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교회론

엉뚱한 교회론

[ 목양칼럼 ]

이형균 목사
2020년 10월 23일(금) 08:51
한세대 전만해도 400호가 넘는 집들이 한 동네를 이루고 살았다. 지금은 200호 정도 된다. 젊은이들은 배움과 직장을 찾아 도시로 나가고, 몇몇 귀농 가정과 어르신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두세 집 건너 한 집이 빈집이다. 거대한 자본은 씨앗시장도 잠식해 어르신들이 집집마다 간수해온 토종씨앗도 없어지게 만들고, 해마다 수입하거나, 기어이 개량된 씨앗을 사다가 농사를 짓게 만든다. 좁디좁은 골목엔 목욕차량이 들어와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 몸을 씻기고, 군 예산으로 마을회관에서는 한글을 배운다. 면소재지 초등학교에 전교생 50여 명, 그중 외국인 부모를 둔 가정이 30%에 육박한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 농민, 농업의 복음화는 어떻게 이뤄야 할까? 코로나로 세상과 함께 교회도 멈춘 시간,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도시교회의 지원을 받아 성장가능지역에 번듯한 건물을 얻고, 무슨 무슨 교회라고 간판을 거는 것이 개척의 정석인 시대가 아니었던가!

마을로 들어온 지 한 달, 군청으로 면사무소로 다니며 바쁘게 서류정리하고 이전 지역에서 쫓기듯 나온 터라 너저분한 살림살이 대충대충 정리하다가 첫 여름을 맞게 되었다. 동네 어르신들께 이사 인사는 해야겠고, 넉넉지 않으니 닭을 잡아서 대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장님께 전화 걸어 여차여차 사정을 설명하니 회관에 솥을 걸어 백숙하면 좋겠다 한다. 집에서 열심히 닭을 잡아 준비하는데 걸려온 전화, 60대 젊은 분들이 더워서 자기들은 못 도와주겠단다. 사실 시골에서는 젊음이 무기다. 젊디 젊은(?) 5~60대 여성들은 그 파워가 대단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우리 집 마당에 솥을 걸고 10마리가 넘는 닭을 삶았다. 마을 앞 농협에서 막걸리며, 사이다를 사 들고는 트럭에 싣고 회관으로 갔다. 이 많은 걸 다 해왔냐 면서 어르신들이 상을 펼쳐주셨고, 나는 아내와 백숙을 접시에 담아내고 아이들은 고사리손으로 음료수와 막걸리를 따라 드렸다. 더운 날씨에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아이들이 나서서 섬기는 모습에 미안했던지 목소리 크신 분들이 연신 달려들어 일을 도왔다. 그렇게 시작된 마을 섬김 첫 행사, 그분들 눈빛이 숙연해지는 것을 보며 우리 가족은 하나님이 첫 번째 작전을 성공시키셨음에 감사드렸다.

예배당을 먼저 세우지 않고, 마을 분들과 교감을 이루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르신들이 물으셨다 "어이! 자네 목사라매? 젊은 사람이 목회를 할라먼 도시로 가야지, 왜 농촌으로 왔는가 몰러!" 그러면서도 내심 좋아하신다. 마을이 변하고 있다. 벽화가 그려지고, 오래 묵은 장판과 벽지가 바뀌고, 녹슨 대문이 새 옷을 입고, 어르신들과 함께 못자리를 만들고, 방아 찧는다 하시니 나락 가마니 실어 내드리고, 계란을 싸 들고 아픈 어르신들을 심방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르신 제가 기도 한 번 해도 돼요?" 물으면 "하먼! 이렇게 좋은 사람이 어찌 우리 마을에 들어왔는지 모르것네" 하면서 허락하신다. 그렇게 나는 어르신들 마음을 훔치면서 달려왔다. 평생 땅 파고 살아온 그분들 마음에 예수님이 자리하는 그 시간을 기다리며 말이다. 코로나시대 하나님은 여전히 바쁘시다. 일꾼을 찾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 교회다. 그렇게 교회로 살아내면 교회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세우심을 보게 된다.

이형균 목사/선한이웃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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