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위해 모든 것 바쳤지만 받은 은혜가 훨씬 크죠"

"선교 위해 모든 것 바쳤지만 받은 은혜가 훨씬 크죠"

제105회 총회에서 선교분야 공로상 받은 안양제일교회 원덕길 장로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0년 10월 12일(월) 08:05
"2004년 안양제일교회 청년들과 함께 네팔 단기선교를 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선교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어요. 현지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심하게 나서 가까이 있지를 못하겠더라구요. 그런데 그런 현지인들을 우리 청년들이 안고 울면서 기도하는데 장로인 제가 얼마나 부끄럽든지요. 그날 제 마음이 뜨거워져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바로 그날이 '선교 문외한'이었던 안양제일교회 원덕길 장로가 선교에 헌신하기로 결단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선교를 할 것과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약속의 기도를 올렸다.

그 이후 원 장로는 매해 한해도 거르지않고 1년 365일 중 40일 이상은 선교지에 나가 복음을 전했다. 그가 지금까지 단기선교를 나간 횟수는 총 76회에 이른다. 18년간의 세월동안 그가 선교를 위해 집을 나선 기간이 1000일이 넘는다고 한다. 그것도 시설이 잘 갖춰진 곳으로 관광하듯 가는 여행이 아니라 남들은 가지 않는 험지와 오지를 주로 다닌다. 단기선교를 가기 전부터 현지 선교사들과 충분히 논의해 필요한 사역을 준비하고, 청년들을 훈련시켜 의료, 미용, 건축 등 다양한 사역을 해나간다. 원 장로 개인 사비로 지은 교회도 남수단 2곳, 우간다 1곳, 말레이시아 1곳, 네팔 1곳 등 5곳이나 된다.

1952년 생인 원 장로는 본인의 체력이 예전 같지는 않다는 것을 느끼기는 하지만 "선교지야말로 자신의 신앙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활력을 되찾는 충전소"라고 말한다.

선교사들이 잘 들어가지 않는 험지를 택해서 가기 때문에 때로는 하루에 14시간을 걷기도 하고, 팀원 중 12명이 고산병으로 쓰러지기도 하지만 원 장로와 안양제일교회 선교팀들이 선교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우리가 가지 않으면 예수의 예자도 듣지 못하고 죽는다'는 거룩한 부담감 때문이다. 원 장로는 무릎이 좋지 않아 두 곳 모두 인공관절을 삽입해 걸음이 불편함에도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오지 선교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원 장로는 선교를 하면서 가장 보람된 일로 제자들의 신앙성숙을 꼽는다. 원 장로는 "집에서 내놓은 문제아도 선교지에 가서 변하는 것을 많이 봤다. 심지어는 그 문제아들이 선교사가 되고 목회자가 된 친구들도 많다"며 "제자들의 신앙성숙을 보는 것도 선교를 하는 큰 이유 중 하나지만 정작 제 신앙이 충전이 되는 것을 느끼기에 항상 단기선교 가는 날을 기다리게 된다"고 말한다.

원 장로가 이끄는 안양제일교회의 선교팀은 노년층이 팀원이라 할 지라도 청년들과 똑같은 일정과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노폰(No Phone)', '노쇼핑(No Shopping)', '노메이크업(No Make-up)'이라는 원칙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기억에 남는 단기선교를 꼽아달라는 말에 원 장로는 말레이시아와 네팔에서의 경험을 꼽았다.

말레이시아 선교 시에는 살리리안이라는 오지를 갔는데 외국인이 처음 들어간 지역이었다고 한다. 자동차, 카누, 도보로 20시간을 넘는 시간 동안 다리에 붙은 거머리를 떼어내며, 가슴에 차는 물을 건너 선교지에 도착했다. 22가정이 살고 있었는데 동네잔치를 해주느라 소도 잡고 선물도 전달하며, 무엇보다 추장과의 관계를 돈독히 한 끝에 동네 전체가 복음화가 됐다.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는 교육청에서 실력있는 무슬림 교사를 파송해 포교되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3년 전 원 장로가 다시 방문했을 때에는 추장이 믿지 않던 자신의 동생 2명을 데리고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고 한다.

