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깨운 역사의 현장 찾는다

시대를 깨운 역사의 현장 찾는다

[ 창간75주년기획 ] '역사에게 내일의 길을 묻다' 1. 기획을 시작하며
"영국 기독교 유산들 통해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 조망

김보현 목사
2021년 01월 19일(화) 10:53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버러의 중심 로열마일에 세워져 있는 센자일스 교회. 1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 교회는 독특한 크라운 고딕으로 장식된 외형을 갖고 있으며, 존 녹스의 종교개혁과 불같은 설교가 행해졌던 현장이며, 훗날 가톨릭으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에 저항해 일어난 언약도 운동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격년으로 열리는 스코틀랜드장로교회 공식 예배 장소이며 여전히 활발한 목회가 이뤄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위기와 전환의 시대, 부름에 응답할 민족과 나라를 찾고 계신다.

이 천 년 전 십자가 구원의 복음은 성령 강림을 통해 교회가 세워진 후 사도와 선교사뿐 아니라 고난으로 흩어진 성도들을 통해서도 '땅끝'을 향했다. 선교는 이후 준비되고 부름 받은 민족은 물론 핍박과 고난 중에 있던 나라 백성들 중에서도 이어졌고, 시장에서 통용되던 언어도, 군사용으로 놓인 도로도 활용되었다.

'신사의 나라', '해가 지지 않는 왕국' 등 온갖 수식어로 불려온 '영국'은 위대한 복음과 선교의 세기를 이끌었던 나라이다. 지난 세기, 교세가 급감하고 세속화와 타종교의 영향력이 확산되며 우려의 눈길을 받게 되고, 쉽사리 폄하하는 목소리도 뒤따른다.

새해 들어 영국 내 코로나 상황은 감염 확산 위험이 높아진 변이 바이러스의 진원지로 지목되며 안팎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 2016년 전격적으로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Brexit)가 국민투표를 통과한 이후 길고 지리한 협상 중 양분된 여론과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불확실성으로 몸살을 앓아 온 상황에서 거듭된 큰 시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영국에 대해 전하는 고국 매체의 소식이나 시각을 보면, 이 땅에 살아가는 입장에서 '과연 그런가' 종종 자문하게 된다. 내부자로 지내다 보니 숲을 볼 수 없는 한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빅토리아 시대의 영광을 생각하면 오늘의 영국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같은 영광은 사라졌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은근한 숯불이 웬만한 빗줄기 앞에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 법. 평소 개인주의로 무장하고 정(情) 보다는 이성을 앞세우는 이웃들이지만 전에 없던 제약과 어려움 속에 성탄과 연말을 보내며 지역사회와 연대하고 배려하려는 모습, 무엇보다 급증하는 감염자와 사망자 통계 속에서도 꾸준하고 변함없이 의료진을 격려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함께 애쓰는 공동체, 살아 움직이는 마을과 골목을 보면 삶과 문화 속에 녹아든 신앙의 저력을 보는 듯하다.

영국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동쪽 끝 이름도 잘 모르던 나라를 찾아와 피와 생명을 바쳐 준 우방으로, 여전히 경제적 인적 교류도 상당하고 유럽 내 한인 이민 사회도 가장 큰 나라이다. 교회사적으로는 1866년 대동강변에서 스러져간 순교자 토마스 선교사를 시작으로, 만주에서 성경을 번역해 전해 준 존 로스, 맥킨타이어를 파송해 준 교회이며, 당대나 부모 세대 북미 지역에서 이주해 한국에서 사역했던 가문까지 포함하면 그 수효는 헤아리기도 힘들 것이다.

낮은 구릉과 이끼낀 지붕, 한 겨울에도 바래지 않는 녹색의 전원 모습과 어우러진 오랜 도시의 모습은 세월의 흐름마저 비껴간 듯 하다. 사진은 바스 외곽의 마을 모습


장로교회의 후예로서 빼놓을 수 없는 사실도 있다. 제네바에서 존 칼빈의 개혁 운동이 시작되었다면 스코틀랜드는 1560년 존 녹스(John Knox) 주도 하에 신앙고백서와 치리서를 제정, 명실상부 장로교회가 제도적으로 출범한 본산이라 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1910년 열린 세계선교대회는 한국교회가 세계교회 앞에 당당히 존재를 알렸던 자리였다. 마펫, 언더우드, 게일 선교사 등과 함께 윤치호가 한국교회 대표로 참석해 한 세대 만에 이룬 놀라운 선교 열매들을 증언했다.

한국 교회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해도 한국 성도들에게 친숙한 신앙 위인들과 그들의 삶과 사역의 현장은 넘쳐난다. 성경 번역과 종교개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클리프와 틴데일, 땜쟁이 설교가 존 번연의 저작 '천로역정'은 고난과 더불어 신앙 생활을 영위했던 우리 민족의 애독서였다.

