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를 저는 고생만 시켰죠"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를 저는 고생만 시켰죠"

[ 성탄특집 ] 선교지에서 별세한 고 정명화 선교사 그리워하는 남편 고광덕 선교사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0년 12월 17일(목) 10:43
"여보… 천국가는 길은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길이지만 이 땅에서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 있어주지 못해 나는 또 '빵점' 남편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하나님께서 내게 보내신 천사라고 했지요. 그런데 나는 천사를 고생만 시켰습니다. 미안합니다. 여기는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원했던 선교사로, 당신이 바랐던 아버지로 잘 살아갈테니 천국에서 기도 많이 해주세요. … 많이 사랑하고 많이 미안하고 많이 고맙습니다…"

총회 파송 필리핀 선교사 고광덕 목사는 지난 10월 아내 정명화 선교사를 천국에 보냈다. "배가 아프다"는 말만 남긴채 아내는 "안녕"이라는 인사도 없이 떠났다. 아내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가슴이 답답하지만 고 선교사는 안다. 아내는 마지막까지 씩씩하고 당당했을 것을.

지난 9일 본보 사무실에서 만난 고 선교사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라면서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잘 지내고 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아내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이 하실 큰 뜻을 알게 될 것"이라며 근황을 전했다.

고 선교사는 지난 4월 노회 참석차 한국에 왔다가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상태였다. 정 선교사 홀로 현장에 남아 사역을 이어가던 중에 당한 사고였다.

"늦은 밤 아내가 아프다는 전화가 왔고, 상황을 설명하는 중에 사망 소식을 듣게 됐다"는 고 선교사는 "마지막을 함께 해주지 못한 것이 가장 미안하다"면서 "만약이라는 말은 의미없겠지만 그래도 그 때 내가 있었더라면 두 손 꼭 잡고 기도라도 해줬을텐데…"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아내의 유골함을 받았을 때에 비로소 아내의 부재가 실감이 났다"는 고 선교사는 아이들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언제나 큰 나무그늘 같던 아내는 홀로 선교현장을 지키면서 건강도 챙기지 못하고 동분서주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엄마가 한국에 와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오지를 못하더라"는 고 선교사는 "내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 '아프다'는 말이었으니…그게 더 아프고 미안하다"고 했다.

고 선교사는 지난 1997년 필리핀 북부 산지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후원교회도 없이 선교를 시작했고, 집에서 선교지까지 12시간을 왕복해야 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선교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현지인만큼 살아야 한다"는 남편의 뜻을 따라 아내도 '가난'을 선택했고, "선교지에 있는 아빠가 제일 멋있었다"며 입버릇처럼 말했다.

2020년은 고 선교사에게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다. 코로나19로 시작돼 아내의 죽음을 맞았고 앞서서는 아들 천재 군이 대형버스에 충돌하는 사고로 죽음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고 선교사는 "지금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그 때마다 하나님의 뜻은 늘 옳았다"면서 "그래서 괜찮다.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한다. 아내의 죽음, 그리고 동생의 사고를 연달아 겪은 딸 다솔 양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들 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현실이 힘들었다"면서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기로 했다. 이 또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일까.

고 선교사는 2020년 성탄절 특별한 소원이 있다. "성탄절에 사랑하는 두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싶어요. 필리핀에서 사역하는 25년 동안 단 한번도 가족과 함께 성탄절을 보낸 적이 없거든요. 아내가 함께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천국에서 함께 해주겠지요."

인터뷰를 마치고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던 고 선교사는 "아내가 마지막까지 지켜냈던 선교현장에 돌아가 아내가 그토록 열심을 다했던 선교에 다시 매진하겠다"는 향후 계획을 전하면서 "아내의 장례를 마치고 일일히 인사를 전하지 못했다. 지면을 통해서라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안장까지 도와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전하고 싶다"는 인사를 전했다.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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