네팔 다딩 지역의 세루뚱 마을에서 진행했던 선교사역도 잊지 못할 기억 중 하나로 꼽는다. 그 지역을 지나다가 집회를 하려고 했으나 그럴 경우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산 위에 올라가 찬양과 기도만 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에 다시 한번 방문했을 때는 현지 사역자가 교회를 지어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그 부탁을 들어줘 교회를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올해 1월 다시 방문했더니 주민의 70%가 크리스찬이 되어 있었다. 100가정 중 예수 믿는 이들은 7명밖에 없었고, 집집마다 무당의 깃발이 붙어있던 동네가 복음화 된 것을 보고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고.
원 장로는 평신도로서는 이례적으로 선교에 모든 것을 바칠 수 있게 된 데에는 어머니 유옥년 권사와 아내 신부용 권사, 두 명의 소중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95세로 아직 생존해 있는 원 장로의 어머니 유옥년 권사는 69세 때부터 10년 동안 중국선교를 혼자 다닌 억척스런 여성이다. 이북에 살다가 6.25 때 중국으로 피난을 가 중국어를 배운 유 권사는 인생의 말년에 이따금씩 중국으로 건너가 사람이 모인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전도를 하고, 가정교회도 10곳이나 세운 선교열정이 가득한 신앙인이라며 존경의 마음을 밝힌다.

또한, 자신이 단기선교를 나갈 때 70% 이상을 함께 한 아내 신부용 권사는 30~40명의 선교팀의 삼시세끼를 모두 챙기고, 오지도 마다 않고 함께 동행하는 든든한 파트너라고 고백한다.

원 장로는 뒤늦은 50대의 나이에 선교를 시작했지만 보다 선교를 잘하고 싶다는 열정으로 선교에 관련된 다양한 교육을 수강하고, 지난 2009년에는 선교지의 선교대상자들의 복지를 위해 전문성을 갖고 싶다는 마음에 뒤늦게 강남대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기도 했다.

"선교지에서 나 자신도 너무 많은 은혜를 받고, 안양제일교회도 선교로 인해 엄청난 청년 부흥이 일어나는 등 내가 투자한 재산과 시간, 노력 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다"고 고백하는 원 장로는 선교의 열정이 식은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하기 위해서는, 또한 신앙의 열정이 식은 교인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간증 10번을 듣는 것보다 한번 시간을 내서 선교를 가세요. 예전처럼 살 수 없을 겁니다."


표현모 기자

# 선교 위해 헌신한 공로, 교단 총회도 인정

제105회 총회, 선교분야 '총회상 공로상' 수상



18년 동안 총 76회 단기선교, 일수로 환산하면 1000일이 넘게 선교에 모든 것을 바쳐온 원덕길 장로의 헌신은 교회와 노회를 넘어 최근에는 교단 총회에서까지 인정을 받았다.

원 장로는 선교 사역 공로가 인정돼 지난 9월 24일 총회 세계선교부 부서모임 때 선교분야 '총회상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원 장로를 '총회장 공로상'에 추천하면서 안양제일교회 담임인 최원준 목사는 "현지인 교회 세우기는 물론 병원, 장학관 건립에도 앞장 섰다. 특히 네팔의 경우 본인의 헌금으로 오지에 여러 교회를 세웠고, 현지인 사역자를 한국으로 초청해 소양 교육을 쌓게 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왔다"며 "선교는 물론 교회와 노회, 총회를 위해 지금도 열정적으로 섬기고 있다"며 추천 이유를 밝혔다.

안양노회 노회장 직무대행 한성도 목사 또한 "저는 원덕길 장로의 선교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기적 같은 이야기에 감동하기도 했고, 더 드리지 못하고 더 심기지 못하고 체력적 한계로 더 나아가지 못해 아쉬웠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목사이면서 이런 선교 열정을 가지고 살지 못할까, 부끄러움까지 느끼기도 했다"며 "이런 분을 우리 총회가 표창하고 적극적인 선교의 동력을 나타내는 강사로 활용하고 홍보한다면 개교회나 혹은 많은 성도들로부터 선교의 불이 일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원 장로는 "사실 선교는 기쁘고 설레는 재충전의 시간이었는데 총회에서 부족한 저에게 큰 상을 주셔서 황송한 마음"이라며 "어서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어 하루라도 속히 선교지에 나가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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