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선교사 사택 앞 은행나무를 기억하시나요?

총회 선교사 사택 앞 은행나무를 기억하시나요?

선교역사 유적, 건물 내장재와 원목테이블로 보존

최샘찬 기자 chan@pckworld.com
2020년 03월 26일(목) 16:15
총회창립100주년기념관 1층 로비에 위치한 원목테이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기념관 건축 때마다 선교 역사의 유적을 다른 형태로 보존해왔다. 1986년 봉헌예배를 드린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건축 당시 해체한 선교사 사택을 소강당 내부의 내장재로 활용했다. 또한 지난해 7월 준공 감사예배를 진행한 총회창립100주년기념관 건축시 선교사 사택 앞을 100년 가까이 지킨 은행나무를 로비의 원목테이블로 제작했다. 말 그대로 선교의 얼이 깃든 내장재와 나무다.

총회창립100주년기념관 건축은 2016년 6월 기공 감사예배를 드리며 첫 삽을 떴다. 그 이전부터 총회창립100주년기념관건축위원회는 2015년 10월 제100-2차 회의에서 "기념관 분수대 자연석 및 조경수 처리는 실무자에게 맡겨 진행하게 한다"고 결의하며 은행나무에 대한 후속작업을 계획했다.

선교 역사를 상징하는 은행나무가 건축을 위해 베이면서 아쉬움의 목소리도 컸던 만큼, 건축위원회는 선교역사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원목테이블로 제작하기로 했다. 선교사들과 함께 자란 은행나무로 만든 원목테이블 위에서 총회의 중대한 사안을 결정할 때, 한국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의 정신을 기억하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은행나무는 2년 여의 건조·제조 과정을 거쳐 총회창립100주년기념관 로비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유지재단 회의실에 커다란 원목테이블로 자리잡았다.

총회창립100주년기념관 건축 전,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앞 광장의 은행나무 모습(좌측 상단).
은행나무 원목테이블의 제조를 맡은 권영형 집사는 "건조부터 시작해 제작에 2년 6개월이 걸렸다"며, "제조 공업을 40년 해왔지만 이런 테이블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보통은 다 잘라내고 가공하는데 100년 넘은 은행나무를 반토막 내서 그대로 테이블을 만든다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이었다"며, "무게가 상당해 2.5톤 화물차에 실어도 차가 가라앉을 정도였고 사람 힘으로 들거나 운반할 수 없어 기계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은행나무는 시중에 나오지 않는다. 절단을 위해 제재소에 방문했는데 주인이 놀라서 다른 좋은 나무를 줄 테니 이 나무는 팔라며 탐을 많이 냈다"며, "무겁고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뜻깊은 일로 여기고 매달려서 했다. 사고 한 번 나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전했다.

은행나무가 있던 곳은 현재 총회창립100주년기념관 광장의 구선교사 사택 계단 초입 부분, 건축 전엔 100주년기념관 앞 정원에 자리잡고 있던 나무다. 원목테이블로 다시 돌아온 은행나무는 총회의 터전, 종로구 연지동 135번지 연지골에서 자랐다. 심긴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100년 이상된 나무로 추정되며, 1926년 미국장로교회 선교부 선교사 사택 건축 이전부터 총회 역사와 함께해 왔다고 전해진다.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유지재단 회의실에 위치한 원목테이블.
한국기독공보 1468호(1983년 7월 23일자) '[탐방] 착공 1년 맞아 공사현장을 가다' 제하의 기사에서 은행나무와 소강당 내장재로 사용된 선교사 사택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있다. "각층에서는 남쪽으로 아늑한 정원을 바라보게 되어 있는데 그 정원의 가운데에 나이가 환갑인, 고풍어린 옛 선교사 사택, 붉은 벽돌집이 그림처럼 담장이 넝쿨에 얽혀 있다. 기념관 설계시 이 선교사 사택을 보존하느냐 철거하느냐 토의 끝에 이 대지 내에 있던 2동 중 1동을 선열의 숨결을 느끼게 할 수 있도록 역사성을 살려 보존하기로 하였으며 기념관 속의 기념관으로 보수 사용할 예정으로 있다. 이 오랜 벽돌집과 담장이 넝쿨, 수령 1백년은 되었을 은행나무, 희나무 등 검고 23그루 등이 100주년기념관의 분위기를 더욱 의미있게 해주며 강한 생명감을 느끼게 해준다."

1986년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봉헌예배 당시 문서는 건축설계와 관련해 "지상건물 1동은 1926년 5월 건축해 그간 로즈(Rhodes. C. Coen), 디켐프(E. Decamp) 등의 선교사들이 살았으며 이 건물을 보존하기로 했다. 나머지 한 동은 해체하여, 역사성을 살리기 위해 기념관 소강당 내장재로 활용했는데, 이 건물엔 휘트모어(Whittemore), 밀러(E. H. Miller), 윈(Winn) 등 주로 여자선교사들이 거주했다"라고 설명하고, 또한 건축설계와 관련해서는 "현관 부분을 대담하게 개방해 세계교회를 향한 개방 의지를 표현했으며, 안쪽의 정원에 작은 광장을 두어 옥외 칵테일 파티도 할 수 있게 폭 넓게 꾸몄다"고 안내한다.

한편 지난해 제104회 총회에서 유지재단 보고시 총회 역사관 건축 재고 및 대안 건으로, 선교사 사택을 개축하는 안이 결의됐다. 선교사 사택 2동 중 남은 1동이 총회 역사관으로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연합장로교회가 1981년 기증한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한 선교사들의 의식과 선교역사가 현 시대에 맞는 형태로 보존되길 기대한다.


최샘찬 기자

1972년(좌측)과 1984년에 촬영한 항공사진.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건축 전후 비교. 손으로 가리킨 부분이 현재 남아있는 선교사 사택 1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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