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라는 카타콤 안에서의 선교적 삶

코로나19라는 카타콤 안에서의 선교적 삶

[ 독자투고 ] 코로나19라는 새 문화에 적응하며 신앙 성숙 이뤄야

장은경 선교사
2020년 07월 20일(월) 08:17
네로황제의 기독교 박해(A.D. 64-48)는 교회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선교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시기의 박해는 교회 확산의 시기와도 연관성을 갖고 있다. 이 박해를 피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정착한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카타콤이다. 오래 전, 필자가 『카타콤의 순교자』를 읽으면서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생생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서 필자는 카타콤에서 살아가던 ‘그리스도인의 삶’을 묵상하면서 오늘날 코로나19 상황 하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을 나눠보려고 한다.

첫째, 카타콤 밖에서 살아가던 이들이 카타콤 안에서 호흡하며 생활해 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지금의 우리가 마스크를 쓰고 방역 수칙을 지키며 일상생활을 하면서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생명의 위협을 피부로 느끼는 위험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19의 환경이 지속되면서 우리는 초대교회의 10대 박해 당시의 성도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렇다면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카타콤에서의 열악한 생활방식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잃지 않았던 성도들의 변함없는 신앙관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둘째, 카타콤 속은 어둠 자체였다. 코로나19 환경도 사람들의 삶의 환경과 마음을 매우 불편하고 어둡게 만들고 있다. 예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 갑자기 닥치다 보니, 우리의 이웃 가운데는 고립감, 무기력증과 우울감인 코로나 블루(corona blue)를 겪기도 한다. 이 코로나 블루 자체는 바로 어둠이다. 이 어둠 가운데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마태복음 4장 13-16절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빛을 받은 성도들은 코로나19 환경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빛으로 존재해야 한다. 카타콤 안에는 수많은 미로들이 있다. 수없이 얽혀있는 미로들 안에서 온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등불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민감성을 가지고, 미로와 같은 코로나19 상황을 살아가는 이웃을 위해 영적 민감성을 가지고 등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셋째, 오랜 기간을 카타콤에서 생활하던 성도들 가운데는 크게 두 그룹의 모습이 나타나게 되었다. 한 그룹은 끝을 알 수 없는 환란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인내함으로써 오히려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난 이들이었다. 그리고 다른 그룹은 끝이 보이지 않는 카타콤 생활로 인해 좌절과 낙심으로 영이 혼미해져서 그리스도를 버리고 카타콤 밖으로 나간 성도들이었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전으로 돌입하면서, 오히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현존하심 앞에 더욱 겸손히 엎드리며 믿음의 성숙을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성도들도 있는 것 같다.

카타콤 당시의 성도들은 후대에 카타콤이 기독교의 유산으로 보존되어 그 가치가 존중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 교회가 직면한 코로나19 상황을 선교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대응해 갈 때 후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필자가 고민하는 내용을 기독공보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첫째, 코로나19 환경은 새로운 선교지이다. 선교사로 소명을 받고 파송 받아 사역지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크고 작은 문화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선교사가 이 문화 충격을 딛고 새로운 문화에 익숙할 때 비로소 사역을 감당해 갈 수 있는 것이다. 특별히 선교사가 현지 문화와 동질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코로나19라는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면서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이다.

둘째, 코로나19 환경에서 마스크를 쓰고 방역 수칙을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선교사가 선교지에 가서 그들처럼 문화의 옷을 입고, 그 사회의 규범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 자체는 절대로 변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신발이 없는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러 갈 경우에 선교사는 신발을 벗고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한 동료 선교사로부터, "선교사님, 코로나가 대수인가요? 요즘 교회들이 코로나, 코로나 하면서 코로나를 너무 두려워하는 건 아닌가요? 교회가 너무 믿음이 없는 것 같아요. 예수님보다 코로나가 더 위에 있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사회의 규범을 지키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방역 수칙을 지키는 것은 코로나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타인, 특별히 질병에 취약한 이들, 그리고 우리의 믿지 않는 이웃을 위한 성도로서의 자그마한 배려와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모두 다 복음의 해석자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책무를 이행할 때 비로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모든 성도는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선교사이다. 그러기에 선교적인 책무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상황의 옷을 입고, 사회적 규범을 지키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복음 전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초기 교회 성도들이 단지 그들의 신앙을 보존하기 위해서 카타콤에서 숨어 살지는 않았다. 물론 박해를 피해서 카타콤의 삶을 살았지만, 그들은 살아있는 복음의 해석자로서 선교적인 삶을 살았고,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인 복음 전도를 위해서 헌신했던 것이다.

세계교회 역사에 있어서 교회가 가장 강성했던 시기는 박해받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교회의 구성원들은 사회적 약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 핍박을 받았던 성도들은 핍박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당시의 교회가 성장했고 복음이 빠르게 확산된 시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교회 역사는 오늘날 코로나19라는 불편한 카타콤에 갇혀서 생활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도전과 선교적 비전을 함께 던져준다.



장은경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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