가 김 선교사를 불렀다. "야 나도 교회 나가야 겠다. 성경 가져와."

'나를 시험하는 건가? 뭔가 트집을 잡으려고 그러나?'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지만, 이날부터 고 원사는 진심으로 김 선교사와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고 원사는 김 선교사에게 용서도 구했다. "현태야 미안했다."

김 선교사의 군 생활은 말년에 풀렸다. 갑자기 기독교 활동이 권장되기 시작했고, 주일엔 방송으로 찬양과 성경이 흘러나왔다. 점호 후엔 성경을 읽으며 잠들 수도 있었다.

군대는 서열이다. 가장 어른인 인사계가 기독교 신자가 되니 장병들은 물론이고 장교들의 교회 생활까지 활기를 뗬다. 20명 수준이던 기독교인은 어느새 100명을 넘어섰다. 이뿐 아니다. 고 원사는 대대건물 중 100평 정도 되는 창고를 교회로 리모델링하고 김 선교사에게 관리하도록 했다. 어느덧 김 선교사와 고 원사는 신앙 파트너가 됐지만, 김 선교사가 제대하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또 잠시 중단된다. 고 원사는 김 선교사가 떠난 후에도 교회가 없는 대대에 교회를 세우고, 사재를 털어 장병들의 신앙을 돌보는 등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았다.

그렇게 35년의 시간이 흘렀다. 제대 후 김 선교사는 국내의 자동차회사에 취직을 했다가 목회에 뜻을 두고 신학교에 진학한다. 1997년 안수를 받은 김 선교사는 세계 복음화에 헌신하기로 마음먹고 200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첫 발을 내딛는다. 현재 김현태, 맹연수 선교사 부부는 케이프타운에서 40km 떨어진 블루콤보스의 흑인 빈민 지역에서 지역 개발과 복음화 사역을 펼치고 있다.

고 원사도 1995년 제대를 했다. 이후 새벽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매년 성경 2독을 했고, 말씀이 더욱 절실한 해에는 4독을 하기도 했다. 신앙이 없던 어머니를 비롯해 동생들에게도 복음을 전해 가정을 구원하는 축복도 받았다.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받은 그에겐 생계에 대한 걱정보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는 회심한 바울처럼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런 두 사람이 다시 만났다. 고순길 집사와 부인 이정숙 권사가 노후에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모아 온 500만 원을 선교비로 내놓겠다며 김 선교사를 부른 것이다. 전달식에 함께 자리한 고 집사가 섬기는 용천노회 새소망교회 김홍윤 목사는 "항상 근검절약하며 선교사와 어려운 가정을 돌보는 아름다운 부부"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섬김과 함께 전도로도 많은 교인들의 존경을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현태 선교사는 참석한 교인들에게 "요즘 선교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을 내려놓는 교회나 신앙인들이 많은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 자신의 것을 내어놓은 것이 기독교인의 삶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오랜만에 고순길 주임원사에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충성"


차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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