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도 범죄다

악플도 범죄다

[ 기자수첩 ]

이경남 기자 knlee@pckworld.com
2020년 05월 12일(화) 00:00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당할 만큼 당했다." 정의기억연대에서 오랜 시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인권운동을 활발히 해온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한 두 해도 아닌, 30년을 강한 유대감 속에서 함께 한 정의기억연대와 전 대표 윤미향 씨에게 할머니는 왜 대노한 걸까? 서로 오해가 있다면 풀면 될 것이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앞으로 잘해나가면 되겠지만, 더 심각한 것은 이 사건에 대한 격앙된 보도와 대중의 반응이다.

윤미향 전 대표는 SNS상에 할머니가 '피해자' 신분이기에 자신의 입장을 함부로 대변할 수조차 없다고 밝혔다. 윤 씨는 "무조건 피해자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원칙을 자신뿐만 아니라 활동가들에게도 강조해왔다. 또한 자신에게 대응하라고 조언하는 이들이 있지만 대응할 수 없는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이 글에는 댓글이 무려 600여 개가 넘게 달렸다. 대부분이 부정적인 이야기로, 사람들은 "이중적이다" "배임이다" "횡령이다" "참회하라" "사악하고 악랄하다"라는 온갖 부정적인 평가 외에 욕설이 난무하고 가짜뉴스까지 대거 나열됐다. 윤 씨의 자녀가 미국 유학 중이라는 사실을 갖고, 사람들은 '횡령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기도 했다.

네이버는 지난 3월, 연예기사 댓글을 잠정적으로 없앴다. 연예인들에 대한 사생활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연관 검색어까지 폐지했다.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댓글은 긍정적인 역할 보다 문제가 된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부고 기사에까지 악성댓글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포털에서 댓글을 달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커뮤니티로 모여서 댓글달기를 시작했다. 악성 루머로 인해 피해를 받는 것은 비단 연예인뿐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쓴 댓글이 누군가 나를 향해 쓴 댓글이라고 역지사지로 가정해보면, 과연 쉽게 악성 댓글을 달 수 있을까?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은 아직 갈 길이 멀어보이는데, 이러한 분란이 일어나 얼굴이 뜨거워진다. 분란이 일어나기 전 정의기억연대가 할머니와 좀 더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크다. 이용수 할머니도 정의기억연대도 전 대표인 윤미향 씨도 마음의 상처와 실망감이 더 이상 커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더불어 악성 댓글 문제가 비단 연예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얼굴없는 살인'인 악성 댓글 문화가 염려된다. 칼로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님을 우리 사회는 이미 여러 차례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이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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