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와 종교개혁

페스트와 종교개혁

[ 독자투고 ]

오정현 목사
2020년 03월 30일(월) 09:46
페스트와 종교개혁



'페스트', 알베르 까뮈의 책인데, 1940년대 프랑스의 남부 오랑시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리외라 하는 의사이고, 그가 진찰실에서 나오다가 계단에서 죽은 쥐를 발견했다. 그는 퇴근하여 아파트 복도를 걸어가다가 쥐 한 마리가 비틀거리면서 오는 것을 봤다. 주춤하고 서더니만 한 바퀴 맴돌았고, 그리고선 피 토하고 죽었다. 다음날, 길에는 쥐들이 여기저기 죽어있었고, 쓰레기통은 죽은 쥐로 넘쳐났다. 하루만에 6000마리가 넘는 죽은 쥐들을 처리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시청에서 관계자들이 모여 회의를 했는데, 이것은 페스트라고 했다. 그 날로 오랑시는 폐쇄되었고 도시 전체가 침체에 빠졌는데, 호황을 누리는 곳이 한 곳 있었다. 성당이다. 사람들은 성당으로 모여들었고, 파늘루 신부는 "당신들은 죄인이다. 당신들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이 채찍을 드셨다. 그 채찍질이 바로 페스트다. 회개하고 구원받으라."고 설교했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논조의 설교가 이미 400년 전에도 행해졌었다. 16세기이고, 그 때도 페스트 창궐했었다. 면죄부 판매위원장 테첼 신부가 사람들 앞에서 "페스트는 죄에 대한 심판이다. 면죄를 받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외쳤다. 그러니 사람들은 면죄부를 사야했고, 면죄부를 사기 위해 지불한 돈은 성 베드로 성당의 재건축에 들어갔다. 성당의 규모는 어마어마했고, 건축기간도 엄청났다. 1506년에 시작하여 1626년에 마쳤으니 장장 120년이다. 많은 사람들이 면죄부를 샀는데도 건축은 끝나지 않았다. 돈이 더 필요했고, 그래서 이번에는 죽은 사람을 위한 면죄부도 팔아야 했다. 신부는 아주 절박하게 소리쳤다. "여러분은 지금 부모를 구해낼 수 있습니다. 동전이 부모를 구해낼 수가 있습니다. 헌금궤에 동전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영혼이 연옥에서 벗어납니다. 여러분은 부모님의 영혼을 낙원으로 인도하기를 원치 않습니까?"

이에 저항하여 일어난 것이 프로테스탄트 운동이고, 그래서 종교개혁의 시발점은 페스트가 된다. 중세 가톨릭은 페스트가 창궐하는 이때에 성당에 모여서 기도해야 한다고 했고, 그런 밀집 집회를 통해 페스트의 감염은 가속화됐고, 성당에서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신부들이 동원됐고, 그러다가 신부들까지 감염되어 죽어 신부의 숫자가 모자라게 됐고, 그러다보니 신부가 되기 쉬워졌고, 여기서 신부의 질적 하락이 나타났다. 그 결과 가톨릭에 대한 민심의 이반은 더욱 더 가속화됐고, 동시에 사람들은 새로운 종교를 갈구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종교개혁이 힘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페스트가 종교개혁의 방아쇠가 되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루터도 개인적으로 페스트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알려져 있기로는 1507년 낙뢰사건으로 인해 루터가 수도사로 헌신하기로 했다고 한다. 낙뢰에 맞아 함께 가던 친구가 죽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로 결단했다는 것인데,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일로 루터가 헌신을 결단한 것은 아니다. 그 전 1505년에 루터는 동생 하인즈와 바이트가 죽는 일을 겪는데, 페스트로 인한 사망이었다. 그 해 루터가 다니던 에르푸르트 대학의 교수 세 명도 죽게 되는데, 그들의 사인도 페스트였다. 이렇게 가까운 이들이 페스트로 인해 연달아 죽었기에 루터는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던 차에 낙뢰사건을 겪게 되자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종교개혁은 1517년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임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그때가 바로 페스트가 창궐할 때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평온한 가운데서 루터가 종교개혁이나 한 번 일으켜 볼까 하고서 성당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인 것이 아니다. 페스트가 창궐하여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를 이용하여 교황청은 면죄부를 팔았는데, 이를 문제 삼은 것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인 것이다.

당시 페스트로 인해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이 몰살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게 된다. 이러한 때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사람들은 루터에게 물었고, 이에 답하여 1527년에 쓴 글이 '치명적인 전염병으로부터 도망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이다. 여기서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전염병을 피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시험하는 것이다. 약도 하나님의 선물이니 기도와 함께 의료적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런 말도 했다. "타인을 감염시키는 행위는 마귀의 일이니 조심해야 한다." 이것을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밀폐된 공간에 모여앉아 예배를 드리는 것은 집단감염을 유발시킬 수 있는 행위다. 그렇게 되면 이는 곧 마귀가 좋아하는 일이 될 것이니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페스트가 닥쳤을 때, 루터는 도망가라고 했는데, 사실 그전에 이미 사람들은 페스트를 피해 도망갔다. 그랬기에 뒷북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 말을 하는 것은 이미 도망간 사람들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을 이해해주기 위해서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에게 위로를 주고 사랑을 베풀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다 도망가라고 한 것은 아니고, 책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 즉 의료진이나 행정관리들은 남아서 환자들을 보살피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은혜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루터 자신은 어떻게 했나? 루터는 끝까지 남아서 페스트 환자를 돌보다가 결국 사망했다. 그는 말로만 사랑을 외친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사랑을 실천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루터의 종교개혁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고, 중세 가톨릭은 몰락하고 만 것이 아닐까? 전염병에 대한 대처방법이 개신교와 중세 가톨릭의 명암을 가른 것이다. 오늘날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는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지만, 분명 한국 기독교가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이 때는 사랑이 필요한 때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으면 한다.

오정현 목사 (면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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