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대상교회, 목회자의 열정 문제 아니다

자립대상교회, 목회자의 열정 문제 아니다

[ 독자투고 ] 총회 자립대상교회 정책에 대하여

김주환 목사
2019년 12월 12일(목) 13:39
노회 자립대상교회위원회로부터 매년 이 맘 때 즈음, 내년 목회자생활비 지원을 위한 교회현황 및 재정장부 제출을 요청받는다. 그런데 올해에는 그것에 더하여 '자립목회계획서'라는 내용의 서류제출을 요구받았다. 특히 목회자 소개란에 '목회동기, 목회자의 학력 및 경력, 목회자의 성향과 장단점 및 재능, 목회철학, 향후 비전 및 출석인원 목표' 등이 들어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목회자로서의 자존감이 상했다. 동료 자립대상교회 목회자들도 '모멸감을 느꼈다'는 등의 부정적 감정을 표출했다.

세상에서조차 저소득층에게 생활비를 지원하는 지원금을 주면서 '인생자립계획서'를 써내라는 말은 없다. 사회복지정책 이론 중에 '낙인효과'라는 것이 있다. 즉 복지가 필요한 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때에는 오명이나 불명예스런 낙인은 인격의 훼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가 한 인간의 '인격'과 관련한 이런 무심한 행정은 부당한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그런 계획서를 써내라는 '목적'에 주안을 두고 싶다. 만약 그 목적이 진정으로 교회의 부흥을 원한다면 그런 부흥계획서는 자립대상교회 목회자뿐만 아니라 '전(全) 목회자'에게 써내라고 해야 한다. 경제적 논리에서 자립대상교회 목회자에게만 제출을 요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돈 앞에서 소명자 이전에 한 인격체인 목회자의 인격이 낱낱이 해부되니 '모멸감을 느꼈다'는 표현도 과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교회 부흥, 성장의 차원에서 그런 정책을 해석해 보면 어떨까. 지난 11월 26일 '제104회기 총회 사회봉사부 정책협의회 세미나'에서 한 강사로부터 전해들은 통계에 의하면 현 한국교회 정체의 원인은 목회자 개인의 문제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로 볼 필요가 있다고 발표하였다. 실제로 한국의 인구감소, 출산율 감소, 인구 고령화 등이 교회 성장 정체에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개신교의 양극화'라는 통계를 제시했는데 이에 의하면 1000명 이상의 대형교회로의 '교인들의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불신자들도 대형교회로, 기존 신자도 대형교회로 수평이동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이하의 교회는 성장은커녕 정체 내지는 감소의 현실이다. 어느 정도의 자원과 재원을 가진 중형 교회도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수 십 명도 안되는, 어쩌면 수 명의 교인과 그에 상응하는 재정에 불과한 자립대상교회에게 '성장' 계획을 써내라는 것은 '없는 집에 가서 숭늉 달라'는 격이다. 또 우리 교계가 아직도 목회자를 '영적 지도자'로 인정한다면 한 목회자이자 '스승'인 '목사'에게 이런 '압박과 추궁'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교회론적 측면에서도 교회의 의미가 '성장'에도 있겠지만 '존재' 자체에도 충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교회의 자립'이 진정으로 총회와 교계가 원하는 목표라면 먼저 '대형교회로의 교인 쏠림'을 막아야 한다. 교인의 교회 이동 시, 이명증서를 확인하고 신앙고백과 세례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또 큰 교회의 전도잔치를 경계한다. 이는 자립대상교회가 공 들인 씨앗을 빼앗아 가는 결과가 되며 심지어 자립대상교회 교인까지 흡수하는 결과가 된다. 큰 교회가 영혼구원에 대한 열망이 있다면 그 재원과 자원으로 지역 자립대상교회의 전도잔치를 지원하고 후원해 주는 게 낫다. 또 큰 교회의 항존직분자를 지역 자립대상교회에 파송하고 십일조를 지역 자립대상교회에 하게 하자. 그러면 '자립'될 것이다.

'자립대상교회'를 전에는 '미자립교회'라고 칭했다. 전자는 '자립을 목적과 비전으로 하는 명칭'이고 후자는 '교회 존재 자체를 인정하면서 단지 형태를 구분한 명칭'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전자에는 '정책 집행자의 의지가 담겨있으나 정책 대상자에게는 위와 같은 부작용을 수반'하게 된다. 미자립교회 목회자의 문제는 지식이나 열정의 없음이 아니다. 현 한국교회의 '자립'에는 '보편적 교회론'에 입각한 큰 교회의 '나눔과 분배'라는 요소가 있어야 하며 '공생과 협력'이라는 신학적 가치가 필요한 시대이다.



김주환 목사/포항남노회 덕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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