산업혁명의 어두운 그늘 속에 시작된 로버트 레이크스의 주일학교 운동 이야기와 5만 번의 응답을 받은 기적의 사람 조지 뮬러 목사의 이야기는 많은 성도들의 가슴을 여전히 뜨겁게 했다. 노예선장에서 회심해 목회자의 길을 걸은 존 뉴튼 목사의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비롯해 전쟁과 핍박, 개인의 고난 속에 수많은 찬송가가 작곡되고 울려 퍼졌던 땅이다.

스코틀랜드 언약도들의 '지붕없는 감옥' 이야기와 신대륙으로 떠난 잉글랜드 청교도들의 이야기, 청교도 신앙 전통 위에 꽃 피운 벡스터, 스펄전, 마틴로이드존스, 존 스토트 등 위대한 설교가들의 영성과 C.S 루이스, 지난 해 작고한 패튼 등 현대 기독교 변증가들의 메시지는 여전히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샘물같은 영감을 전해주고 있다.

영국이 제국주의 길로 들어서면서 식민지 확장과 노예 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이루는 사이 아프리카와 인도 중국을 향한 선교의 역사 또한 왕성했다. 1904년 웨일즈에서 일어난 대부흥운동은 1903년 원산 부흥의 뒤를 이으며 미국과 인도 그리고 마침내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에 이르는 20세기 초 세계적 대부흥운동과 맥을 함께 한다.

한국교회의 회복에 대한 갈망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때이다. 그러나 어느덧 단순히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공감대도 조용히 번져가고 있다. 분명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할 터인데 우리는 그 길을 이곳, 2천 년 복음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한 땅, 하나님의 특별한 달란트를 부여 받아 인류 역사에 독특한 족적을 남긴 영국과 영국 교회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이 여정에서 낯익은 이름과 사건들을 접하게 되는 반가움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 시대와 삶의 자리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며 하나님의 부름 앞에, 시대의 요청 앞에 분연히 일어서 응답하며, 위기와 격동 속에서도, 예측 불허의 미래 앞에서 변화를 이끌며 새로운 시대를 깨웠던 현장을 만나게 될 것이다.

'오늘 저지른 남의 잘못은 어제의 내 잘못이었던 것을 생각하라'

영국 국민들이 자부하는 대문호 세익스피어의 경구(警句) 한 줄을 영국 기독교의 깊은 뿌리와 그 오랜 역사에 담긴 영욕의 자취를 더듬는 나그네의 작은 이정표로 삼아 길을 떠나본다.

김보현 목사 / 총회 파송 영국 선교사





# 영국 그리고 유니온잭


각 나라의 수호 성인의 십자가를 상징하던 국기들이 통합된 '유니온잭'

유나이티드 킹덤(UK), 그레이트브리튼(GB). 통상 영국을 표기하는 말들이나 정식 명칭은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1세기 중엽, 로마의 침략 이후 410년까지 통치를 받으며 역사에 등장한 영국은 이후 5백 년 가량을 원주민들을 변방으로 밀어낸 앵글색슨족이 아래 여러 왕국으로 나뉘어 5백 년 간 통치하게 된다. 이 기간 바이킹이 침략해 일부 지역에 정착하기도 한다. 1066년 프랑스 북부, 노르만족을 이끌고 침입한 정복자 윌리엄에 의해 앵글로색슨 군대가 패하며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된다. 이후 지금까지 영국은 별다른 외부의 침략을 받지 않으며 1천 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현재 영국은 즉위 70년째를 맞은 94세의 엘리자베스 2세를 여왕으로 섬기는 입헌군주국이다. 웨일즈는 13세기말 잉글랜드에게 전쟁에 패해 독립을 잃은 뒤 1536년 헨리 8세 공식 합병되었다. 스코틀랜드와는 1707년 통합 법안이 결의되며 브리튼 섬의 세 나라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된다. 마지막으로 1801년 아일랜드 왕국과의 연합 법안도 통과되어 마침내 연합왕국(UK)이라는 국호가 정해지고, 각 나라의 수호 성인의 십자가를 상징하던 국기들이 통합된 '유니온잭'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후 1차 대전 종전 후 아일랜드가 독립하는 과정에서, 개신교인들이 거주하던 북동부의 일부 지역이 연합왕국의 잔류를 결정하며 1922년 현재의 국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헤이스팅스 전투 승리 직후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태피스트리. 정복자 윌리엄의 왕위 계승권과 전쟁 세부 장면들을 자수로 묘사하고 있다. 폭 50cm 길이 70m에 이르는 대작이다.


네 나라 중 잉글랜드의 경제, 인구 규모는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는 별도의 화폐를 발행하고, 지난 세기 말에는 웨일즈를 포함해 모두 별도의 의회도 구성하여 많은 부분의 자치권을 부여했음에도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종주국으로 인정받는 축구의 경우 고집스럽게 네 나라가 각기 대표팀을 구성, 월드컵에 출전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네 나라의 공조가 중요함에도 때로는 시행의 편차로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하고, 지난 연말 종결된 브렉시트에서도 두 섬에 위치한 네 나라의 각기 다른 셈법으로 인한 앙금이 남아 있다. 변하지 않아도 자부심과 행복으로 충만했던 나라 영국, 과연 연이은 팬데믹과 브렉시트의 격변 뒤 모습은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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